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다 : 마음속으로 어떤 감정 따위를 체험하고 맛보다
처절하다. 무엇을 느낄 때는 반사적으로 태도를 고치고 반성한다. 결과를 받아들이며 고치거나 잘못된 점부터 찾게 되니 한 편으로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지만 느낀다는 행위에 담겨있는 속성은 나의 바닥을 느껴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처절함은 사후적인 감정이지만 과정에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누구나 감정선을 갖듯 나도 매번 다른 지배 감정 하에 희로애락을 느끼며 산다. 성인군자는 감정에서 벗어나 느끼고 깨달을 것이 없는 존재라면, 도대체 그(녀)는 무엇일까. 어떤 것에 지배받지 않는 위치에 있는 존재는 대체 무엇이고 어떤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면 왠지 피곤하다. 잠을 충분히 잔 것 같지 않고 졸리지만 시간이 아까워 다시 잠들지 않는다. 살이 찐 것 같아 시간을 확인하고는 배가 고파도 물을 마시며 참는다. 시원한 물은 청량감을 포만감으로 둔갑시켜 배도 왠지 부르고 기분도 좋게 한다. 눈 뜨고 10분간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전자기기라는 것에 화들짝 놀라며 화면을 끄고 눈을 질끈 감는다. 이내 이미 이렇게 됐다는 체념적 생각에 보던 것을 다시 본다.
사이버 공간은 현실 세계보다 배는 빠른 절대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에 빠져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밥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 예전보다 먹는 음식의 다양성이 깊어져도 편식은 여전하다. 영양섭취의 균형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먹는지가 중요하다. 몸에 좋아도 몸이 거부하는 음식은 토해버려 되려 상하게 할 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예배 전까지 짧게 시간이 생긴다. 애매할 때, 고르는 선택지가 또 사이버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자투리 시간에서 할애된 시간까지 지배하는 사이버 세상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세상을 단순 SF 장르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근래에 도달할 우리 사회일지 모른다는 통찰도 한다.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려 올해 가르치는 아이들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사이버에서 오는 한계를 느끼며 예배 후 공과를 한다. 온라인을 통해 서로 이어주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지만, 마음을 잇지는 못해 갈 길은 멀다.(내 일은 아니지만) 이번 주는 활동 주라 아이들이 직접 하는 것을 영상으로 확인만 한다. 아이들이 웃을 줄 안다는 것을 온라인으로 이야기할 때는 못 느꼈는데 아이들이 현실에 집중하니 드러남을 보고는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예배 후에는 뭐랄까 낮잠이 제격이랄까 이런 생각을 한다. 늘 이 시간이면 나른하다. 한결같음은 결과가 가져다주는 인간의 특성이며 나는 그런 특성을 거부하고자 잠을 자지 않기로 한다. 생각하면 날 잡을(정의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때는 늘 청개구리 심보로 거부하고 방향을 꺾어버린다.
시험기간은 하기 싫은 것을 하는 때다. 인간이 공부하는 것은 생애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내가 원하는 공부는 글자 읽는 류의 공부보다는 부딪히는 공부다. 어째나 저째나 지금은 미래의 내가 낮은 성적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 공부한다. 이런 나를 위해 스스로 정한 규칙이 공부 할당제. 공부를 한다면 하루에 작은 목표를 정하고는 절대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시험이 다가옴에 끝이 다가왔다고 느끼고 이 끝이 너무 기다려진다.
언젠가부터 밥을 꾸준히 먹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살면 끼니를 거스르는 일이 없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곁에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 챙기기도 하는 것이랄까. 함께하면 닮는다고 나조차 나를 챙기게 돼버린 것은 아닐까 싶다.
필요한 저녁 공부까지 마치고 나면 늘 밤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침부터 오후까지인 나를 보면 어쩌면 태양의 빛을 직접 쬐는 것이 나를 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태양에 힘 빌린 달은 예쁘면서도 나에게 힘은 주지 못하고 대신 위로해주는 것은 아닐까. 늦은 밤은 그저 달과 어깨동무하며 그냥 있고 싶다. 그저 바라보고, 가만히 있고. 소곤소곤한 평안을 느끼고 싶다. 주위에 별이 많은 날은 달과 더 멀리 있는 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보람차다. 하루의 완성된 조각이 여기 있구나 싶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시간 가는 것을 아까워한다. 마음에 영원의 공간과 시간을 담으면 이 순간이겠다 싶다.
이렇게 하루만 봐도 느끼는 것이 많다. 어떤 것은 반복 속에서 어떤 것은 첫 손길에서, 어느 상황에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 생각 없음 조차 느낌이 되는 것이 인간인데 성인군자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으며 어떤 기분일까.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더는 느낄 수 없게 된 존재가 성인은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은 죽어서야 모두가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뱉어본다. 느낌은 영원하다. 아니 느낌은 인간의 그림자같이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다. 영원 같은 유한함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