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내다 :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글, 그림, 음악 따위로 드러내다
머릿속 생각을 전부 기억하거나 메모를 해두었더라면 지금 책 출판을 위한 분류와 정렬 작업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삶의 이야기와 이야기에 담긴 감정, 한 생각의 뿌리는 더 많은 작은 뿌리로 뻗어나간다. 썩은 나무와 잘 자란 나무처럼 생각에 좋고 나쁜, 유익하고 무익한, 재밌고 재미없는 그런 생각이 많이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는 않지만 어떻게 나타나지 못하고 그대로 재처럼 사라져 버린 생각을 생각하면 마음 한 편에 모르는 이를 향한 향수가 얕게 드리워진다.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으면 좋다거나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의 동경과 별개로 생각에 휩싸인 나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막론하고 한 순간 생각의 손이 발목을 잡으면 늪 속에 빠져 현실을 잊는다. 관계의 흐름에서 벗어나 늪 속의 고요한 끈적임을 느끼며 한참을 생각하고 무어라 외친다. 돌아온 관계 속 대화는 저 편에 가 있어 상대를 웃기게도, 당황하게도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글을 쓰는 이유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세상에 던져진 생각이 희로애락을 겪으며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 쉽거나 가볍지 않다. 생각 없이 뱉는 이들을 보며 느끼는 당황은 사실 부러움이며 되지 못한 신인류에 대한 놀라움, 신기함이다. 공인도 아닌데 조심할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스스로 누가 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게 된다.
요즘 인터넷 사회를 보며 늘 느끼는 것은 전체주의로 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사회의 각 구성원이 서로를 감시하며 전체주의로 흐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판옵티콘. 명목적으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되는 생각의 자유와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생각이 인터넷을 자유로이 돌아다니게 하지만 사회가 발각한 용인할 수 없는, 혹은 용인하기 싫은 생각과 표현에 대해서 감시자들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처럼 무참히 짓밟는다.(그만큼 잔인하고 끔찍하게 강하다) 생각뿐 아니라 사건과 관련된 개인을 뒤져 집단으로 끝까지 죽일 듯이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면 개들이 냄새 맡고는 달려드는 꼴 같다. 정의는 무엇이고 옳다는 것은 무엇인지. 상대성은 상대하지 않고 절대성의 틀 안에 자신과 남을 가두는 꼴은 보고 있으면 우습다. 대립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깎아내리고 물고 늘어질 사안을 찾는 모습은 산책 중 만난 개들 사이의 기싸움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개 같다.
나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런 틀 안에 살아왔고 언제든 그런 틀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지금 내가 자신하는 것은 논쟁적 사안에 대해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꼭 틀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더 옳은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생각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물론 나를 포함해 누구든 자신은 주체성을 갖고 산다고 자신할지라도, 신이 만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경계해야 한다.
전체성은 통일성을 부여하고 결합심을 높여 한 사회가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 구성원 모두 획일성에 빠지게 된다면 일심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올바르게 볼 능력을 잃게 된다. 각자의 사고 과정을 거쳐 내려진 함께 걷기 속에는 작은 불화는 있어도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즐거움과 자아성찰이 있지만, 획일적인 우직함에는 보다 큰 불화와 잠재적 분열 분자의 잠행과 동행하는 것이다.
한 사회를 아우르는 생각이 있을까. 예상컨대 그런 생각이나 사회가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와 함께 보면 편하다. 사회주의가 단결을 통한 전진이라는 강압적인 집단주의를 지닌다면 민주주의는 인간 선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각 개인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생각, 표현, 선택 등, 결국에는 사회가 전진할 수 있게 한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민주주의다. 반면 사회주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체계와 집단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의미는 없으며 사회주의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전문적인 의견을 찾아보면 내 생각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의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정의하고 나타낸 것으로 민주 시민이며 휘둘리지 않는 독립성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타내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은 너무나 다양하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고 부족한 모습에 자신도 없고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생각을 글로 말할 때 조심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 쉽사리 새로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학교에 와 나의 무엇을 표현하는 미술인들을 보면 나의 미천한 글이나 사진에 드러난 표현의 한계를 느끼며 늘 부러워하게 된다. 왠지 글은 글자에, 사진은 피사체라는 어떤 제한점을 갖고 시작하는 반면, 미술은 참 자유, 어떤 것으로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해 괜히 비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일장일단이라고 미술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있는가 하면 글이나 사진의 장점도 있지만, 나의 마음은 미술도 내 안에 넣고 싶은 동경에서 출발한 소유욕이다. 나는 늘 자유를 원하는데 미술이 나에게는 하나의 자유로운 존재다.(자유를 갈망하면서 내 안에 미술을 가져 가두려 하는 아이러니는 덤이다.)
스스로 기대를 접고 나의 것에 더 집중한다. 단점 보완보다 강점 강화를 통해 느끼는 한계의 벽을 뚫어내기 위해 부러움을 동력 삼아 또 이렇게 내 생각을 나타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