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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Sep 15. 2020

2020. 09. 15 맑음

성장과 독립 or 반항

벌써 세 번째 초록불이 켜졌다. 발을 살짝 뗐다가 이내 멈춘다. 정지선에 멈춰 있는 차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신호등을 올려다보다가 결국 또 못 건넌다. 건너는 사람도 없다. 네 번째 초록불이 켜졌을 때는 드디어 결심을 했는지 양쪽에 차가 멈춰있는지 확인하고, 온 힘을 다해 달린다. 두 번째 횡단보도에서는 어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쉽게 건넌다.

주원이 인생에서 혼자 건넌 첫 번째 횡단보도였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잘 놀던 주원이가 소원이를 때렸고, 내가 혼을 내자 씩씩대면서 놀이터 기구를 발로 찼다. 난 너무 열 받아서 소원이 손을 잡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이주원! 너 집에 가서 혼나야겠다."
"아이스크림 사서 갈게요."
"뭐? 너 돈도 없고 카드도 없는데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사!"
"엄마가 카드 주면 되잖아요."
"내가 동생 때리고 말 안 듣는 너를 왜! 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어? 근데 진짜 안 따라온다.

그렇게 주원이가 집 앞의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서 편의점으로 간 거였다. 편의점 밖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빵빠레를 하나 집길래, 안 되겠다 싶어서 주원이를 부르려는 찰나 편의점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 뒤 아이스크림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그제야 숨어서 따라갔던 나는 모습을 드러냈다. 주원이 손을 이끌고 편의점에 다시 들어갔다. 애가 아이스크림을 그냥 가지고 나왔다고, 죄송하다고, 얼마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제가 먹으라고 줬어요.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다음에 엄마랑 같이 와서 계산하겠대요. 하하"

아, 그랬구나. 너 외상 한 거구나ㅡㅡ
지금 5살 주원이는 사춘기 비슷한 걸 겪는 것 같다. 성장인지, 독립인지, 반항인지 모르겠지만.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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