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abica Duck Jun 28. 2021

5월 4주 차

발상하다 : 어떤 생각을 해 내다.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쓰기로 했는데 도저히 쉽지 않은 상황들이 오더군요,, 그래도 밀려도 계속 써 내려가려 합니다. 많은 응원 바랍니다.


—————————————————————————-


 친구와  SNS로 연락을 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눈앞에서 주고받던 대화가 지금 핸드폰이라는, SNS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순간 머릿속을 휘감는 뚜렷한 구분선. 같은 시간에 속해도 나와 세계는 다르게 존재함. 세계, 세상, 너 등 구분의 기준은 언제나 내가 된다. 나와 세계, 나와 세상, 나와 네가 있다. 결국 ‘나’와 ‘내가 아닌 것’이 곧 기준선이 되어 나의 세계를 구분해준다. 세상은 ‘나’와 ‘나가 아닌 것’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다.

 이런 생각은 이기적인 것일까, 개인적인 것일까. ‘내가 중심이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이기적으로 볼 수 있겠다. 나를 넘어선 것은 모두 외부로 치부해버리니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혹은 나의 시작은 나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서 시작한 것은 나에게서 떠나는 순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니 ‘나’에서 선을 긋는 것은  개인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그저 나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고, 이는 사실은 개인적인 하나의 발상에 불과하다. 나는 내 안의 생각을 뱉었을 뿐이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한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부럽다.’ ‘나도 거기에 있고 싶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여기에 있는 나와 거기에 있고 싶은 나에 대해 생각해봤다. 연이어 거기에 있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상상했다. 바람을 투영시켜 상상하는 것은 삶에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이곳에 있는 것이 나의 선택이라면 그곳에 있는 것은 왜 선택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나’와 ‘내가 아닌 나’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친구와 대화할 뿐 아니라 평소에도 어디에 있는 나, 무엇을 하는. 나, 어떤 나에 대해 상상함은 무엇일까. 현재에 대한 불만이나 부러움, 욕심, 바람이 이유라면 그 상상은 무엇일까. 어떤 이유에서 나의 상상이 실제의 나보다 나은 나일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일까. 발상의 발사점에 물음표를 달아놓는다.


 이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나는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답 없는 물음은 곤란하다. 끝 모를 답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말하지 않는 내 안의 욕망과 욕심들이 적혀있다. 진정이라고 전제조건을 다는 것은,,, 부당하다. 답들을 덜어내기 위한 추한 일일 뿐이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생각과 현실은 이따금 일치해 놀라울 때도 있지만, 그것은 생각은 생각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제각기 길을 가다 한 번 겹쳤을 뿐이다. 쉽지 않지만 모든 것에 모든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따금 상상은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한 편으로는 미래이기도 하며 한 편으로는 미래였으면 하는 미래다. 덩굴에서 꽃이 피더니 꽃에서 난 벌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아다니며 꿀을 뿌리고, 그 꿀을 맛보고, 만지고, 보며 즐기는 그런 엉뚱한 상상보다는 내가 이러고 있으면 좋겠다, 이러고 있는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와 같은 보다 현실적인 상상이 더 많다. 현재의 내가 현재 하는 나의 상상이 실제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부류의 상상하기.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그 시간에 정말 그렇게 되기 위해 힘쓰라는 따끔한 자책이 들어 나를 쏘아보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지만,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런 상상이 유혹이 되어 날 잠시나마 즐겁게 해 준다며 매번 그 속으로 데리고 간다. 재밌고 즐겁다면 안 할 이유가 없어 결국 또 상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상상의 뼈대부터 완성까지 혼자 하는 것도 재밌지만, 함께하면 그것도 재미있을 때가 있다. 나 한 번 친구 한 번 돌아가며 한 마디씩 던지며 상상을 만들면 그것만큼 의미는 크게 없어도 재미있을 수가 없다. 미래에 대한 상상이든 터무니없는 모든 발상은 재미있긴 하다.


 꿈, 꿈을 갖는다는 것은 크고 작은(멀고 가까운) 목표의 과녁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목표가 세워지면 목표를 만족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고, 노력하다 보면 목표 옆에 기대라는 부가 과녁이 생긴다. 나의 현재를 인정, 파악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혹은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만족감은 질리지 않는다. 목표나 기대를 충족해 만족하는 것을 누가 마다할까.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욕심이다. 자연히 계속해서 만족하다 보면 더 높고 커진 목표와 기대가 생긴다. 이때 다시 이성적으로 나의 현재를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만족이라는 탈을 쓴 욕심에 잡아먹힌다. 욕심이란 정복할 수 없는 것이다. 욕심이란 나의 능력 이상을 탐하는 것이다. 분명 높은 목표를 갖는 것은 좋고 이를 위해 힘쓰는 것도 좋지만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길을 잃으면 어느새 만족은 잊게 되고 영원한 불만족 속에서 살게 될 뿐이다. 그러니 나를 잃지 말고 나아가자. 꿈을 이루는 것 역시 나를 잃지 않았을 때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나를 스스로 위로한 어느 날의 일기로 마무리한다.

글쓰기에 대해

 글쓰기를 매일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생각해봤다. 뭐 직업이니 책임감이나 프로 의식을 갖고 해야 함은 맞지만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난 그러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하루에 쓰거나 써야 할 글이 은근히 많아 나도 꽤 많은 시간 글에 투자하고 있구나 싶다. 한 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매번 나도 힘들게 써가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0년 매일의 회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