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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Jul 26. 2021

7월 1주 차

사로잡히다 : 생각이나 마음이온통 한곳으로 쏠리게되다.

안녕하세요, 전반기까지 늘 글을 잘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후반기에는 장편을 한 번 써볼까 합니다. 계획은 후반기 내내 하나의 작품으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한 번 해보려 합니다. 많은 탐독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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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감정   

사로잡히다



 사람의 기억을 더듬으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정겹게 밥 먹던 시절, 첫 유치원 등교하던 날, 놀이터에서 소꿉장난, 집에서 지치지 않고 뛰던 모습, 처음 말을 했을 때, 아니면 처음 양부모를 만났을 때? 기억의 정상은 까마득한 구름에 쌓여 알 수 없지만 사람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느 병원이다. 누군가의 뜨거운 사랑은 생명이라는 선물을 가져왔지만 주인은 선물을 냉담히 거부하며 주소도 없이 반송했다. 신의 선물은 새로 포장되어 프랑스의 로랑-엘레느 부부에게 전달되었고 부부는 감사로 두 손 들어 받았다. 요즘은 입양아 폭력 뉴스가 번번하지만 진정 신을 믿는 가정은 사랑만을 주고받는다. 사랑의 대가는 웃음이다. 첫 만남부터 소민의 얼굴에서는 긴장을 녹이는 웃음이 있었다. 소민이 기억하는 삶의 시작은 양부모와 마주 보고 웃는 것이다. 기억은 조각난 채 퍼졌지만 웃음은 소민의 마음과 얼굴에 새겨져 함께할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다. 


 소민은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양부모가 부산히 움직이는 것을 시작으로 해가 움직이는 것, 나비가 꽃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 집 앞 풍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 산책하는 이웃과 강아지까지. 눈에 뜰 때마다 들어오는 새로운 세상에 소민은 자주 넋이 나갔다. 함께 산책하는 양모 엘레느는 소민이 무언가에 푹 빠질 때마다 자신 눈에는 지극히 평범한 것에 사로잡힌 소민을 바라봤다. 마음속으로 그녀는 소민이 신이 창조한 세계를 보며 감탄하고 신을 찬양하는 마음을 갖길 바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양부 로랑 역시 소민이 신이 만든 세계에 빠져 세상의 아름다움을 잘 누린다며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파리에서 만났지만 결혼 후 신이 만든 자연과 가까이 살고자 닥스(Dax) 지방으로 내려왔기에 함께 살게 된 딸 소민이 자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부부가 기뻐할 일이었다. 


 소민이 4살이 되었을 때, 처음 파리에 갔다.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을 때 소민은 TGV에서 끝없이 눈 돌리며 자연의 놀라움을 볼 때보다 더 크게 놀랐다. 원래 큰 눈은 눈썹까지 치켜세우며 더 커졌고 입은 할 일을 잊은 듯 다물 줄 몰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을 소민은 처음 가봤다. 프랑스인은 휴가철 지방이나 이웃 나라로 놀러 가지만 로랑 부부는 부모님과 친구와의 오랜만에 재회를 위해 그리고 소민을 처음으로 소개하기 위해 파리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서야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파리로 출발하며 엘레느는 소민에게 자연만큼 아름다운 것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했고 소민은 처음에는 TGV 밖 풍경이 그리고는 파리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요 며칠 센느 강을 걸으며 소민은 살면서 본 강 중 가장 큰 강을 봤고, 가장 높은 건물 에펠탑도 봤고, 가장 사람이 많은 곳도 가봤다. 내심 더는 놀랄 것이 없다 생각한 소민은 엘레느의 손을 잡고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갔다. 루브르 박물관보다는 작아도, 소민은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잠들어 기억이 없다, 여전히 넓은 곳을 걸어 다니며 소민은 그림을 지나칠 때마다 감탄사를 남발, 마지못해 로랑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그럼에도 어린아이의 마르지 않는 입과 지치지 않는 체력은 지친 부모보다 한 발 앞서면서도 소리를 지르며 흔적을 남겼고, 부부는 한 박자 늦게 도착해 이미 새로운 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소민을 쫓았다. 어느 순간 소민의 감탄이 그쳤고 부부는 되려 놀라 소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부부가 소민을 찾았을 때 소민은 감정평가사처럼 가만히 서서 한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한 부부는 천천히 소민 뒤에 앉아 소민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을 보고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미술관이 폐장할 때까지 소민은 그 그림만 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민은 저녁을 먹다 대뜸 내일도 박물관에 가자고 했고 미처 못 본 그림에 대한 미련이라 생각한 로랑은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오르세 미술관에 간 소민은 자기 자리 찾아가듯 고흐의 그림 앞에 서서 어제처럼 그림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로랑은 당황해 소민에게 다른 그림은 안보냐 물었고 소민은 장난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응이라는 담백한 대답을 했다. 이후 닥스로 내려가기 전까지 소민은 매일같이 오르세 미술관에 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바라봤다. 물론 가자며 매일같이 떼를 썼고, 소민의 그림 보는 모습을 본 부부는 거절하지 못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엘레느는 소민에게 파리에서 자연만큼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고, 소민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사로잡혔다. 


 닥스에서는 본 적 없던 것을 보게 된 소민은 너무 아름다워 매일 보고 싶었다며 엘레느에게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엘레느는 그건 그림이라고 말해주며 소민에게 한 번 그려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이제는 기억 속 환상이 되어버린 그림을 생각하던 소민은 집에 그 그림이 있으면 매일같이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에 웃으며 곧장 좋다고 말했고 4살 여름, 소민은 처음으로 붓을 잡았다. 며칠간 바라보며 머리에 담았지만 막상 그리려니 흰 도화지는 백색 괴물이 되어 함부로 그리지 말라는 엄포를 내놓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 생각에 소민은 붓만 잡고 가만히 서 있다 이내 울상이 되었다. 엘레느는 괜찮다고 말하며 어려우면 눈앞의 것들부터 그려보라고 격려했다. 지금껏 소민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사로잡힐 때마다 놀라움과 신비함에 감탄과 기쁨, 즐거움을 느껴왔지만, 처음 도화지에 붓을 가져다 대면서 자신이 만들어내는 세상에 사로잡혀 창조의 쾌를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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