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하다 : 유달리 재치가 뛰어나다
우리의 단어 사용에 있어 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관습이 구축한 언어 체계는 안정성을 유지할 만큼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단어의 정의를 알지 못해도 문맥과 흐름 속에서 이해를 통해 큰 걸림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실제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단어의 뜻이 정의와 비슷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실제 정의가 생각과 다른 경우에는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잘못된 상황에서 이 단어를 쓴 것일까, 단어의 뜻이 잘못된 것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단어를 본래 뜻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단어의 정의는 바뀌거나 추가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이 생각 못한 생각으로 우리의 뒤를 딱 치면 이를 보고는 ‘와 이 자식 기발한데,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와 같은 말을 한다. 혹은 대화중 상황을 쉽게 넘어가거나 새로운 국면으로 빠지게 만드는(남들은 이끌지 못하는 국면으로) 이를 보면 ‘이 자식 재치 봐라, 기발하군.’ 한다. 기발하다는 분명 두 상황에 모두 쓰이지만 단어의 뉘앙스는 다르다. 기발하다의 정의는 후자의 상황에 더 적합하다.
기발하다의 정의는 ‘유달리 재치가 뛰어나다.’이며 조금 더 풀면 ‘어느 것과는 아주 달리 눈치 빠르게 대응하는 슬기를 지녔다.’라는 의미다. 풀어보니 확실히 기발이라는 단어는 후자의 경우와 잘 맞는다.
위의 이야기처럼 우리 사회가 기발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천재성과 결속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쉽게 접근해보면 ‘기가 막히는 발명품’의 준 말로 통용되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그만큼 경쟁사회에서 남보다 높이 오를 수 있는 특성으로 높이 평가받는 가치로 여겨진다는 의미다.) 일적으로 기발한 사람이 천재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면이 있는가 하면, 일상 속에서 기발함은 관계, 특히 대화 속에서 센스 있다, 혹은 위트 있다는 표현을 통해 높임을 받는다. 이는 기발 하다의 본 정의와 어울린다.
우리는 기발하다의 정의를 재고해 기존의 뜻에 새로운 의미를 추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신조어의 경우 이전 시대에 없던 단어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면서 등재되어 정식 단어 인증을 받게 된다. 이때 주목할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등재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시대와 흐름을 맞추기 위해 새 단어를 등재하는 것처럼 기존의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통용된다면 그 단어의 뜻 역시 흐름에 맞게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기발하다의 뜻에는 새로움을 가져다준다는 의미가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아무도 잘못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절대적인 폭군을 살살 구슬리는 모사가 있어 어떤 틀 속에서 행동하도록 슬며시 조정을 한다. 그 안에서 아이는 말과 행동, 심지어 생각에 있어서 자유도를 잃게 되는 대신 사회에 속할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아이는 더, 더, 조정을 받게 된다. 나 역시 자유를 잃은 한 개인이지만 폭군 시절에 향수를 느끼고, 자유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남이 함부로 날 손대지 못하도록 다르기 위해 노력했다. 주변의 남과 다른 기발한(일과 일상 모든 부분에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는, 각 개인보다는 각 개인의 기발한 개성을, 그들처럼 되려고 노력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선천적 재능을 가진 이들을 이기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경쟁이 아니기에. 이제는 굳이 남과 다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몸에 밴 기발하고 독특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어 나 개인으로 살아도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기발하지는 못하다. 특히 관계 속에서 재치가 뛰어나지 못할뿐더러 만약 재치 있는 수가 생각나도 상황에 비해 3, 4박자는 늦게 생각난다. 이러니 나는 여지없게 기발함에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상적인 내가 되기 위해서는 이 능력을 가져야 한다에서 오는 소유욕. 노력으로 얻는 날이 올까 의문은 남지만 지금까지의 나도 노력으로 왔기에 그저 바라보고 나아갈 뿐이다.
-매주 쓰는 글도 한 편으로는 기발함을, 한 편으로는 자유를 생각하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