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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Apr 27. 2022

10평 원룸, 한 지붕 아래 4 가족 +덤

공간에 대하여

이곳은 Khatgal이라는 지역입니다. 몽골 여행을 하신 분들은 알 법한 홉스골 호수를 옆에 두고 있는 마을입니다. 호수가 어찌나 큰지 제주도보다 넓다고 하네요. 이곳은 관광시즌도 아니고 영어를 하는 사람도 적어, 한국어도 마찬가지고, 꽤나 심심합니다. 처음 왔을 때는 한 달을 있겠다는 마음이었지만 그 지루함을 못 견뎌 2~3주로 줄이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제 작업을 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곳은 다음 주 주말에 떠납니다. 이제 반 정도 지난 지금 남은 기간도 잘 관찰하고 경험하며 기록해보겠습니다.

+) 매 단락마다 가장 핵심 문장 혹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은 굵게 표시해보려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참 궁금하네요


10평도 안 되는 작은 집, 나를 제외하면 4 가족이 살고 있다. 집은 부엌 겸 거실 겸 침실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곳이다. 밖은 말을 키우는 우리가 있지만 내부 공간에 구분이 없다. 불을 때면 난로고, 가스레인지가 된다. 밥을 받으면 바닥도, 식탁도 밥 먹는 공간이다. 바닥에 누우면 침실이 된다. 손빨래를 하면 빨래방이 된다. 이처럼 어떤 것을 하는가에 따라 공간이 변모할 수 있는 이곳은 마법의 원룸이다. 


 가구들은 집의 모서리에 맞게 배치돼 있다. 냉장고(김치), 침대 두 개, 식탁. 내가 없다면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에서 성인이 한 명 추가되어 다소 비좁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에 부족함, 불편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적응의 힘일까. 이곳에는 매일같이 손님이 오는데 그때마다 손님이 앉을자리는 생긴다. 아, 기존에 앉아있던 사람이 바닥으로 내려가면 된다. 그래도 아직 30명은 더 바닥에 앉을 수 있으니, 작아 보여도 절대 작지 않은 공간이다. 실제 다른 집에 방문했을 때는 30명 가까이 한 집에 모여 노래 부르며 놀기도 했다. 지독하게 끊지 않고 불러 새벽 3시에 나는 집에 가 자고 싶은 괴로움에 휩싸여 있었다.


 과거 제주 원룸에서 살 때는 친구와 함께하니 편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마다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나의 일들을 하거나 내 기분에 따라 혼자 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모두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지금은 그때만큼 단독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나도 내 일을 집중하고 싶을 때는, 이를 테면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할 때,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오픈된 공간에서 내 할 일을 하는 편이다. 오히려 사람이 더 많은 이곳이 전보다 private에 대한 욕구가 적은 이유는 아마 언어 차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언어보다는 소통. 일전에 함께 살 때는 집에 둘이 있게 되면 그때부터 그날 있었던 일을 포함해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많았다. 허황된 것 같지만 언젠간 이루어질 일을 이야기하는 날도 많았다. 그때는 말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되려 못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정도로 말을 안 한다. 나는 몽골어를 못하고 이들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 한국어는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 말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힘들고 서로가 서로의 행동, 몸짓을 보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분명 나도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할 때면 말이 많지만, 이들도 가족끼리 또 손님이 왔을 때는 말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가 조용할 수 있는 것은 소통의 불편함으로 인함이 분명해 보인다.


 현시대는 IT의 시대가 아니랄까 봐 이 시골까지 스마트폰이 유효하다. 이곳 가족들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항시 그러는 것은 아니고 각자 핸드폰을 붙들고 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아마 대화는 이 중 한 명이 핸드폰을 하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오픈 공간은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보다도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많은. 그럼에도 도시 속 삶보다 이들이 더 나은 것은 늘, 하루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손님이 오기 때문에 핸드폰을 붙들기만 하기보다 대화의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손님이란 오려고 하면 언제든 올 수 있으나 집주인의 사정을 보고 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몽골어를 잘 못해 이들이 사전에 연락을 하고 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일 손님이 오기 전 전화가 오는 것이 아닌 것을 봐서는 일단 집을 방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왔다가 금방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남의 집에 연락 없이 방문하는 것이 이들의 삶에서는 결례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자주 밖을 나가는 이 집의 아저씨도 그때마다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니고, 그의 직업은 말을 키우는 것이니, 남의 집에 놀러 가 이야기를 하다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오면 집은 접대실로 변모해 집안의 사람 중 하나는 차를 대접한다, 나도 집안사람 중 하나로 손님 접대를 하곤 한다. 차를 대접하고 말린 치즈, 초콜릿, 빵 등을 대접하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끼니를 대접하기도 한다. 그들은 매일같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가족이 아니어도 매일 만나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면 나와 친구처럼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각자의 에피소드를 돌아가며 푸는지 모르겠다. 아마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삶이라면 몸짓으로 보여주는 것을 미루어 보아 자신의 에피소드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가족 구성원에 맞게 공간들이 한 사람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하면 각자의 방이 있고 대부분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부엌은 엄마가 거실은 아빠가 이용한다. 비록 부엌과 거실이 방 같은 private 한 느낌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들의 공간이라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만약 우리 가족이 방이 없는 원룸에서 생활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랬다면 가족 모두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요리를 하고 주방 일을 하기도 하고, 모두가 편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을까. 말이 더 많았을까. 물론 이 집도 엄마가 있을 때 집안일이 더 이루어지는 편이긴 하다.


 어느새 나도 이 가족의 구성원이 된 것만 같다. 말만 다르고 적을 뿐 똑같이 자고 일어나고 집안일을 거두고 장작을 패고 말 똥을 치우기 등 일을 돕고 있다. 아무래도 오픈된 공간이 있다 보니 눈치가 보이는 것도 맞지만 그와 더불어 심심한 시골 동네에서는 할 일이 많지가 않다. 개인 작업을 위해 돌아다닌다고 하지만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갈 곳이 많지 않아 몇 시간이면 일을 보고 돌아올 수 있다. 이들 가족도 마찬가지로 각자 일에 따라 한 두 시간 정도 중간에 나갔다 돌아오니 정말 언어 차이를 제외하면 다른 것이 크게 없는 것 같다. 조금 덧붙이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이고 할 일을 찾아 하니 이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가족을 따라 이웃집에도 가보고 게르에도 가봤다. 어디를 가도 난로?를 중심으로 공간을 이용한다. 우리나라였다면 인테리어가 튀어나와 ‘감히 어딜 집을 안 예쁘게 하려고’ 하며 막았을 테지만 이들에게는 집이 예쁜 것보다는 어디든 따뜻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디든 집의 중간쯤에 대뜸 난로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같은 온돌문화가 아닌 이곳은 난방을 때우지 않으면, 장작으로 불을 피워 난로를 켜는데 물론 도시는 사정이 다르다, 금방 공간이 추워진다. 새벽에는 난방을 켜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밤새 일어나 장작을 넣어야 하는데 누가?, 이불도 두 겹은 덮고 자는 실정이다. 이런 것에 비추어볼 때 디자인은 유용성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나도 유용성을 갖지 못한 디자인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들이 영어를 할 수 있었다면 대화가 얼마나 많아졌을까. 언어가 다른 것의 가장 큰 저주는 그 언어를 못하는 나에게 지루함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좋으나 싫으나 대화가 이루어질 텐데 말이 안 통하다 보니 대화보다는 반복적인 문장들만 난무한다. 음식이 맛이 있는지, 차를 마실 것인지, 오늘은 뭐했는지, 춥지 않은지 등. 매일 같은 질문에 답도 비슷하다. 음식은 늘 맛있어 끼니마다 두 그릇 씩 먹고, 차는 물이 없으면 마시며, 이곳은 할 게 없기 때문에 갈 곳도 많지 않아 나는 매일 걸을 뿐이고, 겨울이라 늘 춥다. 나도 질문을 받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들의 답을 듣는 것은 귀하다. 내 적극성이 문제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영어를 못하고 몽골어를 못하는 언어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 일 년 반 가까이 이렇게 지내야 한다 생각하니 새삼 대화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닌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어디에든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한국, 제주도 생각이 계속 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개인 공간이 있는 것은 덤이고.


 사람은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도 사람을 만든다. 사람의 생활이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을 이번 홈스테이에서 느낀다.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내는데 나의 방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이켜보며 내가 앞으로 살아갈 때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뭐랄까, 나는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혼자 있다면 상관없지만 사람과 같이 있다면 말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침묵의 공간보다는 노래하는 공간이 개인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한다. 방은 독립된 공간으로 특정 용도를 위해 만들어는 곳인 만큼 특정 용도를 위해서만 쓰고 그 외의 시간은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 밥 먹을 때는 식탁이, 요리할 때는 부엌이, 쉴 때는 거실이, 잘 때는 침실이, 손님이 왔을 때는 접대실이 되어도 상관없는 공간이지만 빨래는 빨래방에 가서 하고 싶다. 아, 화장실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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