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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Apr 13. 2023

2023. 04. 13 흐림

도살장

하는 것도 없이 정신없었던 3월. 초등학교에 간 남매둥이는 친구도 한 둘 사귀고 급식도 맛있다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가는 중이다. 물론 아침마다 8개월 된 막둥이를 데리고 하는 등교전쟁은 여전하지만. 한 달이 넘은 지금, 길가에 핀 철쭉꽃이 내 눈에도 들어오는 걸 보니 나 역시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고 있나 보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사실 모른 척했던 문제가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딸아이가 영어유치원을 졸업했는데 왜 또 가야 하냐고 묻는 걸 대충 얼버무렸더랬다. 연계된 영어학원에 매일 같이 밀어 넣었는데(?) 그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학원차 앞에서 뒷걸음을 치곤 했다. 급기야 오늘은 아이가 눈물을 보였다.


"엄마, 나 영어학원 가기 싫어ᆢ "


영어로 말하는 걸 좋아했고, 그만큼 실력도 많이 늘었는데 지금 여기서 멈춘다고? 갑자기 왜? 달랬다가 화냈다가 뭘 해도 울고만 있어서 학원차를 그냥 보내고 집으로 갔다. 난 한숨만, 아이는 고개만 숙인 채 단지에 들어서는데 놀이터에 아이의 반 친구들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는 친구들을 아이는 가만히 쳐다봤. 가서 친구들이랑 놀라고 해도 가만히 서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집에 가자고 했더니, 친구 한 명이 다가와서 아이 손을 살며시 잡는다. 아이는 그제야 놀이터로 발걸음을 향했다.


10분을 놀았다.


친구들 역시 학원에 가야 했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아이. 그제야 자기도 학원에 가겠다고 해서 다시 학원차를 기다렸다.


'뛰어놀고 싶었구나ᆢ '


학원차에 아이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괜히 아이가 안쓰러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인지ᆢ 하지만 내가 아니어도 10분 놀고 다 학원에 가는 이 상황이 맞는 건지. 한국교육발 디딘 초보 학부모는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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