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부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숙 Sep 20. 2020

2020. 09. 19 맑음

다 괜찮다

지난밤, 주원이가 갑자기 열이 올랐다. 해열제를 먹여도 체온은 38~40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할 뿐 내리지 않았다. 응급실을 갈까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주말 응급실 상황이 어떤지, 그리고 어떤 대우를 받는지 몇 번 당해봤기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침이 되자 주원이는 누룽지 한 그릇을 비워냈고, 다시 게워냈다. 열은 여전했다. 집 근처 소아과로 향했다. 의사는 갸웃거리며 항생제와 해열제를 처방해 드릴 순 있다, 하지만 고열이 지속되는 건 이 또래 아이들에게 흔한 일은 아니다, 큰 병원으로 가서 종합검사를 받아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그렇게 나는 소원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고, 남편은 주원이를 데리고 성모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빠, 병원에 가는 거 맞죠?ᆢ 언제 도착해요? 빨리 병원에 가고 싶어요ᆢ"

지 딴에도 지몸이 얼마나 버티기 힘들었으면, 아픈  주사와 쓴 약이 있는 병원을 그토록 애타게 찾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성모병원 응급실은 아픈 응급환자가 아니라 허락한 환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열이 나는 환자를 자가격리할 병실이 없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다른 병원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희도 모릅니다. 직접 전화해서 알아보세요."
"모른다니요. 그럼 최소한의 응급조치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119 부르세요. 병원에서는 호출이 안되니, 병원 밖으로 나가셔서 전화하시면 됩니다."

이래서 세상에 '욕'이라는 그 천박한 단어들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있나 보다. 남편은 점점 더 열이 오르고 토할 것 같다는 주원이를 내려놓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버린 그 사람에게 다시 나오라고, 문을 치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응급환자를 거부하는 응급실, 병원의 최소한의 조치나 방법이 병원 밖으로 나가서 119를 부르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에 남편은 미쳤다고 한다.

"여기서 이렇게 항의할 시간에 빨리 119를 불러서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요? 그리고 열나는데 이렇게 돌아다니면 안 되는 거 모르시나 봐요?"

남편은 처음으로 살인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 바닥에 앉아 있던 주원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쯤 살인자의 아내가 됐을지 모를 일이다.

"아빠, 우리 그냥 집에 가요ᆢ 집으로 가요ᆢ"

결국 남편은 이성을 되찾았고, 주원이를 다시 안았다고 한다. 119를 불러서 순천향대병원으로 갔고, 역시나 코로나 의심환자로 잠시 격리되었지만 충분한 치료와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주원이는 정상체온으로 돌아왔고 코로나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다행이다. 불안했던 마음, 속상했던 마음, 화났던 마음ᆢ 다 괜찮다. 아이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 09. 15 맑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