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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밍박 Dec 11. 2021

4. 외로움이 나를 점거하지 않도록

남해군 혼행일기, 둘째 날

 상주 해수욕장 입구에 서서 높게 뻗은 송림 사이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나는 퍼뜩 몇 년 전 이곳에 들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분명 이 바다에 왔었다. 소나무 숲 앞 길가에 차를 대고 내렸을 때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똥개가 눈까리를 뒤집으며 달려들었던 기억이 났다. 입을 쩌억 벌리며 앞발을 번쩍 치켜드는데 뭔 놈의 대가리가 나의 코앞까지 쑤욱 올라왔다. 앞발을 마구 휘젓는 모양이 내게 원투를 날리려는 것인지 얼굴을 핥으려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거북하긴 매한가지였다. 개새끼의 지나치게 호전적인 몸짓에 당황한 나는 몸을 뒤로 젖힌 채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나는 옆집 뽀삐도 무서워하는 쫄보인지라 사랑스러운 손길로 개를 쓰다듬어 진정시키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차량 조수석에 있던 과자 쪼가리를 꺼내 냅다 던져주고 백사장으로 나는 듯 달아나는 수밖에. 그때 몸서리를 치며 거닐던 그 바다가 바로 지금 이 바다인 것이다.


개새끼와의 짧은 추억을 회상하며 해수욕장 입구를 통과하자 탁 트인 바다가 나를 맞았다. 수평선에 부딪친 오전 9시 30분의 태양광선이 평소의 두 배 광량으로 내 두 눈을 쏘아댔다. 시야가 희뿌옇게 아득해질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재빨리 모자에 걸치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눈을 가렸다. 얼굴이 선글라스 모양으로 익을까 걱정되어 그늘찾아 고개를 돌렸다.


백사장 위에 우뚝 선 빨간색 망루가 눈에 들어왔다. 휴가철이라면 안전요원들이 떡하니 앉아 있을 곳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망루에 올라 붉은색 철제 지붕이 만들어 놓은 그늘 속으로 몸을 담갔다. 엉덩이를 쭉 빼고 반쯤 기대 누운 자세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게으름을 피우기 딱 좋은 장소였다. 북적대는 인파도 삥 뜯는 동네 똥개도 없으니 오늘의 남해 바다는 정적 그 자체였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무료함과 외로움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다 날 보며 눈을 헤까닥 뒤집던 미친개가 그리울 지경이 되어서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보물섬 전망대에 들어서자 통유리 밖으로 드넓은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맛 좋은 커피를 마시며 오전 내내 멍을 때리리라. 값비싼 커피는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풍경은 기대 이상이었으니 자릿값이다 생각하며 섭섭함을 달래었다.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이는데 창 밖으로 한 청년이 나타났다. 슬리퍼 차림의 발을 난간에 딛고 선 그는 로프에 매단 몸을 한껏 뒤로 젖힌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몸에 로프를 매단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그를 찍어주었다. '스카이 워크'라 부르는 보물섬 전망대의 액티비티였다. 가만 보니 청년은 관광객이 아니라 여기서 일하는 안전요원 같았다. 테스트 촬영 중이거나 인스타 홍보용 사진을 작업 중인 듯했다. 20대의 젊은 청년이 평일 오전 혼자서 이런 액티비티를 즐기러 왔을 리 만무했다. 만약 그렇다면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을 리가. 혼행에서 액티비티라니.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서른두 살 여름 어느 날 나는 한밤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고 있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였다. 열기구 탑승장으로 향하는 <괴레메 벌룬> 미니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한 각국의 외국인들이 열기구 풍선처럼 들뜬 기대를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잠시 후 있을 비행에 벌써부터 감격하고 있었다. 미니버스에서 내려 한 건물 입구로 들어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곧이어 여행사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타나 명단을 쥔 손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인원수를 체크하던 그는 나를 발견하곤 너도 이리 오라며 손짓했던 것 같다. 대부분이 가족들이나 친구들이었으므로 나 같은 개인 여행자는 정해진 순서 없이 인원에 맞춰 깍두기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과 섞인 깍두기는 지프를 타고 수십 대의 열기구가 정차해 있는 광야로 출발했다.

 


지프에서 내린 사람들은 코앞에서 부풀어 오르는 열기구를 보자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기 바빴다. 열기구 조종사는 인원수를 체크하며 차례로 사람들을 바구니 안으로 인도했다. 나도 엉거주춤 바구니에 탈 준비를 하려는데 조종사가 날 보며 슬쩍 애매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뭔가 이상했다. 조종사는 지프 아저씨와 뭐라 뭐라 쑥덕대더니 고개를 저었다. 탑승 인원 때문에 나는 제외된 것이다. 아저씨의 손에 이끌린 나는 다시 황망히 지프를 타야 했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수십 대의 열기구를 전전하며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었다. 지프 아저씨도 점점 나를 처리해야 할 짐짝처럼 대하는 것 같아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러다 겨우 내가 탈 수 있는 바구니를 발견했다. 아랍계 가족부터 사교모임 멤버로 보이는 노령의 유럽인들까지, 정확히 열 명이 있었다. 애초에 열 명이 타기로 되어있던 바구니에 나를 욱여넣은 것이 분명했다. 덩치 큰 깍두기가 바구니에 올라타자 불만스러운 눈초리 스무 발이 날아와 무른 가슴에 박혔다. 비좁은 바구니가 더욱 좁아졌다. 나는 졸지에 오붓한 가족여행을 방해하는 불청객 신세가 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바구니 구석탱이로 몸을 바짝 붙였다. 조종사가 열기구를 띄우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알라, 뭐 이런 류의 환호였으리라. 그들이 신을 찾으며 들썩거리자 나는 더욱 부대껴 바구니 밖으로 추락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잔뜩 몸을 웅크리며 안간힘을 써야 했다.



열기구에서 내려다본 카파도키아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내 평생 이런 풍경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가슴이 아려왔다. 아찔한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멀스멀 뭉쳐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열기구가 떠오를수록 나는 잠식되고 휩쓸리고 표류하고 있었다. 내 영혼을 점거한 커다란 고독과 우울에.


터키에서 혼자 한 달을 돌아다녔지만, 이 날만은 이상하리만치 사무치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인도의 뒷골목을 혼자 쏘다닐 때에도, 제주도 한 고깃집에서 홀로 돼지갈비를 구우며 소주 두 병을  때에도 나는 씩씩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마주치는 자유로움과 고양감을 좋아했다. 여행지에서 혼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외로움에 부딪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금세 찾아오는 새로운 자극과 사건들로 쉬이 덮이곤 했다. 외로움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모습을 감출 뿐이다. 그것은 꼭꼭 숨어있다 내 영혼에 균열이 생길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점거한다. 그날 열기구 안에서 나는 조그만 소년으로 돌아가 어린이날 부모 잃은 아이처럼 말이 없었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단 사실이 내 심장을 거칠게 후벼 팠다. 내 영혼은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카파도키아 하늘에서 조용히 추락했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열기구는 착륙했다. 조종사는 샴페인을 흔들어 터뜨리며 아름다운 비행과 무사 귀환을 축하했다. 함께 바구니에 탔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뼉 치며 와우, 브라보, 환상적인 시간이었어,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야, 여보 사랑해, 아빠 저 깍두기 좀 봐요 같은 대사를 쉴 새 없이 쏟아내었다. 나는 어두운 방에 처박혀 자막 없는 외화를 보는 방안퉁수가 되어 영혼 없는 물개박수를 칠 뿐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인내심을 소진한 뒤였다. 축 처진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일 마저 힘에 부쳤다. 숙소로 돌아가는 미니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지를 때마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우울늪으미끄러져 들어갔다. 버스에서 뛰어내리고픈 심정이었다. 나는 실제로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어두운 동굴호텔 침대 위에 엎드려 동안 감정을 추스러야 했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 여자친구 생각이 났다. 나는 탈출하듯 한국을 떠나왔지만 그날만은 터키에서 탈출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외로움이 나를 삼키자 그 아가리를 열어젖히고 탈출하기까지 속 시끄러운 전투를 벌여야 했다.



애초에 열기구는 혼자서 탈 만한 게 아니었던 것일까. 여행 커뮤니티에서 당일 동행이라도 구해야 했던 걸까. 군소 여행사의 안일한 행정과 조그만 불운이 겹친 탓도 있으리라. 하긴 제아무리 혼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연휴에 바이킹을 타러 혼자 놀이공원을 찾지는 않는다. 양 손 가득 풍선을 든 가족들 틈에 섞여 두 시간 동안 줄을 서지 않는다. 혼자 뷔페에 가 종횡무진 밥을 먹지도 않는다. 함께 가야 하는 여행지가 있고 혼자 가도 좋은 여행지가 있다. 함께 떠나야 좋은 날이 있고 혼자 가고만 싶은 날도 있다. 나는 세심하게 시간대와 목적지를 골라 남해군에 오지 않았던가. 나의 외로움이 가능한 한 잘 숨어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불청객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무방비 상태인 당신을 순식간에 잠식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당신은 영혼의 뿌리까지 탈탈 털리다 그로기 상태가 되어 호텔방 침대 위로 나동그라져 한나절을 앓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스카이 워크를 하지 않았다. 그보단 조용히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비싸고 맛없는 커피를 홀짝이며 멍을 때리는 편을 선택했다. 네 명의 여자 아이들이 깔깔대며 창 밖 허공에 몸을 누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열기구 투어에서 얻은 단순한 교훈은, 혼행에서 액티비티를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로움이 당신을 집어삼키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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