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다 : 기억이 되살아나거나 잘 구상되지 않던 생각이 나다.
떠오른 영감을 잡아 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영감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고 문득 다가오고는 즉각 반응하지 못하면 금방 사라진다. 예측불가는 매력적이지만 나의 계획을 이행하기 어렵기에 곤란하기도 하다. 떠오르는가 하면 떠내려가기도 하니 시간의 족쇄에 매여있지는 않나 싶기도 하다. 부끄럽지만 나의 게으름으로 영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놓친 적이 많다. 당장 나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날 순간순간 살아있게 하지만 한 편으로는 기회를 끝없이 놓치게 한다. 뒤늦게 떠오르지 않는 영감을 두고 한탄도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사후처리지만 놓친 영감은 떠난 버스다. 떠오를 때 모든 것을 뿌리치고 영감과 같은 선상에서 잡아내는 성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천재들과 달리 나 같은 범인은 떠오른 한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안 된다. 한 편으로는 그런 기회를 차 버리는 사람을 범인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쓰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글을 쓰는 것은 신성한 활동으로 함부로 적어서는 안 되며 함부로 적을 수도 없다. 한 주제에 대해 글감이 떠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사실 오랜 시간 이에 대해 생각해야 운을 뗄 충동이 온다.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생각 없는 충동에서 글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머릿속에서 발효될 만큼 숙성돼 떠오른 글감만 재료로 오를 것이다. 글감이 주춧돌이 되어 글 공사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글자가 끝까지 쓰이지 않기에, 계속해서 이어나갈 새로운 생각의 장작이 던져져야 한다. 창작은 고통이라고 예술하는(창작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을 나도 이렇게 느낀다. 글 고통은 비단 고통만은 아니고 글의 완성으로 결국 쾌가 되어가는 고통이다. 쾌락에 빠져 중독되면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처럼 글 고통과 쾌락도 끊지 못하고 또, 또 하게 된다.
글감이 수시로 떠오르는 것은 축복이지만 넉넉한 시간과 마음이 없을 때는 떠오르는 것도 없다. 하루에 24시간이 할당된 것과 달리 글을 위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학교나 개인 일정이 있는 날에는 글을 못 쓰는 때도 허다하다. 위기 상황에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어 글이 겨우 완성되는가 하면, 이런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어 다음에도, 다음에도 초인적인 힘을 믿고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글쓰기를 미루기도 한다. 일에 진지함을 가져도 꾸준함을 갖는 것이, 특히 외부의 강제성이 없을 때, 얼마나 어려운지 느낀다.
누구나 그렇지만 일을 일로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을 가장 경계한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싫어진다는 말처럼 취미로 시작한 그 무엇이 일이 되어 다가오면 흥미나 재미가 반감 혹은 그 이상 떨어져 버려 더 이상 취미로도 남지 못하게 된다. (다행히 흥미가 없어져도 나중에 다시 생기는 편이라 끊어버린 취미는 적다.)
사진이나 글도 마찬가지다. 사진이 아무리 좋아도 사진 찍고 보정하는 것이 일로 느껴지면(꼭 해야 하는 것으로) 더는 손 대기 싫어져 사진을 안 찍게 된다. 글이 아무리 좋아도 일로 느껴지면 손대기 싫고 글쓰기가 힘들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일로 느끼지 않으려 한다. 최대한, 글을 사랑하려 한다. 여행은 좋아함을 넘어 사랑해 지겨워지지 않듯 말이다.
감정의 등락은 조절하기 힘들다. 좋아하는 것을 변함없이, 끝까지 좋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궁금하다. 좋던 것이 언젠가는 무덤덤해지고 이전에 싫던 것이 좋아지는 시기가 있지만, 좋은 것이 늘 좋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사랑에 빠지면 좋으련만.) 마음은 변함없는 소나무 같은 한결같음을 갖고 싶지만 나는 계절 따라 피고 지는 흔한 꽃이다. 남의 떡이 크다고 내 욕심일까.
최근에는 글을 쓸 때 수직적으로 파고들지 못(안)하는 것 같다. 글의 스타일에 많은 다양성이 있고 각각의 스타일에 우월이 있지는 않지만, 깊게 파고들어 안에서부터 끌어올린 글을 쓸 때는 ‘나도 이런 글을!’, ‘어려운 생각을 해냈어!’ 같이 스스로 한계를 깨는 것 같은 모습에 기쁘다. 읽는 독자 중 글이 어렵다며 쉽게 써달라는 이들도 있지만, 창작이란 창작자가 우선 만족해야 독자도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만족하는 글이 먼저인데 다소 가벼운 요즘의 글이 나는 몇% 아쉬워도 읽기 편하다는 독자가 있으니 그것은 또 그것대로 만족스럽다. 몇 번 곱씹어야 이해가 되는 글이 아니라 곱씹고 싶어 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 영 쉽지 않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은 피천득의 수필인데, 그의 수필은 간결하고 전혀 어렵지 않지만 또 읽게 된다. 어렵게 쓰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이 문득 깨달음이 되어 돌아온다. 언젠가 내 글도 그런 잔잔하고 소소해도 울림을 갖길 바라기에 나는 늘 경험 속에 살고 싶다. 보이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알 듯, 경험한 만큼 표현할 수 있으리라 같은 기대로. 나의 위인은 수필을 쓸 때 얼마나 수월했을까.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것도 능사지만 떠오른다고 쓰는 것이 나의 능사는 아니기에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