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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밍박 Dec 06. 2021

3. 백반, 그 수고로움에 대하여

남해군 혼행일기, 둘째 날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고 싶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일종의 보상 심리였다. 이른 아침 부지런히 산을 올라 일출을 감상하고 약식으로나마 소원도 빌었으니,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낀 것이다. 식당을 찾아 상주 해변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대부분 문을 닫아 먹을 곳이 없어 보였다. 그냥 아침밥을 건너뛸까 생각하던 찰나, 큼직하게 '아침식사됩니다'라고 쓰인 식당을 발견했다. 운이 좋다.


"혼자예요?"

"네 한 명이요."


이모님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신다. 대답 대신 뭐가 더 맛있는지 되묻자 아주머니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그러면 된장찌개 하세요, 하셨다. 오케이, 추천 메뉴를 먹기로 한다.



10여 분을 기다리자 넓적한 냄비에 끓인 해물 된장찌개에 갖가지 반찬이 따라 나왔다. 메뉴명을 '해물 된장찌개 백반'이라 불러야 더 정확할 것 같다. 만족스러운 눈으로 밥상을 훑다 먼저 푸진 반찬을 한 젓가락씩 맛보았다. 깻잎무침, 시금치나물, 고추조림... 잘 차려진 백반 한 상을 보면 내 몸에 부족한 영양소가 모두 모여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흡족해진다. 자작한 된장찌개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자 향긋하고 깊은 바다내음이 입안을 채웠다. 게, 조갯살, 새우 같은 해물들이 알차게 숨겨져 있다. 평소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나이지만 오늘은 게 살도 쪽쪽 빨아먹고 새우도 까먹는다. 소중한 얼가리 김치를 한 젓가락, 된장찌개의 그윽한 국물을 한 숟가락. 아아,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찌개 냄비와 반찬 그릇을 싹싹 긁어 비우자 만족감으로 위장이 벅차올랐다. 빈 냄비와 반찬 그릇을 차곡차곡 포개 탑처럼 쌓아 쟁반째 주방으로 가져다 드렸다.


"아이고, 쟁반까지 다 가져다 주고..."


이모님의 눈이 휘둥그래지다 눈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 아저씨 싹 비운 거 봐, 내 음식이 입에 맞나 봐 하는 흐뭇한 미소가.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나면 나는 이렇게 반찬을 모두 비운 접시를 보란 듯이 주방까지 가져가곤 한다. 당신께서 만든 음식이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러워 이렇게 남김없이 먹었다는 뜻으로. 일종의 감사 표시인 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웬만해선 사 먹지 않는 음식이 바로 이 '백반'으로 통칭되는 일련의 한식들이었다. 집에서 매일 먹는 음식을 왜 굳이 밖에서까지 먹어야 할까. 사 먹는 음식이란 모름지기 평소에 자주 접하지 않는 별식일수록 끌리는 게 아닌가. 쌀국수, 짜장면, 스파게티 같은 면식부터 떡볶이, 순대, 튀김 같은 분식, 삼겹살, 돈까쓰, 보쌈 같은 육식에 이르기 까지. 이리도 많은 선택지를 두고 백반을 고를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식성은 결혼 이후에도 이어졌다. 아내는 요리에 취미가 없었다. 평생을 남이 해준 밥만 얻어먹어온 나 또한 음식을 만들만한 깜냥이 있을리 만무했다. 한두 번 찌개와 반찬을 만들어보니 온전한 한 끼 밥상을 차려내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실로 어마무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내 끼니는 간편한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체되어갔다. 라면, 치킨, 피자가 주식이 되었고 체중은 10킬로 넘게 불어났다. 엄마의 잔소리가 없으니 밤늦게 막걸리를 두 통씩 비워대며 치킨을 뜯었다. 4캔에 만 원짜리 외국 맥주를 사 와 박스째 쟁여 둔 과자와 함께 몽땅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체중이 세 자리에 다가설 기미가 보이자 나는 불량 식품 대신 체중계를 멀리 하기 시작했다. 멈출 줄 모르던 불량한 식생활에 제동을 건 건 직장인 건강검진에서 받은 대사 증후군 진단이었다. 혈압도, 공복 혈당도, 콜레스테롤도 정상치에서 벗어나 있었다. 대사 증후군이란 게 어마어마한 질병은 아니었기에 대단한 충격이 되진 않았지만, 내 식생활을 돌아보기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사실 그간 먹어온 음식들이 마냥 맛있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리 먹어도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끊임없이 허기를 불러오며 악순환을 일으켰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건 집밥, 바로 엄마표 백반에 대한 허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무얼 먹어도 마음 한편에 엄마가 차려주신 차진 밥과 김치찜, 멸치볶음, 미역줄거리볶음 따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것이다. 나는 결국 정신적인 허기를 불량식품과 무절제한 폭식으로 달래온 것은 아닐까.


이때부터 엄마 밥상의 대체재를 찾아 가정식 백반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백반의 매력이란 무엇보다 밥과 국을 필두로 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여러가지 반찬이 골고루 포진한 다채로운 구성에 있다. 언뜻 대단한 주인공은 없어 보여도 다양한 개성의 조연 하나하나가 모여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나는 백반을 먹으러 다니며 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의 고마움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철없던 시절 나는 꽤나 오랜 세월동안 밥상에 감사할 줄 몰랐다. 매일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얼마나 투덜대었던가. 그러면 엄마는 그냥 좀 먹어라, 매번 반찬을 어떻게 새로 만드니 하며 그 밥에 그 나물들을 내 앞으로 더 밀어 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짠 걸 왜 맨으로 먹냐, 꼭 없는 반찬을 찾아, 왜 반찬을 들었다 놨다 지벙거리냐 하며 쉴 새 없이 잔소리의 레퍼토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그만 좀 하라며 틱틱거리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면 엄마는 반찬이 어쩌고 하더니 그걸 또 다 먹었네 하며 입을 삐쭉, 그러면 나는 또 맛있어서 먹은 건 아니라고, 그냥 배만 채운 거라고 쓸데없는 말대답을 뻥뻥. 그렇게 나는 엄마의 정성과 수고로움을 너무도 당연하게, 때론 하찮게 대했다. 정작 하찮은 건 그 수고로움을 우습게 여기는 못난 자식의 교만함이었다.


결혼 이후 엄마에게 먼저 반찬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은 없다. 이제 그 고생스러움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엄마에게 밥 걱정 말고 좀 쉬시라는 배려 차원이기도 하다. 본가에 들렀을 때 간혹 이것 저것 챙겨주시면 못 이기는 척 냉큼 받아올 뿐이다.


얼마 전 홍콩에서 일하는 누나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 실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았다. 누나와 매형은 새로 이사한 동네 주변에서 맛있다는 음식들을 모두 공수해 왔다. 연포탕, 꼬막비빔밥, 닭강정, 모듬회 등등. 다 같이 식사를 하며 가족들과 대화를 하다 문득 엄마의 말이 귀에 들어와 박혔다. 옛날에 너희들에게 밥을 차려 주는 것이 당신의 존재 이유였노라고, 너희들이 집에서 반찬을 챙겨가지 않으면 당신이 무쓸모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서글퍼진다고. 나는 그런 엄마의 존재에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입혀왔던 걸까. 나는 상처 받은 일은 십수 년을 간직하면서도 타인이 받은 상처에는 얼마나 무감각한가. 기억도 나지 않는 시간들 속에서 수도 없이 비수를 꽂았을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죄인은 말이 없는 법. 나는 들은 체 만 체 묵묵히 밥을 먹을 뿐이었다.


백반집의 큰 백반 접시를 보면, 누군가의 엄마임이 틀림 없는 주방 이모님의 존재, 못난 아들을 둔 우리 엄마의 존재, 온갖 식재료를 준비해 자신만의 양념을 쳐 굽고 찌고 끓여 
자식들을 먹이는 세상 모든 엄마들의 존재가 떠오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수고로움. 그것이 내가 백반을 싹싹 긁어먹고 빈 접시를 켜켜이 쌓아 주방까지 가져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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