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에 대한 기록, 첫 날.
오전 4시. 알람 소리에 일어난다.
눈곱을 떼기도 전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선오를 본다.
김선오. 34개월 우리 아이.
옆에 누워 아이가 눈을 뜰 때까지 함께 쿨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볼을 한 번 쓰다듬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기지개를 켤 때도 있고 안 켤 때도 있다.
오늘은 켜지 못했다.
볼일을 보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렌즈를 낀 뒤 주방으로 가서 간단한 주스를 만든다.
꿀꺽꿀꺽 마시고 난 뒤 주섬주섬 옷장에서 옷을 고른다.
피부가 좀 당길 것 같을 때는 책장에 놓은 주름크림이나, 화장실에 둔 스킨, 거실 아이 로션 중 하나를 바른다.
매번 바르면 좋을 테지만 귀찮아서 넘길 때가 대부분이다.
마스크를 쓰고 신발장에 놓아 둔 분리수거를 들고 집을 나선다.
이 때가 오전 4시 18분 경. 대부분 이 시간에 이렇게 내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 출근길은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어서 좋다.
일부러 걸어가고 있다.
잠도 안 깼거니와 차도 없고 조용하며 어두운 길을 나 혼자 걷는 시간이 좋아서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호흡이 거칠어지기도 하고 평지를 걸을 때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본다.
선오 생각이 난다.
아이를 두고 나온 만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날 선오와 있었던 일도 떠올린다. 예뻐 죽겠다.
선오를 낳고서 32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헬스 트레이너이다.
일은 재미있고 보람 차다. 운동을 가르치다 보면 그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기분이 참 좋다.
전혀 빠르지 않은 속도로 걸어 도착하면 오전 5시경이다.
오픈 청소를 하고 첫 수업을 시작한다. 대부분 수업을 5개 정도 연달아 하고 있다.
내게 수업을 배우는 회원들은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내가 다른 트레이너보다 특별히 다른 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인간관계의 기본에 충실할 뿐이다.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고, 설명해주고,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주는 것.
육아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느 일과 마찬가지로 선오와 눈을 마주치고 아이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선오보다 내 말에 더 집중해주고 배우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선오를 대한다.
선오는 백지와도 같다.
아이는 내가 가르쳐주는대로 모든 걸 흡수한다.
이 아이에게 나는 세상이다.
선오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누군가에 그런 존재가 되리란 걸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유튜브 쇼츠에서 66일의 법칙에 대해 말하는 강의를 보았다.
66일이면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표준이기에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66일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습관이 된다고 한다.
곰곰이 되씹어보니 내가 포기한 것들은 다 66일을 버티지 못했다.
신기하더라.
내가 살면서 포기 안 한 건 운동, 결혼, 육아 뿐이다.
32년을 살면서 난 참 많은 걸 했다.
운이 따라서 조금만 해도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모두 66일 이전에 나는 그만두었다.
흥미가 떨어진 적도 있고 귀찮았던 적도 있다. 쉽게 얻은 적도 있어서 쉽게 버리기도 했다.
운동은 직업과 연관이 되면서 그만 둘 수가 없었고 결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육아는 정말 내가 없으면 안되는 것이라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전부 다 책임감이다. 뭔가 쟁취했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떠밀림처럼 66일을 지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셋을 하면서 행복하다.
선오가 어느 날 그랬다.
"선오는 엄마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
정말 깜짝 놀랐다.
말이 부쩍 늘었지만 이런 말도 할 줄 알다니.
그러고는 눈을 반짝 빛내며 "엄마 힘들어? 엄마 힘들면 선오가 안아주고 안마해줄게."
나를 있는 힘껏 안아오는 작은 몸.
"엄마. 선오가 어른이 되면 엄마 업어주고 책 읽어주고 놀아줄게." 아이는 내가 자기에게 해준 모든 걸 돌려준다고 했다.
무슨 감정인지 형용이 안되더라. 눈물이 살짝 났다.
내가 지금 선오에게 들을 거라고 전혀 생각치 못한 말이었다.
아이 앞이라 얼른 닦아냈지만 "선오야. 정말 고마워. 엄마는 네 마음이 정말 소중해. 엄마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엄마도 많이 사랑해." 목소리가 떨렸다. "선오도 엄마 더 많이 많이 사랑해." 선오는 그런 떨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활짝 미소 지으며 나를 또 꽈악 안아주었다.
아이를 낳고 모든 순간이 소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물론 마냥 기쁜 꽃밭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힘든 순간, 무너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순간들을 아이와 내가 이겨내왔기에 지금의 이 아이가 있는 것이라면 그 순간들조차도 소중했다.
그래서 선오에게 너무나 고맙다.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인데, 나를 믿어줘서. 나를 사랑해줘서.
내게 엄마의 삶을 줘서.
그래서 선오에게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흘러가는대로 살던 유지선이 아니라 우리 선오가 될 어른 유지선이 되고 싶어졌다.
이번 내가 갈 66일은 기록이다.
운동, 결혼, 육아. 지금 내 삶을 만들어준 것들을 기록할 생각이다.
앞으로 내 삶을 만들어줄 것들도 기록할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쓰고, 미래를 그려가며 더 나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선오에게 보여줄 것이다.
엄마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살아왔어.
그리고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고마워. 선오야.
이건 그 첫날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