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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May 17. 2021

5월 1주 차

명상하다 :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다

 최근 글 쓰는 게 참 힘들군요, 글의 질이 꽤 낮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온전히 글에 더 집중해서 더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늘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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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은 나와 연결점이 없는  같다. 기도할 때조차 금세 잠이  정도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잠과 직결되기 때문에 해볼 겨를 없었다. , 중학교 시절 뇌호흡이라는 활동으로 명상시간이 있었는데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잠을 자곤 했다. 과연 명상하는 이들  명상에 빠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람의 깊은 생각은 어떤 필요성을 가질까.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생각이 아니고 움직임인데 생각만 하는 것은 어떤 소용일까. 깊은 생각의 진지함을 세상을 긴장시키고 분위기를 흐린다.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하는 명상이 내면의 나를 찾는 여정이지만, 세상에 놓임 없이 나를 알 길은 없다. 영화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이 자신에 대해 알아갈 때 생각보다 세상에 부딪히며 알게 된 자신이 많다.(액션이 가져오는 필연적으로 세상과 부딪힘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나, 삶은 하나의 여정이라는 말은 생각에 잠겨 살지만 말고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얻으라는 격언 아닐까.


 자기만족을 위해 혹은 내면의 평화를 위해 생각에 빠지거나 명상에 잠기는 것이 어떤 해결을 가져다줄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와 또 다른 주인공인 ‘나’가 보여주는 삶은 이에 대한 답을 여실히 보여준다. 삶은 사는 것이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결국 끝의 도달을 위해서는, 깨달음이든, 죽음이든. 움직이지 않고서야는 불가능한 것이다. 명상의 무의미함보다 명상만 하는 것의 무의미함에 대한 이야기다. (조르바의 ‘나’가 명상만 하거나 사색만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조르바와 정반대 위치해 그런 측면이 부각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라면 그 삶에는 어떤 물음표가 떠다닐까.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세계를 앞에 둔 것은 어떤 공포일까. 다만 무섭고 알 수 없을지라도 나아가야 함을 안다. 오감이란 어느 한 부분이 부족할 때 이를 채워주는 다른 부분이 있기 나름이다. 밤바다가 눈에 안 들어와도 바닷소리가 그 깊이를 들려주듯.

세상에는 조화가 있고, 조화는 조화를 이룬다.


 눈 감으면 펼쳐지는 세상 속에는 즐거움이 있다. 꿈속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나의 세상에서는 내가 왕이다.

왕이란 인간이 발현해선 안될 인간 악한 본성이다. 모두를 위한 사회에서 우두머리에 관한 본능은 억누르고 제어해야 할 인간의 의무다. 그런데 분출되는 욕망에 대해 처음에는 욕을 해도 뒤따르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욕이 사라지고 본능이 군림하는 시대가 펼쳐진다.

 명상을 통해 인간은 깨달아야 하지만, 각기 다른 삶과 배경 속에서 생각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은 실패다. 가르침은 우월과 열성의 관계 정립에서 나오는 행위인 만큼 스스로 바르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지금 같은 세상이 반복될 뿐이다.


 한 편으로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하관계를 피할 수 없음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주고받는 행위에서 기인한 관계는 동등하다 말할지언정 은근 위아래가 정해진 것 같다. 왕은 애초 우리 마음속에서 시작해 사회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요하다는 것. 우리 삶 속에 진정 고요할 수 있을 때가 몇이나 될지. 실상 고요하다는 표현은 낙엽 부서지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파도들이 시나브로 치고 가는 소리와 같이 자연의 소리만 차분하게 울릴 때 쓴다. 자연의 소리는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다. 무수히 나는 빗소리, 끝없이 떨어지는 폭포 소리도 아무도 그 소리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물 부딪히는 소리가 머리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다고 할 뿐이다. 고요 속에 산다는 것은 자연 안에서 조화로이, 억지 부리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명상은 이런 자연을 벗 삼아 자연과의 소통 속에서 깨닫는 시간일까.


 소리가 차단되면 내면의 소리가 커진다. 어릴 적 소라 껍데기를 귀에 가져다 대면 바닷소리가 들린다 했지만 사실 우리 몸 피 돌아다니는 소리였던 것처럼 모든 소리가 죽은 자리에는 나의 소리가 커지기 마련이다. 심장 뛰는 소리, 숨 쉬는 소리, 뼈 움직이는 소리. 결국 고요함 속에도 소리는 빠진 적이 없고, 어떤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가 고요의 기준인 것이다.

 이제 눈을 뜨자, 지금까지 마음의 눈을 감고 깊고 깊은 생각의 심연에서 눈 뜰 시간이다. 명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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