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는 누군가의 옆모습을 바라본 적 있나요?

by 수현

흡연자 옆의 비흡연자는 심심하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성별도 다르고 나와의 관계도 다양했다. 친한 언니 혹은 오빠일 때도, 회사 동료이기도, 상사이기도, 옛 연인이기도,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이기도, 알 수 없는 사이이기도, 그리고 때론 아버지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바뀌기도 했지만 무얼 피든 나는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나를 배려해 주며 함께 나가자고 하기보단 ‘피고 오겠다’가 많았지만, 내가 따라나설 때도 꽤 있었다.


주로 흡연자의 정면보단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편이다. 정면에 있으면 여러모로 대화하기 어렵다. 담배 연기가 주로 상대방의 얼굴을 잡아먹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 올바른 정면에서 비흡연자와 흡연자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조금 민망하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나갔을 땐, 그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낀 건 다들 눈에 생각이 참 많아 보였다. 늘 침묵도 길었다. 어떤 공식적인 시간, 예를 들면 술에 취해서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털어놓는다거나 함께 수다 떨 소재가 너무 많아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딱히 말을 걸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게 됐다.


20대 초반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말이 없을 거면 왜 같이 나가자고 하는 거야 참.’ 그때는 그게 비흡연자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어느 날, 나는 회사 옥상에서 줄담배로 한 갑을 통째로 피우는 꿈을 꿨다. 그날 이후로는 흡연자가 말이 없어도 별 생각이 안 들었다.


담배 연기를 나에게 오게 하지 않으려 한쪽으로 몰아서 한숨을 뱉은 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예전에는 그 사람들에게 코를 쥐고 손을 내저으며 빈말이든 아니든 담배 끊으라는 말을 하곤 했다. 건강과 폐암 등의 진부한 상식을 꺼내며. 그런데 지금은 굳이 그런 말들은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먼저 따라나선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며 어떤 비밀 이야기들을 해줄지가 더 궁금하다.


나에게 담배를 정말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냐는 질문도 가끔 들었다. ‘그러게요, 저는 스트레스받은 날이면 꿈에서 그렇게 피는데, 눈 떠서는 담배 피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요? 신기하네요.‘


건조한 공기 속에서 건조한 대화지만, 말없이 옥상을 올라가는 길, 올라가서 10분 정도 담배를 피우는 시간, 다 피우고 돌아오는 길 동안 둘 사이 묘한 공기를 느낀다. 풍성한 대화와 리액션으로 감정을 교류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이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속을 깊이 보여주지 않지만 그 사람들의 뒷모습, 혹은 쪼그려 앉은 모습, 담배를 쥐는 방법, 연기를 뱉는 모양, 복잡해 보이는 눈빛 등 옆모습을 보며 공백과 침묵 속에서 어렴풋이 생각을 읽는 걸 좋아한다.


내가 잔소리를 하는 유일한 대상은 우리 아빠. 지금도 담배를 태우고 오신다고 하면 일부러 핀잔 섞인 시선을 보내며 최대한 눈살을 찌푸리고 바라본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안 피는 것 같다. 아버지도 비흡연자의 길을 걸으시려나.


썸네일 사진으로 고른 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속 한 장면이다. 여자 주인공 ‘태희’는 멋있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좋다며 ‘인우’에게 자신의 얼굴이 각인된 라이터를 선물한다. 그리고 다음 씬에서 인우는 살면서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던 담배를 콜록거리며 배운다.


비흡연자는 원래 심심하고, 그간 내 옆에 있었던 흡연자들은 사실 별생각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가끔은 옆에 있다 보면 간접흡연만큼이나 감정적으로도 영향을 받곤 한다.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나니, 이렇게까지 담배 피우는 모습 하나로 할 말이 많은 비흡연자인 내가 유별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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