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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Apr 06. 2021

3월 4주차

꿈꾸다 : 속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은근히 바라거나 뜻을 세우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 한 주간 있어 업로드도 늦고, 글도 못쓰게 되었습니다, 다음주 글은 아마 예전 글을 가져와 대체할 예정입니다. 더 분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오래된 꿈이 있다. 한 때는 꿈 하나로 벅찼지만 시간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날 이따금 벅차게하는 이제는 차분해진 꿈이다. 세상은 ‘나에게 다가올수록 너가 가진 것을 포기해’라 말해왔고 나는 순종적으로 한 걸음마다 나의 하나를 버리고 또 버리며 나아왔다. 그럼에도 내가 절대 버릴 수 없던 그 한가지가 꿈이다, 심지어 내가 생각못했던 순간에도. 사람이 갖고 있는 수 많은 꿈들 중 어떤 꿈은 흔들리고, 좌절하고, 포기해도 이 꿈만은 내 사명과 같은 다짐 혹은 고집 속에서 보호 받아왔다. 꼭 이루리라, 꼭 이루리라. 나는 30대가 되기 전 꼭 세계일주를 하리라.


 머리에 처음 생각을 가졌을 때는 10년 안에만 이루겠다는 목표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동산 위 나무 하나 그려진 그림만큼 단순명확하되 어떤 꾸밈없는 그림이었다. 막연함은 준비도, 조사도 없이 ‘하겠지’, ‘시간이 남았다’와 같은 여유에서 온 행동이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준비에 대한 필요를 더더욱 못 느꼈다. 처음 성인이 되었을 때는 세계일주 전에 해외를 가지 않겠다는, 지금 와서는 다소 허무맹랑한, 다짐을 하고 모든 기대와 초점을 맞췄지만, 실상 꿈은 멀리 있고 모종의 계기로 한 번 해외를 나가게 되면서 계속해서 생각은 삶 앞에서 무너진채 기회만 되면 해외를 나갔다. 꿈이 여전히 멀리 있었고 몇 년이 흘렀다. 여전히 꿈은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한 발 가까워졌다. 멀리 흐릿했던 나무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너무 막연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은 한 칸의 불안감이 떨기 시작했다. 그 떨림을 진정시키기위해, 하나 하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계획을 짜기 시작하니 살이 붙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막연히 가고자 했을 때는 전후 사정에 대해, 길든 짧든, 생각하지 않았는데 머리 속의 것들을 현실화하는 과정과 세상이 나에게 새로 알려주는 것들을 배우고나니 준비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여행에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느 국가, 도시를 갈지(일정이 바뀌더라도 대략), 무엇이 필요한지(준비해갈지), 어떻게 이동할지 등등. 더불어 점점 사회에 가까이가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져야하는 때가 오고 있음을 알고 느끼면서 여행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더했다.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 부질없지만서도 계속 생각나는 것을 멈출 수는 없기에 어떻게 살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구체적으로 세울 필요도 없고 세우지 않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얼핏 잡았다. 여행을 가고 남기는 것 그리고 공유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해야겠다는 막연함과 기쁨. 좋아하는 것을 잘 해야겠다는 다짐. 여행 후 내 삶은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작은 목표고 계획이다. 여행 컨셉을 정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인데 단순하지 않다. 지도는 가만히 있어도 손은 계속 움직이며 어디로 어떻게 갈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수정한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경로 짜기는 어떤 틀 없이 마음가는대로 또 가능한만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짜고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아직은 사회 물을 덜 먹어 허황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지인과 친구들의 삶과 내 미래가 너무 다른 것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난 오기도 있다. 고집도 있다. 마음도 있고 그 중심에 꿈이 있다. 이 꿈은 목숨과 맞바꿔도 좋을 그런 꿈이다. 나를 지금 살게하는 꿈이다. 배부른 소리거나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괜찮다. 그것이 꿈이고,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고 내 사명이라는 굳은 믿음이 내 안에 확고하게 자리잡혀있다.


 꿈꾸고 꿈을 이루는 것. ‘연금술사’에서 혹자는 꿈을 꾸기만하고 이루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지금까지 내 삶은 꿈을 이루기위한 삶이었고 앞으로의 삶은 그 꿈을 이루는 삶일 것이다. 난 꿈을 꿨고, 이루기위해 산다, 그러기에 늘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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