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오늘 오전 4시 알람 소리에 깬 건 나 뿐이 아니었다.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선오도 같이 깨어났다.
여기서 잠시 말을 골라본다. "엄마 옆에 있을 테니 안심하고 자." 라고 말을 할지, "엄마 이제 출근해. 선오야 이따 보자." 라고 말을 할 지.
전자의 경우 편하게 출근할 수 있으나 남편이 힘들다. 후자의 경우 내가 선오를 진정시키는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5시 반 수업이 없다. 6시부터 시작이니 적어도 선오에게 40분은 쓸 수 있다. 집에서 5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는 전 날 선오가 보여주었던 놀라운 발전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발전 1. 낮잠.
선오를 키우며 제일 힘들었던 것이 잠인데, 말하자면 너무 긴 얘기라 생략하고... 남편과 함께 육아를 시작하며 선오의 낮잠을 패스하기로 한 지는 꽤 됐다.
자기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는 선오가 끝끝내 "안 졸려. 자기 싫어. 놀고 싶어." 라고 말하는 걸 항상 설득해야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선오도 알아. 아는데 자기 싫어." 라고 말하는데 더는 재울 수가 없더라.
그런데 선오가 스스로 "선오 피곤해. 엄마도 일하고 와서 피곤하지? 선오랑 같이 잘까?" 하더니 나랑 같이 들어가서 낮잠을 잤다.
2시간이나!
밤잠 시작 시간을 고려 하지 않고 너무 많이 자버렸지만 퇴근 후 기절하듯 선오랑 자고난 후 내 기분은 최고였다.
또 발전 2. 참기.
요즘 막 잠들기 전에 선오가 배고파~ 선오 우유 줘. 혹은 선오 먹을 거 줘. 하는 경우가 좀 있었다. 양치를 다시 해야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줬는데, 그게 마치 수면의식처럼 흘러가버렸거니와 양치를 하면 기껏 책을 다 읽고 무거워지던 아이의 눈꺼풀이 번쩍 떠져버려 곤란했다.
그래서 엊그제 남편이랑 함께 선오가 울며 요구해도 절대 안 된다며 그대로 재웠는데, 어제 카레 그림책을 읽고 난 후 선오가 또 "선오 배고파." 하는 것이다.
'앗. 오늘도 역시 시작이군.' 하는 생각과 함께 곤란한 목소리로 "선오 배고파? 그런데 어쩌지~ 지금은 잘 시간인데." 라고 하자마자 선오가 씩 웃더라. "알아. 그래서 선오 참을게!"
이 아이의 미소.
꺄아~ 나는 소리를 지르며 선오 멋있어! 하고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 선오 왜 멋있어?"
잔뜩 들 뜬 아이의 목소리.
나는 선오에게 놀라움이나 감동을 느꼈던 점들을 하나하나 말해주는데, 선오는 이걸 계속 반복해서 듣는 걸 좋아한다.
"응~ 선오가 어제는." 하자마자 선오가 덧붙인다. "울었지! 선오 많이 울었지~"
"응~ 선오가 어제는 엄마 아빠가 자기 전에는 먹는 것 참아야하는 거라고 말하니까 힘들어서 많이 울었는데, 오늘은 선오가 스스로 참는다고 말해서 엄마가 깜짝 놀랐어~!"
선오는 아가 오리처럼 두 팔을 파닥거리며 좋아서 쌕쌕 웃는 숨소리를 내었다.
"또~ 또 말해줘. 엄마."
그럼 나는 선오가 만족할만큼 같은 말을 계속 해준다. 선오의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난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다.
"선오야. 엄마 이제 출근할 시간이야."
선오의 발전들이 나의 선택을 후자로 이끌었다. 나는 내가 비몽사몽 상태에서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으앙 하고 선오가 운다.
"선오는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
"같이 자고 싶어?"
"응~"
선오의 짧은 대답은 곧 으앙~ 하는 아까보다 더 커진 울음소리로 연결된다. 흐느낌. 마음이 아린다.
"엄마도 선오랑 무척 자고 싶은데, 엄마가 출근할 시간이라 일어나야 해."
"엄마 가지 말고 선오랑 같이 자~"
선오도 비몽사몽이다. 팔베게를 해달라고 말하며 내 품을 파고든다. 아빠 불러줄까? 하니 싫다고 도리질 친다. 아빠 싫어.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빠 냄새 나. 남편이 상처 받는다는 선오의 말이 이거구나. 마음이 안타깝고 아린 와중에 웃음이 난다.
선오의 마음에 없는 말이다.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아이의 표현은 이렇게 나오는구나. 나는 졸린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아빠에게 그런 말 하면 안된다는 대신에 "엄마 아직은 좀 더 선오랑 같이 있을 수 있어. 5분 정도. 같이 있을까?" 하고 말을 했다.
선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양 손을 활짝 펴보인다. 손가락 10개. 선오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다.
눈이 시큰하다. 그래, 그래. 말을 받아주며 선오와 잠을 다시 청한다. 그래. 10분 정도 자보자.
따스한 선오의 체온이 덥다.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워서 아이 볼에 뽀뽀를 했다.
4시 15분. 슬그머니 일어나려고 하니 선오가 후다닥 잠에서 깨어나 엄마 가지마. 그런다.
그래. 30분까지 있어보자. 나는 선오의 등을 토닥이며 엄마 이제 곧 출근해야 해. 그런데 선오랑 자고 싶으니까 좀 더 자다 갈게. 이따가는 아빠랑 있어야 해. 엄마 2시에 올게. 말했다.
선오가 내일은? 그런다.
내일도 회사 가지. 그러니까 선오가 "같이 있고 싶어." 메아리처럼 작게 여러번 속삭인다.
토, 일, 월 같이 자고 일어날 수 있어. 엄마가 일요일, 월요일은 선오랑 꼭 붙어서 놀게.
"응...." 선오가 잠들려던 찰나, 발딱 일어나더니 잠시만~ 그런다.
큰 거북이 인형은 자기 거, 작은 돼지 인형은 내 거라며 준다. 엄마 꼭 껴안고 자자.
인형들에 파묻혀서 선오를 안고, 선오는 나를 안고 우리 둘은 다시 잠든다.
살풋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4시 34분. 이제 일어나야 한다.
내 기척에 역시나 선오가 일어난다. 그러더니 "엄마 이제 가?" 그런다.
"응. 이제 정말 가야 해."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선오가 "아쉬워." 그런다.
아쉽다는 말이 선오 입에서 처음 나왔다.
요즘 선오와 감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그 덕인가 싶다.
우리 선오가 이제 아쉽다는 말을 하는구나.
"엄마. 엄마랑 헤어지기 아쉬워. 선오 안아줘."
"응. 꽈악 안아줄게."
"아쉬워."
"더 꽈악 안아줄게."
"응. 엄마. 선오 아쉬워."
한숨처럼 선오는 아쉽다는 말을 계속 했다.
그래. 이게 아쉽다는 감정이란다. 나는 선오가 원하는 만큼 선오를 꽉 안아주었다.
"엄마가 이제 아빠 불러줄까?"
"응. 엄마. 불러줘."
어두운 방 안에서 선오의 눈만 보석처럼 반짝인다.
"엄마. 아쉬워. 더 꽈악 안아줘요."
꽈악~ 소리를 내며 안아주니 선오가 웃는다.
나는 아이의 볼을 한 번 쓰다듬고 남편을 깨웠다.
남편이 비몽사몽으로 걸어가 선오의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는 5분이면 준비가 끝난다. 집을 나서니 4시 52분.
가지고 나온 분리수거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길을 걷는다.
아직 조용한 이른 아침. 평소 출근길보다 북적이는 차도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선오를 진정시키는 건 내가 아니라 선오였구나.
아쉬움을 배우는 우리 아이. 참는 법을 배우는 우리 아이.
그저 알려주고 정말 기다리기만 하면 아이는 다 하는구나.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 같다. 재료를 다 넣고 불을 켜면 알아서 요리가 완성되는 것처럼.
나랑 남편은 애호박을 준비하고 두부를 준비하고, 그러면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