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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Feb 22. 2021

2월 2주 차

궁리하다 :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하다.

 귀여운 게 좋다. 생물, 무생물 뭐든 귀여우면 그것으로 충족되는 마음의 방이 있다. 시감, 촉감, 청감 그리고 이를 망라하며 넘어서는 느낌. 징그럽게 생긴 글자가 있는가 하면 예쁘거나 귀여운 글자도 있다. 꼬이고 꼬인 ‘뷁’ 같은 글자가 징그러운 느낌이라면, ‘글’이나 ‘별’ 같은 글자는 예쁜 글자다. ‘궁리’는 귀여운 느낌의 글자다. 청감상 궁리의 발음을 들어보면 궁에서 ‘이응’ 받침이 주는 느낌이 귀엽다. 동화작용으로 ‘리’가 ‘니’로 변하며 생기는 귀여움 은 덤이다. 외관상 ‘이응’ 받침이 모음 ‘우’를 받치며 나타난 형상도 귀엽다. 이런 이유로 궁리는 귀여운 느낌을 주는 글자다.
가볍게 궁리하다에 대해 느껴지는 면을 살펴봤으며 조금 더 깊게 살펴보자.


 궁리와 얽힌 이야기 속에는 어둠이 깔려있고, 먹구름 아래서는 휘몰아칠 비바람을 피해 젖지 않을 방법에 대한 궁리만 가득하다. 나의 궁리들은 먹구름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순간을 모면하고자 하는 단발적인 생명력을 지녔다. 한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올라간다. 당시 담임과 마찰이 잦았던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담임에 대한 욕을 하며, 문자에 선생 욕을 쓰고는 보내자 말자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쩌면 선생에 대한 내 감정이 가장 격했는지(물론 나는 반에서 선생에게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학생이었다.) 나는 기어코 전송 버튼을 눌렀고 무자비한 잡스의 아이폰은 그 길로 뒤 한 번 돌지 않고 담임의 핸드폰으로 날아갔다. 문자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었고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교무실에는 담임이 없어도 핸드폰에는 비밀번호가 있었다. 이후 쉬는 시간을 포함해 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궁리했다. 전학, 퇴학부터 어느 학교로 가서 무엇을 하고 살지 등등. 당연히 변명에 대한 궁리도 있었고, 당연히 학교를 마치고 나를 비롯한 몇 친구는 남았다. 반나절의 궁리가 효과 있었는지 방과 후 면담에서 선생은 내 말에 되려 감동을 받고는 징계조차 없이 사건이 마무리됐다. 또 다른 이야기는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 채점하며 밀려드는 걱정의 해일에서 살아남기였다. 시험지에 그어지는 작대기들은 모두 마음에 비로 쏟아지고는 큰 물을 일으켜 홍수가 되고 해일로 몰려오는 것이었다. 대개 기대에 못 미쳤기에 매 학기 엄마에게 무어라 말할지 궁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왜 그랬냐는 질문에는 시험이 어려웠고 다음 시험은 잘 보겠다는 단발성 공약만 있었다. 그때마다 이번 재난에서 겨우 살았다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곧 다가올 시간의 촉박함 앞에서 궁리는 곰곰한 차분함을 가질 틈이 없고, 무마하기 위해 여러 변명을 따져보는 것 이 전부다. 궁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되레 나의 상황을 인지, 인정하고 그 이후의 반성의 길에 대해 따져야 하는 것이었음을 10년이 지난 이제야 알게 된다. (어쩌면 선생에게 욕을 보내고도 무탈하게 넘어간 것도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 속 나의 궁리들이 어두운 배경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들은 시간의 파도 속에서 마모되었는지 얽힌 이야기와 궁리들에 대해 나는 향수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향수는 편히 쉬고자 하는 것이다. 여행 중 어디서 오는지 모를 불안을 숨과 함께 삼키며 살 때 향수를 느끼듯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의 좋았던 기억들을 꺼내 미소 짓는 편안함 속에서 쉬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나의 고향에 군락을 이루고는 내가 힘들 때 늘 정겨움과 따뜻함으로 날 맞이한다. 지금보다 불완전해 불안정한 그때의 나, 한 편으로는 그만큼 순수했던 어린 나는 어둠은 없고 화창한 날씨만 365일 반복되는 그런 고향에 있어 나의 어린 궁리들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나의 궁리는 매일 쓰는 일기와 매주 쓰는 감정 노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찍혀 나온 활 자를 따라 생각하기도 하고,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의 고기 중 한 마리를 낚아채 글을 짜내기도 한다. 그리고 나면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궁리한다. 고기를 회로 뜰지, 찔지, 구울지 또는 양식할지 방법의 다양함만큼 어떻게 해야 가장 맛있는 전개 방식이 되는지에 대해 궁리한다. 그리고 나면 문장을 지을 때 나의 감정과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궁리한다. 이후 글에 따라 더 나은 표현이나 매끄러운 전개를 위한 궁리를 한다. 일주일 내내 이러한 궁리 속에서 지내고 있고, 이런 궁리는 언제나 즐겁다.


 나의 단기적인 궁리가 글에 머물고 있다면 장기적인 궁리는 역시 여행이다. 그 안에서도 가장 큰 궁리는 자금 마련이다. 거대한 돈을 스스로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궁리는 생각 대가족의 일원이다. 내가 생각의 가족과 관계를 맺은 이후로 궁리도 나의 가족이 되어 평생에 나와 함께할 단어 중 하나다.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나를 따라올 꼬리표가 된다는 의미다. 나의 꼬리표가 나의 부끄러움이 되어 바지 속에 숨겨버리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내놓을 수 있는 나의 자랑이 되도록 나는 늘 궁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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