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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May 21. 2022

What is Khatgal

0.5 Prologue 세계일주 - 몽골


 몽골, 그 안에서도 홉스골, 그 안에서도 핫갈. 비행기 4시간, 밤 버스 14시간 그리고 자가용 2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 꽁꽁 언 호수, 황색의 평야, 세모난 지붕, 지붕을 둘러싼 울타리. 그중 한 가정의 대문을 옆으로 밀어 홈스테이 집에 도착했다. 무지, 사람이 안다고 하는 것만큼 모양 빠지는 것도 없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의 첫, 세계일주가 시작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수도, 핫갈은 삶이 다르다. 태도 다르다. 사람의 태, 건물의 태, 생활의 태 모든 것이 다른 곳이다. 내 감상에 도시화란 시작은 달라도 종국에는 한 길로 비슷하지만 전통 생활양식은 제각각이다. 한 구역 내지는 지역에서의 생활양식과 문화는 같거나 비슷한데, 언어, 인종 더 나아가 국적을 제한다면, 즉 삶의 태를 보면 핫갈의 사람들과 울란바토르의 사람들이 같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울란바토르의 삶의 태가 핫갈보다 서울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18시간 가까이 집에서 보낸 나는 평소 일상과 같은 익숙함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TV도 있고, 와이파이가 터지는 집에서는 각자 핸드폰으로 SNS도 하고, 어린아이들은 핸드폰으로 스스로 영상을 틀어 본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커피 포트로 차를 끓여 마시고, 접시나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고,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할 일을 하고 손님이 오면 경우에 따라 잠깐 또 길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사람의 인생이 멀리 서는 비슷한 실루엣이지만 가까이서는 숨 쉬는 박자까지도 다른 것처럼 외부자이면서 내부자가 된 나의 경험으로 느낀 그 다름 들을 적어본다.


 첫 번째로 집에 매일같이 손님이 온다. 말 그대로 매일,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손님이 온다. 손님이란 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인 손을 높임으로 지칭하는 말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손님이 집에 찾아와 담소를 나누다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몽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손님의 개념이 더 커 손님 본연의 정의에 맞게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이 많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는 당연히 처음에는 사전에 연락을 하고 오가는 관계로 봤지만, 매일 제 집 오듯 드나드는 사람들, 집에 혼자 있는데 와서 뭐라고 말을 하더니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하루 종일 통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데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 정말 손님이란 단어에 부합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통념과는 다른 형태 같아 보이지만 조금 더 원초적인 의미로서.

 손님이 오면 가족 중 한 명은 하던 일을 멈추고 대접한다. 매일 아침에 만든 차는 온 가족이 하루 종일 마시고 손님에게 대접을 해도 남을 만큼 양이 많다. 차는 보통 손님이 자리에 앉으며 받을 만큼 바로 내주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물을 다시 끓여 만들 수 있음에도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드는 것 같다. 차를 내준 다음에는 말린 치즈, 초콜릿, 사탕, 빵 같은 간식거리를 주고, 끼니때는 식사를 같이 한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숟가락으로 밥 먹듯 동작에 망설임이나 더딤 없고 자연스럽다. 늘 두 그릇을 먹을 만큼 양이 많은 음식도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을 염두한 것 같다.

 최근 읽은 글에 따르면 과거 유목을 했던(또 해오는) 이들은 정보를 얻을 길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지 이제 10년이 넘었고 인터넷은 이제 20년을 넘었다. 자동차는 200년이 채 안됐다. 수천 년간 유목생활을 해오던 이들에게 현대는 예전만큼 소식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인터넷이 안 터지는 지역으로 간다면 소식을 얻지 못할 수 있는 등, 여전히 현대인에 비하면 얻는 정보의 양이 적다. 그렇기에 이들은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했는데 손님이 그 역할을 해온 것이다. 사람은 만나면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고 이들은 서로 돌아가며 손님이 되어 새로운 소식 또 겪은 이야기 등을 말하고 주인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차, 간식, 식사 등을 제공해왔다.

 이러한 문화에 나의 감상을 덧붙이면 접대 문화가 정보에 대한 보답의 개념으로 현대까지 유지되는 문화는 아니다. 전화가 있고, TV가 있고, 인터넷이 있어 과거보다 더 빠르고 많은 정보를 얻을 방법이 있다. 그렇기에 접대 문화가 보답 차원에서 시작했을 수 있지만 현대에는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온정과 유대감을 형성, 유지가 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는 아파트가 있고, 아파트는 특유의 폐쇄적 환경을 갖고 있다. 많은 이웃이 살아도 서로를 알기 힘들다. 또 도시의 특성상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대감 형성이 쉽지 않다. 핫갈은 빌딩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이다. 사회는 작을수록 서로를 잘 알고 공동체가 단단하다. 공동체의 필수 요건이 서로에 대한 이해라면 접대 문화는 이해의 출발점이고 공동체 유지에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이웃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하고 처음 보는 사람 혹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관계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좋아하지 않는 이웃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이유가 이들이 접대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나와 같은 외지인이 대뜸 남의 집 대문을 드나드는 것은 결례지만, 내부자는 사정이 다르다. 하루는 밤 9시가 넘어 잠 자기 전 갑자기 손님이 왔다.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평소 손님을 대할 때와 그 남자를 대할 때의 차이를 느꼈다. 이들 사이에 감정 없는 문장들만 오가는 느낌이 들어 대화라고 느끼기 어려워 보였다. 그에게 차, 식사를 대접했지만 그의 말에 대꾸만 있고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가 달가운 이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은 최소한의 대접은 한다. 이런 경우는 매일같이 오는 손님들 중 유일한 경우고 평소에는 마주 보고 대화하며 웃는다. 

 전통이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과 같다. 윗 물이 맑은 것은 아랫물이 맑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이고, 물은 고이면 썩는다. 접대도 마찬가지다. 접대 문화는 정보 교류 차원에서 처음 생겼고, 그런 목적에 온정이 쌓이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손님 대접하는 것을 보며 자라고, 청년이 되면 손님 접대를 몸에 익힌다. 이들이 추후 새로 터를 잡게 될 때는 당연히 그가 해온 것을 할 것이므로 전통이 대에서 대로 유지된다. 현대에 들어 정보는 더 이상 주된 목적이 아니고, 유대감을 위해 또 전통을 따라 접대를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구든 접대하는 문화가 생겨 달갑지 않은 이웃에게도 형식적인 접대를 하게 된다. 형식적 접대와 접대하지 않고 내치는 것 사이에 무엇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전통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 과거의 접대가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지만 고인 것들은 걷어내고 새로운 것과 온전한 것을 결합해 지금의 접대 문화가 됐을 것이다. 지금의 접대 역시 언젠가는 썩은 부분은 자르고 시대에 맞는 것을 섞어 새로운 형태의 접대 문화로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다.


 두 번째로 이들은 유목민이다. 유목민은 가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생활을 가축에게 맞추게 된다. 예를 들면 주변의 풀이 다 뜯기고 나면 새 풀을 찾아 떠나고, 겨울철에는 풀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풀이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여전히 전통적인 의미의 유목민도 존재하지만 내가 홈스테이 한 가족처럼 나름의 현대화된 유목민도 있다. 이 집에는 15여 마리의 말을 키우는데 매일 밖에 나간다며 ‘홀스!’라고 외치는 아저씨를 생각하면 나는 가보지 못한 어딘가에 더 많은 말을 키우리라 싶다. 산에서 말을 타다 넘어졌다며 하루 종일 앓던 것을 보면 확실하다. 이들은 핫갈에 머물다 여름이 되면 살림살이, 가축을 포함해 모든 것을 갖고 멀지 않은 고향의 게르로 간다. 그 시기는 학교가 방학을 하는 시기이고,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기이고, 무엇보다 풀이 자라나는 시기다. 게르로 돌아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분명 그들의 게르는 말들이 그 기간 동안 풀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많은 부분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해야 하고 마을도 가깝지 않기 때문에 자주 가지 못함에도 그들이 매년 모든 짐을 싸 떠나는 이유는 그곳이 자신들의 가축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말 똥은 말 우리에만 있다, 적어도 집 안이라면. 매일 아침 말 우리에는 하루 동안 쌓아둔 말 똥이 있다. 4월은 날이 추워 똥이 금방 딱딱해지는 덕에 말 똥을 치우는 입장에서는 쉽게 청소를 할 수 있는데 내가 매일 그랬다. 트럭에 말 똥을 모아두면 지나가다 보이는 게르에 준다. 유목민들이 말 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결코 거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유목 생활에 말 똥, 아마 거름이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귀여운(?) 염소들은 말 똥을 트럭에서 쓸어내리면 꼭 몰려와 냄새도 맡아보고 혀를 대보고야 돌아선다. 집 밖에 나가면 그때부터는 무법지대다. 대문을 열면 두 가지가 먼저 맞이하는데 하나는 모래 바람이고 하나는 가축의 똥이다. 모래 바람이야 날씨의 기분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가축의 똥은 한결같아 말 그대로 어디에나 있다. 똥이 사라지는 것은 거름이 되어 쓸모를 다 하거나 지나가는 차들이 더러운 줄 모르고 똥을 집까지 가져가는 경우다. 그래도 4월은 똥이 빠르게 굳어 냄새가 적게 나 다행이랄까. 설령 밟아도 떼기 쉽고,,, 

 길거리에는 야크와 말 두 파의 동물이 활보한다. 가축이 재산인 만큼 주인이 있겠지만 그들의 낮 생활을 보면 주인이 어디에 누구일지 궁금하다. 똥으로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들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어먹으며 한가로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4월은 풀이 자라기 전이기 때문에 가축들이 들에만 있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며 풀을 찾는다. 대부분의 집은 높은 담을 세우고 대문은 철문으로 막아 집에 건초를 쌓아둬도 문을 열어두지 않으면 동물들이 들어올 수 없지만 잠깐 열려있는 틈으로 어느 순간 집에 들어와 건초를 먹고 있는 무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지면 이들도 눈치를 보며 빠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이 그렇게 거칠지는 않다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번은 길을 걷다 울타리를 부수고, 이 집은 울타리가 약하고 낮았다, 풀을 뜯어먹는 야크 무리를 본 적 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집주인이 나와 울타리 앞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함부로 나오지 못하고 야크들이 떠나고서 나왔구나 생각했다. 말의 경우에는 뒷 발이 위험해 한 발만 맞아도 날아갈 정도니, 실제로 뒷 발에 성인 남성이 날아가는 것을 봤다, 거리에서 이들을 만나면 눈을 깔고 마주치지 않고 지질한 모습으로 어깨를 좁히고 땅 보고 걸으며 ‘제발 시비 걸지 마라’ 생각하면서 얌전히 지나가는 것을 바라는 것이 바람직하다. 까지는 아니지만 도발해서 좋을 것 없다.

 2주간 매일, 빵을 먹는 아침 식사를 제외하면, 한 끼도 빠짐없이 고기를 입에 물었다. 우리나라는 회식 때 고기를 먹는데 얘네는 뭘 먹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축 고기가 들어간 식사의 연속이었다. 유목하는 국가답게 가축도 골고루(?) 하루는 야크를, 하루는 말, 하루는 양고기 이런 식으로 먹는다. 인구수보다 가축의 수가 더 많다는 말을 비추어 볼 때 몽골인 300만 명이 매일 먹는 가축의 양보다 새로 태어나는 수가 비슷하거나 더 많은 것 같다. 간식으로는 말린 치즈를 자주 먹는 것을 보면 환경에 따라먹는 주식, 간식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지점은 현대 기술이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들이 무작정 이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도축장에서는 현대 기술이 들어간 사료를 통해 가축을 빠르게 키워 고기가 가장 맛있을 때 도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들은 그러지 않는다. 아마 사료를 먹여 빠르게 키우는 것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겠지만, 유목민은 상황이 다르다. 우선은 개체수가 워낙 많다 보니, 가축 수가 인구수의 10배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늘 많고, 만약 사육장처럼 할 경우 감당해야 할 사료 값을 포함한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다. 더불어 이들이 유목하는 이유가 잡아먹기 위해서도 아니니 말이다. 물론 이들이 무작정 기술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태양열로 전기를 모아 저녁에 사용을 하고 가축 칠 때는 오토바이와 오프로드 자동차를 타는 등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기술은 이용한다. 

 가축은 재산이다.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이 가축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가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반려동물 키우듯 사랑으로 자라나는 가축과 인간의 관계도 보기 좋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가축은 그들의 생활이고, 돈벌이고, 더 나아가면 식량이다. 내가 지켜본 바 우리가 반려동물 대하듯 이들을 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십 년 가까이 함께 지냈지만 서로 가까이할 때 공격성을 갖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에는 애정을 근본으로 하는 신뢰가 있지만 가축과 인간 사이에는 신뢰가 없다. 가축은 반려동물과 시작점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가축을 반려동물 대하듯 대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무지를 포장하는 것은 스스로 욕되게 할 뿐이다.

 이들 삶에 가축이 없다면 어떨까. 가축이 없다면 삶이 허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구상해야 할 정도로 가축은 이들 삶에 깊숙이 배어 있다. 생활의 모든 것이 가축과 연관이 되어있어 샤워를 할 때 머리에서 말 똥 냄새가 날 정도로 가축은 이들 삶의 한 축이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는 대들보가 있다. 이들은 우리처럼 전통 가옥에 대들보는 세우지 않지만 가축이 그들 삶의 대들보로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목민의 시작이자 끝은 가축이다.


 핫갈은 첫 시작지로 매력적일까. 혹은 내가 고른 도시로 후회가 없을까.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은 나에게 재미였을까. 새로움은 언제나 흥미로울까. 생각이 많은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핫갈을 가게 된 것에 일절 후회 없다. 핫갈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으로 가득 찬 곳이라 새로움이, 말 똥을 치우거나, 장작을 패거나, 하늘에 뜬 셀 수 없는 별을 보는 것 등, 놀랍고 힘들어도 즐거웠다. 그럼에도 생각이 많아진 것은 그곳이 지나치게 무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때에 따라 일을 하고 여유가 많고, 나는 외부자기에 이들을 돕는데 한계가 있다. 이곳 사람들을 따라 살고 관찰하는 것은 재밌지만 그뿐이다. 또 언어의 단절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람이 사회 속에 있다는 것은 교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 과정에 곡해나 갈등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감이 없는 사람은 사회에 속하기 어려운데, 나는 몽골어를 전혀 모르고 이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모르다 보니 소통이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그나마 그 속에서 내가 사회로 뛰어들기 위해 했던 노력의 일환 또 이들이 나를 자신들의 사회로 끌어넣기 위한 노력이 번역기에 기댄 소통이었다. 소통이란 사람의 감정을 일게 하지만, 사실은 끝없는 막힘과 끊어짐으로 소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했고 막연한 감정의 선들만 따라가게 되었다. 웃고, 웃고, 웃고. 핫갈에서 보낸 시간의 가장 아쉬운 것은 내가 그곳에서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보다도 더 그들의 사회에 뛰어들 수 있도록 소통하지 못한 것이다. 내 능력 또 그들의 능력 밖의 일이다 보니 이루어질 수 없어 그 벽을 기대고 먼 하늘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하늘은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것처럼 이 사회 역시 내 눈에 선하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새로움을 알아가는 것은 재밌고 즐거운 것이다.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들을 갖는 것은 귀하다. 핫갈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없을 삶으로 귀하게 내 몸과 머릿속에 또 기록으로 남게 되었고, 이곳에서 느낀 나의 벽들 역시 계속해 나갈 이 프로젝트에 있어 더 보완할 수 있는, 더 나은 문화 경험과 기록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내 여행은 아직, 멈추지 않는다. 아직은 기름이 더 있으니 다 쓸 때까지는 밟아볼 예정이다.


후기


 첫 여행지인 몽골에서의 시간이 끝이 납니다. 음,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많아 꽤나 마음이 어렵기도 합니다. 나의 부족도 느끼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도 느끼며 그 혼합물이 가져온 내 마음의 짐이 무겁습니다. 변명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여행은 2년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진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울란바토르에 와 5일을 보내는 와중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보다도 설레지 못한, 이 꿈을 이루는 현실이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다만 아직은 여행 초반이고 도시에서 도시를 온 것은 저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편이기에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핫갈이라는 마을로 갑니다. 핫갈로 가는 길도 쉽지 않았고, 핫갈에서의 시간은 더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시간의 여유가 생길 때 마음의 여유가 따라오게 되고 너무 좋아지지만 동시에 또 많이 늘어집니다. 더불어 그렇게 늘어져도 시간이 남을 정도로 여유가 많아지니 제 작업을 하면서도 지루함을 이겨내야 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제가 아무리 여유 시간 없이 작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현실과 또 끝없는 유혹들로 작업만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짧다면 작업만 하겠지만 시간이 기니 작업만 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그 무료함의 무게가 하루가 갈수록 무거워지니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이 여행이 즐겁지가 않다는 생각. 나의 여행의 본질은 재미와 즐거움인데 그 둘을 쏙 빼놓은 여행을 하자니 이게 맞는 걸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이곳에서 할 게 없는 것의 문제는 아니고 소통이 안되다 보니 몸만 심심할 뿐 아니라 입도 심심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행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한 달을 머물며 제 작업을 하려던 계획은 2주에서 3주로 단축하기로요. 제 생각에 시골은 할게 정말 적기 때문에 한 달까지 머물지 않아도 어느 정도 그곳의 문화는 경험하고 기록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우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2-3주를 선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사실 그렇게 줄인다 해서 미래의 기간이 줄어드는 것이지 당장 나의 지루함이 줄어들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제 작업도 있고 조금씩 늘어나는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겨우내 겨우내 작업 생활을 하던 도중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카메라가 고장이 났습니다. 저의 작업은 글만이 아니라 사진도 함께 이루어지다 보니 그중 한 축이 문제가 생기는 것은 큰 일이었습니다. 빠르게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각을 했고 저는 바로 주말 2주를 채우는 시점에 도시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도시에 가 카메라 수리든 새로 구매하든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준비를 다시 해서 다음 행선지로 가기로 말이죠. 물론 그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고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기존 2주만 한 곳에서 보내며 기록까지 마치는 것은 쉽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막상 도시에 와 글을 써보니 현장감이 많이 떨어져 생각의 깊이를 끓이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환경도 이곳보다 좋다 보니 유혹도 더 많아지고요. 그래서 2주간 경험을 하더라도 바로 떠나서는 안되고 며칠 더 있으며 글을 마무리하고 부족한 사진을 채워낼 수 있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한 지역에 있더라도 3주를 보내면 열흘은 혼자, 열흘은 홈스테이를 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자유, 재미, 즐거움 등을 섞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홈스테이는 못 구하면 계속 혼자 지내겠지요. 그리고 말이 통하는 사람을 한 명은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동행이든 거기서 만난 인연이든 말이죠.

 몽골은 저의 시작 지점이었지만 현재 저의 작업의 시작 지점이 몽골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글적으로, 사진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상황을 봐 몽골을 대신할 국가를 선정할 생각입니다. 우선은 아르메니아로 가 기존 일정대로 진행하되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일본에 가 잠시 머물며 또 경험을 해볼까 합니다. 혹은 앞으로 제가 자리 잡고자 하는 제주로 갈 수 도 있고요. 이것은 확정된 것은 아니라 확답은 드리기 힘듭니다만. 몽골은 0.5로 프롤로그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겠습니다. 더 많은 것을 기록하고 풍부하게 담아내겠습니다. 부족은 필연이지만, 완성은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셔 너무 감사합니다.


 제 여행은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혹 이런 글과 사진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다면 홍보를 모쪼록 많이 해주세요. 채워질수록 여행을 완주할 확률이 높아진답니다. 나를 위해 여행을 시작하지만 나만을 위한 여행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  ‘What is ???’ 시리즈는 저를 후원하는 분들께만 보내지만, 프롤로그일 수 있는 ‘What is Khatgal’의 경우 공개를 하려 합니다.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제 여행에 관해 더 알아보시고 편하게 손길을 건네주세요. 글은 저의 스타일과 피드백을 반영해 총 12편이 쓰일 예정입니다.


+) 링크 : https://docs.google.com/forms/d/1Y91bDHd80FwX_6OZ06SOfTprRO1ndDwHYjB1k3IX4kA/edit


 14.05.22 Arabica Duck


홉스골의 별, 4월은 아직 겨울이다.
말을 늘 관리하는 이들


요리는 모두의 몫이다. 누구나 요리를 할 줄 안다.
손님이 오면 늘 차부터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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