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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Feb 01. 2021

1월 4주 차

관찰하다 :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다

-() 대한 관찰 보고서-


 눈을 밟을 수도 있지만, 바라볼 수도 있다. 창으로 흩날리는 눈 바라보며 외치는 외마디 속에는 매번 어떤 감정을 담아내는 것일까. 언젠가 눈보다도 시원하고 순수하던 아이의 모습이 비친다. 삶의 작은 것 하나 흘리지 않고 끌어안으며 이불 위로 달려들던 아이도 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그저 좋았던 때가 있었다. 크는 것인지 큰 것이 오는 것인지. 감각은 끔뻑 죽어 모든 깨어남이 언제고 잊혀버린 날, 어린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 맞을까. 나도 세상도 변해버렸다. 더 이상 뒤돌아보는 것은 내가 아닌 나를 보는 것이다.


 창 밖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에는 흐릿해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어깨에 눈을 지고 가는 가장. 책임감이야 말로 우리 삶에 견줄 바 없는 무거움으로, 어깨의 눈은 책임감이다. 본색 덮는 무게감이 있다. 하지만 가장의 무게와 가장의 권위는 비례도 반비례도 아니다. 권위는 희지 않으며 각져서는 안 된다. 둥그스름한 푹신함으로 모든 색을 빨아들이고는 깨져버려 있어도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걷는 가장의 어깨에 책임의 무게는 있어도 권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큰길 지나는 자동차의 불안함은 소리로도 알 것 같다. 자동차도 추운 날은 춥다. 손 씻기 위해 틀어놓은 물줄기만큼 추우리라. 가게로 들어오는 바람도 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따뜻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턱 괴고 앉아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내 위에서 도는데 나는 어느 하나 알아채지 못한다. 떠드는 사람들이 한심(寒心)하다. 사실 사람들 떠드는 것은 인심이다. 그 온정이 세상 따뜻하게 해주는 줄 모르고 창 밖 한기만 바라본다. 파리라도 있으면 애꿎게 괴롭힐 텐데. 이런 생각 들 만큼 한심(閑心)하다.


 강도 추워 끝없이 움직이는 요즘이다. 가만히 있으면 집 앞 호수처럼 얼어버리겠지. 아무렴 어떨까. 얼어버리면 꽁꽁 얼었나 확인하는 게 재밌다. 재미란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끝없는 불안과 떨림. 미지(未知). 언제부턴가 미지를 찾아다니고 있다. 눈 내리듯 돌아보지 마라. 한 번 내린 눈 녹을지, 쌓일지, 얼지 모르듯 내 삶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디딘 발을 뺄 생각 마라. 눈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미지를 대할 때는 언제나 마음을 열 것. 안에서는 눈 내리는 것을 볼 수밖에 없다. 눈 녹듯 장면들이 녹아버린다. 

내가 아름다움과 지혜(美知)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날이 추워 나도 추운 것이 아니다. 내가 차가워 마음의 여유 한 칸이 없다. 여유가 없으면 감각이 죽어버리고, 세상이 불편하다. 모든 것이 곡선인 곳. 자연은 태생적 곡선이라 부드럽고 따스하다. 감각 충만하다. 인간은 직선적이다. 이만큼 신과 인간의 차이가 있다. 직선만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얼어버린 감각을 깨우고 곡선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를 동사시킬 도전이다. 미지가 아닌 죽어버린 땅이다. 나도, 날도 추워 아무것도 아니다. 신께 기도할 여유 한 칸이 부족할 따름이다. 감각의 원천이 날 부르면 좋겠다.


 겨울의 중심에 서 있는 것. 짓궂은 눈은 질투가 심해 응집한다. 응어리진 눈을 딛고 일어서야 다가올 새 봄의 기지개를 켤 수 있다. 응축된 마음도 녹이는 미소를 띨 줄 알아야 한다. 밖에 눈 내리지만 내 안에 눈 내려 순백의 이미지 가득할 때, 그제야 나도 겨울이구나 좋아할 수 있다. 눈의 촉감과 대오, 깨끗함. 감정의 타락과 불순한 마음 덮어줄 그런 눈이 내 안에 펑펑 내려야 한다. 그래야 각양각색 세상 대하는 나도 웃을 수 있다. 


 발자국 보고는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좋아하는 이의 발을 보고, 발걸음 소리를 듣고, 걸음걸이를 보고는 이 사람을 알아채는 관찰력이 있으면 좋겠다. 지나간 이를 뒤쫓아 놓치지 않게, 그래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눈길 위 발자국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올까. 발자국을 새기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내 뒤를 따를 수많은 사람을 등에 업고 걷는다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마음이 담길 수밖에 없다. 

새 길은 새 걸음에서 나온다. 첫 발 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너도 나도 새 길 걷게 되는 눈길은 세상의 다양성이다. 이처럼 다양하니 한 사람 한 사람 인정하고 사랑하자. 솔솔 눈 내리면 또다시 처음이다. 돌고도는 인생이다. 개인은 각 개인이며 우리는 똑같이 걸으니 또 함께하자.


 눈이 따뜻한 것은 흔하디 흔한 것이다. 눈은 적극적이다. 수줍은 눈은 뜸 들이며 다가오지만, 날 가장 먼저 안아주는 것도 눈이다. 사랑을 막고서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음 열고 우산 접고, 모자 벗어 귀 빨개지도록 눈과 어울리자. 부끄러워 빨개진 귀, 눈은 이해해준다.


어릴 적엔 큰 눈사람 만들 만큼 눈이 많이 왔다. 마음은 그때 못지않지만 몸도, 세상도 변했다. 급변하는 세상이라는데 10년은, 20년은 긴 걸까 짧은 걸까. 눈이 와 눈 가지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면 괜스레 짓궂어지고 싶다. 더 이상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되는 것을 실천할 만큼 마음이 커버렸다, 아니 나이 들었다. 귀한 것을 귀하게 간직하지 못한 나만 남았다.


 눈 내리는 밤, 달을 볼 수는 없을까. 좋아하는 것들이 한데 모이면 곤란하다. 날 봐달라, 좋아해 달라 하지 않아도 앞다퉈 나의 사랑 고백을 들으려 하는 것 같다. 마음이 넓으면 좋겠지만 나는 둘 다 동시에 좋아할 마음을 지니지 못했다. 그래서 눈 내리는 밤에 달은 숨고, 달 환한 날은 눈이 이곳에 내리지 않는 것 아닐까.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 그리움 투성인 것일까.


 눈이 보고 싶을 때는 삿포로가 생각나기도 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아이슬란드가 궁금하기도 하다. 더 많은 눈을 보고 싶다. 눈과 함께 ‘푹’ 눕고 싶다. 나와 함께 있다는 순수한 위로를 받고 싶다. 많은 이들이 눈을 치우고 도로에 길을 털 때 치워놓은 눈 속에 파묻히고 싶다. 그 깊이에 숨 못 쉬어도 괜찮을 것 같다. 죽음은 언제나 옆에 있고 눈 속의 죽음은 새하얘 춥지도, 무섭지도 않을 것 같다. 눈이 너무 좋아 죽음마저 나누고 싶은 그런 나는, 남들이 내 죽음에 울 때, 웃음 진 얼굴로 딱딱하게 사라질 것이다.


 봄의 생기를 사랑하고, 여름의 푸르름을 반기며, 가을의 쓸쓸함을 끌어안 듯, 겨울의 따스함을 느끼고 눈과 함께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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