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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May 27. 2022

중앙앙싱앙-칭정항 상랑등

중앙아시아 -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17일간의 기록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17일간 돌아다닌 중앙아시아에서 낮 시간의 열기를 그대로 흡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 어디를 가도 친절한 사람, 불친절한 사람, 친화력이 좋은 사람, 좋지 않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분포하지만 내가 만난 소수의 표본들은 친절하고 친화력이 좋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나에게 잘 보일 이유도, 필요도 없기에 나에게 잘해준 것은 사실 나를 위함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를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종국에는 모두를 위한 것으로 귀결이 되었으니 동기의 본질은 무엇인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친구는 나와 산을 갔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서로를 알아본 우리가 자연스레 웃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서로 잘 맞고 좋은 시간을 보낼 것임을 직감했던 것 같다. 산에 올라가 자연을 감상하며 서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고 식사를 위해 다시 도시로 향했다. 끝없이 소리 지르는 버스에서 우리는 말없이 창 밖을 보기도 버스의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말을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지금은 말을 안 할 적절한 시간일 것이란 생각. 그렇게 식당에 가 새로운 친구가 합류했다. 그녀의 친구는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간 경험도 있고 한국어를 정말 잘했다. TV프로나 인터넷에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 대해 들은 적은 많아도 한국에 대한 관심을 언어로 승화한 경우를 처음 봐 너무 신기했다. 과거와 달리 외국에서 한국어를 들을 기회가 적은데 외국인이 한국어를 하는 것을 들으니 또 웃음이 자꾸 났던 기억이 있다.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은 정말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이다. 그들이 한국을 왜 좋아하는지는 가지각색이겠지만, 사실 좋다는 것에 부연설명이 필요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보면, 내가 그녀에게 왜 한국을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 내가 자연을 왜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그냥, 좋잖아’라고 답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셋이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또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들이 좋았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특히 처음 만난 사람과, 이게 아마 내가 중앙아시아의 시작을 잘할 수 있던 이유일 것이다. 특히 그녀와는 이틀 뒤 시간이 있어 또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으니.

 키르기스스탄을 처음 갔을 때,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다 택시를 놓치는 바람에 바가지를 쓰면서까지 택시비를 한 번 더 내게 되었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고 문제 속에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답을 제출하고 정답까지 알게 된 지금은 문제가 참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돈으로 인생수업을 한달까. 숙소 문제도 있었다. 데이터가 없던 나는 와이파이로 숙소를 구하려 했고 그 생각은 와이파이가 죄다 비밀번호가 걸려있던 탓에 금이 가 버렸다. 별 수 없이 직접 돌아다니며 숙소를 찾아봤지만 겨우 찾은 숙소는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 다른 곳으로 또 가야 했다. 리셉션의 직원은 대신 와이파이를 사용해 숙소를 예약하고 찾아갈 수 있게 도왔다. 덕분에 잠깐 휴식도 취하고 잠자리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고진감래라고 겨우 도착한 숙소는 버스 터미널 바로 옆이라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기 수월했고, 숙소의 직원은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말로 나에게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은 버스 터미널에서였다. 버스 터미널은 버스뿐 아니라 택시와 미니 밴을 탈 수 있는 곳이다. 중앙아시아의 특징 중 하나가 국경을 넘는데 버스, 기차, 미니 밴, 택시 등 육로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올 때 겪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지방 도시에서 안전하게 국경을 넘으려 했다. 그래서 택시를 탔는데, 이곳은 택시와 미니 밴의 경우는 정원이 다 타야 출발을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하염없이 함께 갈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도 비슈케크에서 내가 가는 마을 오쉬까지는 11-12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나 역시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3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오쉬로 가는 사람을 못 찾아 나는 경로를 바꿔 바로 우즈베키스탄으로 가기로 했다. 국경을 넘는 이동수단을 탄다는 것이 우려되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매표창구로 착각한 나를 안내소 직원은 버스표를 살 수 있는 터미널 내 창구로 데려다주며 언제 어디로 간다고 통역을 해줬다. 창구 직원은 나에게 비자가 있냐 물어봤고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을 갈 때는 30일간 비자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비자가 필요한지 이 말을 쉽게 믿지 못하고 계속 안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결국 버스 터미널 직원이 내 문제를 돕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로 확인을 했고, 심지어는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지인에게까지 전화를 연결해줘 소통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그들도 확인하고 표를 살 수 있게 되자 다음으로 PCR 검사를 받았는지 물었다. 아,  내가 검사를 못 받은 것을 안 직원은 검사를 어디서 받을 수 있고 어떻게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금액은 얼마인지 알려줬다. 심지어는 직접 데려다준다고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는지 나는 숙소에 다시 짐을 맡기고 돌아온다 이야기를 했지만 운전자를 만나지 못했다. 어쨌든 그들의 적극적인 도움 덕에 나는 순조롭게 PCR 검사를 하고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다시 표를 구매하러 터미널로 갔을 때 내가 그들을 기억하듯 그들 역시 나를 알아봤고 버스에 탈 때는 인사와 감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키르기스스탄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른 아침 우즈베키스탄에 도착을 했을 때 꽤나 길을 헤맸다. 지하철 표를 사기 위해 ATM에서 돈을 뽑아야 했는데 ATM을 찾을 수 없었다. 매표 직원에게 주변에 ATM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지나가던 승객이 나에게 자신 내리는 정류소 근처에 ATM이 있다며 자신이 돈을 내줄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호의에 감사해하며 나는 그녀가 가는 역 근처 ATM에서 덕분에 돈을 뽑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덕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지만 처음 만난 이의 친절에 감동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는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갈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기차표를 사러 갔는데 러시아말을 몰라 줄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무작정 한 군데 줄을 서서 내가 가려는 곳을 적은 공책을 들고 있었는데 같은 줄에 있던 손님이 나에게 다른 줄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뒤에 있던 다른 손님은 나를 데리고 어딜 가는지 묻고 안내 데스크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지까지 도와줬다. 덕분에 표 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렇지 무사히 표를 살 수 있었고 표를 사 나가는 길에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자티 이맘 광장에 갔을 때 모스크를 한참 구경하고 있었다. 이곳은 꽤나 큰 관광지로 많은 관광객이 있었는데 한 청년이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가 나에게 그런 요청을 한 것은 아마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어 그랬을 것이다. 그의 사진을 찍어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무슬림인 그는 일요일인 그날 하자티 이맘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고 나오던 참이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소도시 출신으로 타슈켄트의 대학에서 정치를 공부한다 했는데 대통령이 꿈이냐는 내 질문에 그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답을 했다. 대통령은 어린 시절 스치는 꿈으로 여겼는데 성인이 대통령이 되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 신기했다. 그런 끌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관광객으로 온 나에게 끌렸고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그에게 끌렸다. 덕분에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날 또 만나자 약속했고 다음날 만나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 보낸 시간 중 특이한 것은 계획하지 않고 걸으며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는 내가 타슈켄트를 더 경험하기를 원했다. 덕분에 나는 가보지 않은 관광명소와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고 타슈켄트를 다른 곳보다 더 애정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예상치 못하게 많이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리가 후들거린 기억은 있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17일은 겨우 17일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정신이 없었다. 온통 좋은 기억뿐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중앙아시아를 좋아하게 된 많은 이유가 있고 그중 가장 큰 것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이들이 내게 건넨 손들이 나를 그들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좋아할 수 있게 했다. 여행에는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가는데 나를 붙잡고 내가 붙잡은 인연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여행을 한다고 만날 수 있는지 모르는, 다시 남이 될 수밖에 없는 인연들임에도 서로 진심일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서일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관계와 시간을 두고 지금이 아니라면 없을지 모르니까. 그들과의 이별에 아쉬움을 섞지 않는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그들은 그곳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음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에 100%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중앙아시아는 그 자리에 있고 나만 이곳저곳을 떠돌 것인데 향후 다시 가는 날에는 그들과 혹은 또 새로운 인연들과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그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글은 조금 가볍게 적었습니다. 깊이가 깊어도 좋지만 얕아도 그것대로 좋으니 말입니다. 비빔밥마냥 잘 비빌 수 있으면 좋겠다만 저는 비빔밥도 제대로 안 비비고 먹는 타입이라 그런지 깊이와 가벼움을 잘 섞는 것이 영 쉽지 않군요!


그래도 글은 나쁘지 않으니 모두 즐겁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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