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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Mar 01. 2021

2월 3주 차

그리다 

그리다 : 연필, 붓 따위로 어떤 사물의 모양을 그와 닮게 선이나 색으로 나타내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면 참새들이 지저귀며 날아온다. 부지런한 참새들은 어디서 자고 아침부터 날 찾아왔을까. 고마움에 나도 모르게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를 하고 집에 있는 곡식 알갱이를 나눠준다. 새들 날아갈 즈음에는 아침 산책으로 중앙 광장에 간다. 이미 일어난 이웃들은 커피를 마시며 혼자 사색에 빠지거나 이웃과 이야기에 빠진다. 아침부터 고뇌를 하면 하루가 괜히 삐뚤 것 같은 기분에 자주 만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다. 빈자리에 앉아 이웃은 커피를, 나는 물을 마시며 함께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든다. 이야기 속에 빠진다는 것은 신비롭다. 스노클링 하기 위해 잠수하면 눈부터 마음까지 온 세상이 뒤집힌다. 세상의 회전을 거스르는 평화 속에 몰입하다 나오면 피부가 타있기 때문에 너무 긴 시간을 보내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한정적인 시간이 한쪽으로 매몰되는 것을 피해야 하루를 균형 있게 보낼 수 있다.


 작별인사를 하고 광장을 떠나 강가로 간다. 강가는 언제나 여름이라 아이들이 물장구치느라 바쁘다. 아이들 웃음소리는 강물만큼 맑아 목소리 떠다가 생기를 되찾고 싶을 때마다 마시고 싶은 청아함이 있다. 강물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갯벌까지 와있다. 신발을 신고 뻘을 들어갈 수는 없어 뻘에서 조개와 게를 캐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넉넉함은 필요 이상을 의미하고 필요 이상을 잡은 이웃은 멀리서 들리는 코끼리 울음소리를 듣고는 뻘에서 나온다. 그녀는 남은 게와 조개를 건넨다. 감사는 마음을 담은 사진으로 보답한다. 다름을 잇기 위해서는 이해가 필요하고 이해를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돌아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웃이 조개구이를 해준다며 식사를 제안한다. 식사는 이야기의 꽃이지만 꽃이 피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일정이 있기 때문에 식사를 미루고 다음번에 꽃 피우기로 한다. 마을로 들어가 걷다 보면 사자와 호랑이의 씨름을 자주 볼 수 있다. 호랑이파와 사자파의 주민은 매일 만나 씨름왕이 누구인지 지켜보며 응원한다. 경기는 이렇다. 서로의 꼬리를 묶고는 지정된 선까지 끌고 가는 동물이 이긴다. 전적은 의미 없다. 씨름은 사자와 호랑이 어떤 종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민들의 한 놀이다. 어린아이들은 기린 목에서 구경하고 어른들은 혹여 아이들이 떨어질까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코끼리 울음소리와 함께 함성이 터져 나오면 승부가 시작이다. 경쟁성은 없지만 경기는 인기 있어 이를 보기 위해서는 경기 시작 전 줄을 서야 한다. 이미 코끼리 울음소리가 들린 것을 미루어보면 오늘의 승자는 함성이 어느 쪽에서 나오는지로만 알 수 있다. 도로는 알록달록하고 건물의 벽도 알록달록해 뒤섞은 큐브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 각양각색의 풍경과 위화감이 하나도 없다. 그저 각자 스스로와 어울리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고, 자연스러울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친한 이웃을 만난다. 그는 늘 원숭이와 다니는데 원숭이는 장난기가 많지만 정이 더 많다. 늘 자신이 먹고 있는 바나나를 하나 떼준다. 내가 그를(원숭이) 찍으려 하면 그는 늘 자신에게 카메라를 달라 하고는 나를 찍고, 이웃을 찍는다. 그가 찍은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다. 그가 찍은 사진에 나는 늘 웃고 있다. 장난을 다 치고 집에 와 창 밖 멀리 만년설을 본다. 산은 그대로 있지만 나는 매번 같고 또 다른 장소에서 산을 지그시 바라본다. 거대한 웅장함을 바라볼 때는 휙 바라봐서는 안되며 지그시, 천천히 호흡 속에서 산의 내음을 받아들이며 바라봐야 한다. 만년설을 간직한 산은 그 자리에서도 어찌나 다양한지 나의 변화 속에 발맞춰 그만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내가 미처 새로운 곳에서 보지 못해도 산은 이미 준비가 돼 있으니 자연 앞에 나는 그저 ‘위대한 자연이로다.’ 외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지만 끝없는 새로움을 지닌 것. 이 역설을 매일 산을 바라보며 느낀다. 어쩌면 세모난 집의 지붕은 자연 속에 살아감을 시인하는 인간의 한 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웃이 집에 찾아왔다. 지난번 그의 식사 대접에 보답하고자 초대했다. 그는 단풍 물든 산 밑에 산다. 둘 모두 산 밑에 살다 보니 단풍 아래 밥 먹는 것과 설산 아래 밥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양쪽 다 경험하고자 집으로 놀러 온 것이다. 남쪽은 감귤이 달다. 그는 후식으로 먹을 감귤 한 묶음을 가지고 왔다. 어떤 식사 순서가 정해진 것이 싫어 내 손으로 절차를 섞는다. 식전에 감귤 하나를 까먹고 샐러드를 만든다. 양상추, 양파, 옥수수, 감귤. 오늘의 스페셜이다. 지난번 돼지농가에서 받은 흑돼지는 샐러드를 다 먹고서야 등장하는 후식이다. 일전에 그는 감귤농사를 했지만 지금은 새로 감귤농사짓는 지인에게 넘기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내 조언을 받으러 왔다. 내가 하는 일은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과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사진에 담는 것뿐이라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는 책 표지에 관심이 많다. 주로 책 표지가 예쁘면 그 책을 얻는다는 것이다. 내가 찾은 것도 아니고 대화 속에서 스스로 찾아냈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는 말에 그는 수긍한다.


 지난번 그의 집에서는 알리오 올리오를 먹었다. 그의 지인은 바게트 빵을 만들어 그에게 빵을 받고 이에 어울리는 음식을 나에게 대접했다. 센스 있는 그는 미리 산에 다녀왔는지 파스타 위에 단풍잎을 놓아 음식을 예쁘게 꾸며놨다. 그 정성이 느껴져 파스타에 손 못 대고 단풍 아래 파스타를 구경하느라 음식은 정작 다 불고서 먹기 시작했다. 그의 집에는 단풍 산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큰 창은 통유리지만 나머지 창은 온통 스테인글라스다. 색까지 입었다. 어지럽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단풍만큼 예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면 집이 꽉 찬다. 집 지붕이 둥근 것에 관해 그는 지붕을 보며 마음의 몽글몽글함을 느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마음속 구름은 아마 흰색이 아닐 것이다. 봉숭아 물 들듯 마음에 단풍 물 들었을 것이다.


 점심 식사 후 그와 함께 나선다. 가는 길에 커피를 마시며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는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면서 나의 식견을 넓혀준다. 내 이야기에 그는 새로움에 눈을 뜨고 그의 이야기에 내가 새로움에 눈을 뜬다. 새로 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내가 알게 된 것이 눈에 들어오고 이를 사진으로 찍고 글로 느낌을 남긴다. 매번 새로운 이를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또 살며 이를 느끼는 것. 인간의 배움은 끝없으며 끝이 없기에 축복받은 것이다.


 이야기 꽃밭을 걷다 보니 어느덧 마을 입구다. 그는 표지 디자인을 물어보고 배우려 헤어졌고 나는 해 지기를 기다린다. 벤치에 앉으니 햇빛이 다사롭다. 햇빛 아래 꾸벅꾸벅 졸다 아이들 소리에 깬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슛할 때 골키퍼 몸 날리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 온몸 던지는 열정은 햇살보다도 강해 그 따사로움에 자리를 뜬다. 해가 지고 언덕 따라 불이 켜지면 마을이 아름답다. 낮과 밤이 자연의 시간이라면 인간은 별이 완전히 뜨기 전 잠시 자연에 양해를 구하고는 인간이 얼마나 멋진지 뽐낸다. 짧은 시간이어도 인간이기에 인간의 자랑을 사진으로 담는다. 돌아가는 길에 이웃을 만난다. 그는 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오늘 바다는 바람이 솔솔 불어 파도가 좋았다고 한다. 전에 그의 서핑 실력을 보고는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최근 연달아 서핑을 탄 그는 오늘은 휴식 겸 일광욕도 같이 했다고 한다. 그의 생명은 바다에서 온다. 그는 맑은 사람이다. 순수하다. 바다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의 말에는 진실함밖에 없다. 에메랄드도 그보다 반짝이지 못할 만큼 그는 투명함으로 반짝인다.


 집에 돌아와 오늘 온 편지를 확인한다. 얼마 전 생일이었던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조만간 만나러 온단다. 최근 이사 간 친구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정리가 되면 집들이를 한다고 한다. 결혼한 부부는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 조만간 찾아가 축하하고 사진을 찍어야겠다. 마지막 편지는 발송인 불명이다. 편지를 뜯어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이곳이 내가 그린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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