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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Mar 13. 2022

22년의 하루

19.02.22

나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처음이다. 나의 삶은 곧 끝없는 생존에 대한 본능의 가르침과 움직임 그리고 발버둥이었다. 나의 발끝에서 머리까지 매 순간 긴장을 놓지 못했는데 이제야 나도 내 지난날을 돌아보며 긴장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이란 것이 정해진 것일까 믿은 적 없지만 곧 죽을 때를 느끼니 운명이란 있는가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늘 나를 보호하며 어머니처럼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가르쳤다. 어머니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사랑이 생존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렇듯 나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그리고 대대로 늘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았다. 아니 어쩌면 본능에 이끌려 살았고 생존은 생물의 본능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형제자매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전부 살아남지 못했다. 나의 2명의 오빠와 한 명의 어린 여동생 역시 어머니의 보호 아래 자랐지만 그 많은 자식을 한 몸으로 지키는 것은 어려웠고 끝내 내 작은 오빠 여동생은 죽어버렸다. 공수래공수거,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어떤 이별 선물 하나 해주지 못한 가족의 가난이 나는 슬펐다. 눈물은 솟아도 눈물이 흐르지는 못했다.

 나의 모든 것은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전통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막내딸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친 것 마저 내가 전수받은 전통의 전수였겠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나의 막내딸도 언젠가는 나처럼 앉아 이 평화를 누리며 자신의 주마등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이미 가 기다리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겠지.

 지금까지 침묵은 언제나 위기를 앞두고 들렸으며 평화는 곧 깨지는 것이었다. 그런 치열한 하루하루만이 삶을 휘감았다. 멀리 부는 바람에서는 살아남지 못한 어떤 이의 한이 느껴지는 듯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정신을 차려야 살 수 있다는 되새김만이 나의 전부였다. 이제 내가 죽을 때가 가까이 오니 내가 늘 애쓰던 생존이란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느낀다. 평화란 이렇게 고요하고 정다운데, 곧 먼저 간 나의 형제 자매들을 만날 수 있어 이렇게 기쁜데 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 것일까. 아마 맘 놓고 떠나지 못할 내 새끼들 때문이겠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들. 

 할 말이 없다. 죽음을 앞두고 할 말이 많은 것은 후회 많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니.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도 한다. 아니 후회할 틈 없는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삶이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밤에 하늘을 본 적이 있다. 저녁을 먹은 후 하늘의 별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그날 밤 달빛이 밝게 비치고 수많은 별이 떠 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아지랑이 피는 땅 위에 있으니 그 별이 보고 싶다. 

 나는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와 그 후로는 남편을 만났고 아이들이 생겼다. 죽음을 앞둔 이제야 모두와 인사를 하고 혼자가 되었는데, 혼자란 곧 죽음인 줄 알았는데 죽음이 곧 혼자가 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혼자 있는 것은 어색하지만 이렇게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니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편히 쉴 수 있겠다. 나무 그늘 밑에 누워 몸을 풀고 있으면 살랑거리는 잎가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내 숨은 조금씩 떠나갈 것이다. 언젠가 잎이 한 잎 떨어질 때는 내 심장 구석의 피들이 그만 움직이는 것을 멈출 것이다. 세상은 한시도 멈추지 않지만 나는 이제 곧 멈추게 되겠지. 

 나의 인생에 점수는 없다.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그 삶은 진실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를 만나고 부모가 되는 경험까지 했다면 부족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끝에서야 이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날숨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그 모든 추억을 뱉어내는 이곳과의 이별의 신호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곧 다가올 생의 끝을 앞두며.


   

NG 사자 어미의 다큐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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