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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Mar 22. 2021

3월2주 차

기억하다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내다

 기억의 저주. 어린 시절은 시간 개념이 없어 주어진 순간 속을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이 순간은 갑자기 훅 찾아온다, 시간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순간들을 동시에 산다. 그때부터 삶은 바빠진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지금 속에서 이따금 과거의 시간을 되새기고, 미래를 내 손에 넣으려 한다. 이 안에는 과거의 행복을 고속도로처럼 펼쳐놔 미래까지 끊김 없는 행복의 고속을 만끽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들어간다.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잃어야 하기 때문에 과거의 행복을 기억하고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의 불행을 외면하는 것’. 다행스럽게 과거 중 일부만 기억이라는 단어를 옷 입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이 과거로 옮겨갔을 때,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너무 선명했던 기억도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잊은 것처럼 금방 흐릿해진다. 

우리의 기억은 제멋대로인 면이 있어 어떤 기억은 선명히 기억이 나고, 어떤 기억은 아무리 기억하고 싶어도 안갯속으로 사라져 있고, 또 어떤 기억은 잊고 싶어도 트라우마처럼 기억이 나곤 한다. 어떤 기억도 우리의 취사선택으로 선정되는 것은 없고 랜덤 뽑기처럼 모든 것이 운일뿐이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기억을 꺼낼 수 있다면 과연 좋을까.


 기억은 얼핏 좋아 보이지만 조금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비루하다. 기억의 끝에, 기억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며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연히 우리가 원치 않는 힘든 기억을 떠올리면 현재의 나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그런 기억은 안 하는 것이 상책일 정도로 안 좋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행복의 고속도로의 삽도 못 푸는 짓이다. 기억하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는 것은 좋을까. 지금 내 상황이 어떻든 당시에 대한 기억을 마음이 마시면서 일시적인 행복, 즐거움, 기쁨 등의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중독 혹은 과음이다. 너무 푹 빠지거나 자주 과거 기억에 머물다 보면 현실감각을 잃는다. 더 나아가서 과거만큼 좋지 못한 현상황을 깨닫고는 좌절할 수 있다. 몸에 좋은 약이 쓴 것은 모르지만 달기만 한 것이 늘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듯, 너무 과거의 행복에 집중하면 현재가 우울해진다. 심지어 많은 경우 과거는 눈 앞의 현실과 달리 필터 작용을 거치게 되고 안 좋았던 기억은 어느 정도 괜찮게, 좋았던 기억은 과하게 좋게 만드는 사기행각이 이루어진다. 어떻게 보면 좋게 작용하는 것 같지만 거짓으로 욕망을 채움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생각의 출발과 시간의 인지 이후 우리는 기억을 잊고, 잃었을 때가 아니고서야 기억 없이 살 수 없다. 우리 힘으로 끊어낼 수 없는 것이라면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날 잡고 기억에 빠지든, 기억에 잠깐 빠졌다 다시 돌아오든 스스로가 정도를 정하고는 잘 지키며 살아야 우리가 기억의 맹점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사전의 정의가 재밌는 것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점을 만져주기 때문이다. 기억하다의 재밌는 점. ‘너 기억하니?’라는 질문은 통상 기억을 생각해 꺼내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정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통용과 달리 그저 간직하고만 있어도 기억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과거는 다른 말로 기억이라 할 수 있다.(똑같은 정의는 아닐 수 있지만) 심지어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이들조차 과거는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는 기억의 축적이 만들어낸 각 개인이다. 그러니 과거를 지닌 이는 누구나 기억을 지니고, 기억하고 있는 존재로, 모두가 과거를 가진 만큼 어느 누구 하나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설령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하더라도 걸리고 나서 또 시작되는 기억의 행렬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해도 기억을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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