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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숙 Feb 15. 2023

2023. 02. 14 맑음

고백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아침. 딸아이는 옷 중에서 가장 예쁜 치마를 골라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안경을 벗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어젯밤 늦게까지 편지와 초콜릿을 준비하느라 눈은 팅팅 부어 있었다.

"나 1년 동안 좋아했어. 고백은 처음이라 떨려."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상기된 얼굴로 유치원버스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한테 메시지가 왔다. 등원하자마자 옆반 앞에서 서성이는 딸아이를 보고 선생님이 같이 가서 도와주셨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말은 자주 들렸지만 날 잡고(?) 정식으로 고백하는 여자 아이는 아마 처음일 거라고 했다. 또래 중에 제일 작아서 아직도 아기 같은 딸아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작년 가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냥 7살 아이의 새로운 친구에 대한 호기심 정도로 생각했다. 봉숭아물을 들이면서도 첫눈이 오기 전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맞냐고 수없이 물었더랬다. 누군가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구나 싶었지만 그 마음을 1년 동안 간직하고 있을 줄 몰랐다. 심지어 고백할 용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많이 컸다. 난 딸아이가 그렇게 크는 줄도 모르고 산만하다고, 정리를 잘 못한다고, 아직도 한글을 잘 모른다고 혼내기 바빴다. 내 짜증 섞인 말투와 꺼질듯한 한숨 뒤에서 딸아이의 웃는 얼굴, 깊은 생각, 보석 같은 예쁜 말들은 점점 숨어버렸다.


어떤 육아서에서 그러길,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는 게 부모 마음이라 아이가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먼저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못마땅한 마음이 들고 잔소리를 한다고. 아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천천히 채워지고 있는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는 부모 마음이란, 참 성급하고 한심하다. 이렇게 사랑을 오래 간직하고, 용기 있게 고백할 줄 아는 멋진 8살로 잘 크고 있는데 말이다.


'소원아, 너의 사랑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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