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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Apr 26. 2021

4월 2주 차

남기다 :잊히지 않게 하거나 뒤에까지 전해 주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갖지는 않아도 죽은 날 기억해주는 적은 이들에 대한 나의 성의가 나의 글이다. 평생 홀로 살았다면 흔적 없는 사체처럼 나를 완전히 없애겠지만 한 명 정도는 나를 기억하길 바라고, 그 한 명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적는다. 내 글을 통해 나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에 대해.

처음에는 달랐다. 스스로가 천재 이거나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살았다. 포기일까 전향일까. 스스로 평범하다는 것을 느끼고 더 이상 비상한 인물이나 역사에 기록될 위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잃었다. 그저 재밌게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글쓰기는 그저 나의 재미고 글은 내 개인적인 유산일 뿐이다. 어떤 전문성이나 정보를 갖는, 위대한 글은 거부한다. 지극한 개인성뿐이다.


 나는 왜 아직 이 땅에 남아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 적 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책, 영화, 글 등을 읽으며 정립한 내 삶에 대한 지론은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 달성과 무관하게 목적을 갖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가 삶의 가장 기본이고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솔직한 답변을 물었다. 더 나아가 신이 인간을 지을 때 각기 다른 목적 내지는 쓰임을 염두한다면 그가 나에게 기대하는 삶의 목적이나 쓰임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기도했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연결 지으며 삶의 목적을 다져 놨는데 목적이 주변을 의식하며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목적이나 목표가 세워지고 그 안에는 반쪽짜리 진심만 담겨있다는 것을 나를 흔들며 깨달았다. 저금통에 든 하나의 동전이 사방으로 튀며 나는 소리는 진실함을 담고 내 의식을 깨우듯 울린다. 진짜 답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큰 이유 없이 그저 재밌고 좋다는 팔자 좋은 생각만 떠올랐다. 그 답이 살아있을 충분한 답을 주지는 않기에 더 본질적인 신앙에 물었다. 언제든 내 숨을 거둬갈 수 있는 존재가 아직 거두지 않은 것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텐데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처럼 즉각 소통보다 더 나아가 신이 먼저 말을 걸거나, 솔로몬처럼 지혜를 받아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신은 나에게는 늘 시간만 주신다. 살아라, 그러면 느낄 것이다. 사실 나는 내 답답한 안개를 걷어주기를 바라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오직 나를 위해서라는 별 볼일 없는 목적을 갖고 아직 여기 남아있을 뿐이다.


 가치 판단에 있어서 객관성의 확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각자 다 알아서 생각하고 살 듯, 각자가 자신에 맞게 바라봄이 충분하다. 내가 하찮거나 크게 느끼지 않는 나의 만족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저 내 생각은 이렇고 다른 이는 그럴 뿐이다. 논쟁 가치조차 없는 낭비다.


 나의 남아있음은 나에게 괴로움이지만 내 옆, 주변에 남아있는 것들은 나의 감사다. 나 자신에 대한 비관성이 시간에 따라 자라도 내 주변에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고마운 감정만 남는다. 나의 남아있는 순수를 좋아하는지, 동경하는지 혹은 이용하는지 어떤 의도나 생각을 갖고 나에게 다가오는지 몰라도 내가 이들에게 최소한 이용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분명함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 사회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은 생명력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나는 나의 감사만 품고 모든 것은 잊은 채 살아도 남아있는 그 감사 하나로만 기뻐할 것이다. 그래서 되려 이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나에게 남아준 이들이 눈 돌리는 것으로 상처 받는다. 어쩌면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가 그들의 보통의 특성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처럼 무뚝뚝하면서도 강아지처럼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남에게 실례될 결례를 이렇게 쉽게 저지름에도 남아있는 이들을 또다시 바라보는 결례를 저지를 뿐이다.


 남아있는 타인과 내 안의 것이 남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삶과 죽음에 관한 고뇌를 거치고 나서 삶이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임을 담았다. 타인은 나의 죽음 이후 다른 무엇으로 옮겨가도 내 안의 남은 것은 홀로 외로워질 것을 대비해 내 안에 남을 것을 더 신경 쓰고 애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지의 시간만큼 힘닿는 만큼 시간을 쏟고 있다. 좋아하는 것만 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처럼 그 부족한 시간을 내 생각의 온전한 표현으로 내 죽은 후 남을 생각의 왕국을 만드는데 보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어떤 말을, 생각을 남길 것인가.


 남기는 것에 간절함 내지는 절박한 마음을 갖고 있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중요시할 만큼. 언젠가 위인이 되고 싶다던 욕심은 뿔뿔이 흩어져도 그 흔적은 남듯 내려놓은 마음 한 편에도 영향력에 대한 욕심은 있다. 비록 지금 나와 나의 것들이 조명되지는 않지만 예술가의 사후 그들의 작품이 조명받는 것처럼 나는 사라져도 내 유산들은 여전한 세상에서 빛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영화적 감성이 들어간 바람이다. 내 생각이나 마음에 애정과 관심이 있는 만큼 이것들이 빛을 보면 좋겠다. 어쨌든 남은 것은 존재해야 하니 나의 이런 부정적 얼룩 가운데 때 묻지 않은 부분만은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이나 자연스러움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남아있을 나의 것을 생각하면 내 죽음이 나에게 두려운 무언가가 아니라 오히려 남은 것들을 나의 지배에서 벗어나 양지로 나아갈 수 있는 하는 자유의 열쇠라고 믿는다. 부디 내가 언젠가 행복했던 기억 단편을 평생 간직하듯 내 생각과 마음도 따스한 햇살이나 총총 박힌 별을 보며, 바다의 울림을 느끼며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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