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나는 여섯 번째 이사를 했다.
역에서 가까워진 대신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좁아지고 보증금이 높아진 조건이었다. 이삿짐 아저씨는 짐이 너무 많은데 방이 너무 좁다며, 게다가 옷장과 책상이 방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버리라고 하셨다. “사진보다 짐이 훨씬 많은 느낌이네... “ 아저씨는 친절하셨지만 자꾸만 그 말을 내뱉으셨고 함께 도와드리는 사모님은 그런 아저씨의 팔을 꼬집으며 눈치를 주셨다.
나는 연신 “옷장은 아버지가 사준 거라서 못 버리고요, 책상은 여기서 할 일이 많아서요...”라고 대꾸하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잘못한 건 없는데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벌써 몇 번째 이사인데도, 서른이 넘어도 이사는 너무나도 나를 지치게 했다.
나의 책상은 여러 번 모양과 크기가 바뀌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는 한 번도 바뀐 적 없던, 앨범과 일기장과 출처를 모르는 소품들과 작은 서랍들이 올려져 있는 빛바랜 책상. 나는 그곳에서 사춘기도 맞이하고 공부도 밤새 해보고 주말 내내 게임만 하다가 혼나보기도 하고, 만화도 그렸다. 더 어릴 때는 동생과 한 의자에 끼여 앉아 함께 앉아 있길 좋아했고, 급한 성격 탓에 동생에게 한 마디를 하다가 그만 울리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후, 나는 자취를 시작하며 책상을 새로 사야만 했다. 하지만 가정집이 아닌 월세방에는 조그마한 접이식 탁상이 최선이었다. 나는 그 만 구천 원 탁상에 양반다리를 해서 배달 음식도 시켜 먹고 같은 과 친구에게 편지도 쓰고 이력서도 썼다. 술이 덜 깬 상태로 다음 날 시험 준비도 해보고, 처음 겪는 아픔과 감정에 엎드려 울기도 했다.
그러다 몇 년 전, 화이트 톤의 모던한 디자인의 책상을 샀다. 뒤늦게 찾은 나의 취향이 담긴 책상이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이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축하하거나 조의를 표하거나, 답장할 문자 메시지 내용을 고민한다. 그러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맥주 한 잔을 하기도 하며, 어떤 날은 몸을 배배 꼬며 숏폼을 보다 오랜만에 설레기도 했다가, 또 어떤 날에는 어떠한 상실감과 불안에 시달리며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
깨진 소주병이 닳아 만들어진 색색 조약돌,
친구들이 써 준 롤링 페이퍼,
직접 그린 만화책,
고등학교 교복,
대학교 점퍼,
영화 티켓,
그리고
책상.
어떤 것은 너무나도 하찮고 이제는 행방조차 알 수 없지만 나에겐 ‘내 세계’가 담겨있어 전부였던 것들. 심지어 일부는 그렇게 애정하진 않지만 투쟁의 흔적이 담겨있어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들. 그래서 어느 날은 문득 저 물건들이 사라져 있거나 내가 잃어버렸을 땐 가슴이 시큰거릴 정도로 화가 났다.
내 세계가 담겨있는 것 중 이제 내가 유일하게 지켜낼 수 있는 건 책상뿐이다. 그래서일까, 아저씨가 책상 그냥 버리라고 했을 때 나는 그렇게 볼맨 소리로 자꾸만 말대꾸를 한 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