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abica Duck May 24. 2021

5월 2주 차

반응하다 : 자극에 대응하여 어떤 현상이 일어나다.


글을 쓸 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을 풀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 그림이 읽는 이가 잘 그려지는지 모르겠네요. 이 글은 제가 글을 쓰며 갖고 있던 그림을 한 번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저와는 다른 그림이겠지만요(하하) 그렇지만 그것도 예쁜 그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


주변 환경이 변함에 따라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껴도 다르게 반응하게 된다. 파도 부서지는 소리는 깊어 청량감이 느껴지고, 새소리는 걷는 이를 반기고, 나뭇잎 타며 바람 이동하는 소리는 걷는 이도 휘감으며 발맞춘다. 절벽 아래 파도는 내려오면 잡아먹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오히려 안전거리를 말해준다. 푸른 나뭇잎은 유혹하는 매력적인 이성 같아 나도 모르는  손을 뻗는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낮에는 모든 것이 우호적이었는데 밤이 되면 호전적으로 돌변한다. 오지 말라고 충고하던 파도는 깊이를 가늠할  없는 심연이 되어서는 깊고 낮은 소리로 마치 최면을 건다. , , . 규칙적인 소리에 되려 겁먹는 나는 더는 다가가지 못한다.  이상 다가오면  잡아먹어 나를 정신이상자로 만들겠다는 경고 같아 나는 눈물 흘리며  경계에 걸터앉아 있는다. 누군가는 파고들 수밖에 없는  최면이 나는 무섭다. 서쪽에서, 북쪽에서 오는 바람에 따라 새로운 생각이 빚어진다. 바람 지나간 자리에 만들어 놓은  생각만 내려놓고 나는  따라 돌아간다.


 도시의 빛은 하늘의 별을 대신해 빛난다. 어쩌면 평생 가까이할 수 없는 반짝임이 가로등에 담겨 내 손에 한결 가까워진다. 마음은 갈대보다 쉽게 흔들려 다가온 별빛에 사뭇 다르게 반응한다. 가까이할 때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하면,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것도 있다. 가로등의 불빛은 별일 때 빛내던 반짝임을 잃고, 모든 것이 비어버린 공허의 빛일 뿐이다. 어쩌면 그 빛은 도시에 서 있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빛은 난 싫다. 손사래 친다.


 햇살이 밝게 비추어 세상을 환하게 할 때는 사진 찍기 참 좋다.

날이 더워 후끈 달아오른 도로는 혼자 있고 싶다. 혼자일 때 옆에 있어줄 친구가 되지 못하는 나는 도로를 피해 숨어버린다. 구름은 시간의 다른 이름이고 그는 도로를 달랜다. 진정한 도로 위로 모두 뛰쳐나와 제각기 움직이지만 나의 사진기는 작품이 없다며 그대로 멈춰있다. 어쩌면 반응 잃은 카메라는 의욕 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은 담아 작품으로 만들고 싶지만, 어떤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내 눈에 담긴 일상이란 거리 두고 그저 바라봐야 할 그런 것일 뿐이다.


 산을 채 감는 구름을 보며 날씨를 가늠하고, 그 날씨에 기분을 맡긴다. 날씨는 크지만 나의 기분은 작다. 산은 크지만 나는 작다. 구름은 재빠르지만 나의 걸음은 느리다. 나의 유일한 근면은 또렷한 눈망울로 부단히 바라보며, 감탄하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느라 바쁘다. 구름 휘감는 산의 자태는 날 홀리는 무용하는 여희같다. 그 선에 어김없이 나는 빠질 뿐이다.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나는 당당하게 춤추는 산의 자신감이 좋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커튼을 치면 바다 위 섬이 보인다. 한 발로 서 있는 것은 중심잡기 힘든데, 외딴섬은 두 발로 서 있는 것일까.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선명하게, 또 흐릿하게 보이는 것을 보며 그 성실함에 혀 두른다. 공무원 같다. 어두운 밤에는 퇴근했는지 아예 없다가도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리에 두 발로 서 있다.

삶이란 어쩔 수 없이 치열한 것. 치열함을 피해 다니는 것 마저도 치열해야 하니 난 치열하기 싫어도 치열해야 한다. 한량 같은 삶이나, 느림의 미학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와 끝없이 싸우니 참 평화는 언제쯤이나 찾아올지 모르겠다. 삶의 평화를 얻게 된 나는 더 이상 이룰 것 없는, 그런 임무 완수한 이의 공허의 마음을 갖고 살아갈 것 같다. 어쩌면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치열함이  다시 타오를 때 내 입을 모아 두 열의 치열을 하나로 모으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사실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그저 단어에 일뿐인 것 아닐까.


 반응은 주고받는 것 같다. 그저 주는 것이 삶의 미덕이라 믿었는데 삶이란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정해진 것을 깨는 것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그 자연스러움을 깨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쩌면 나의 죽음만이 그 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난 화들짝 놀란다. 반응과 반응,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다. 끝 모르게 반응하자. 살고 싶다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5월 1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