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작가 Aug 06. 2023

내 마음 소포에 담아 지구 반대편으로.

가장 가까운 마음의 거리

"너무 추워"

친구가 며칠 동안 카톡으로 계속 춥다고 했다.

"나 얼어 죽을 것 같아... 덜덜덜...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가지고 내일 사역지 가야 되는데 겁남. 추워서" 


남아공에 살고 있는 친구다. 그 더운 나라가 추우면 얼마나 추울까 싶었는데, 이상기온으로 아프리카에 눈까지 내렸단다. 한국처럼 난방 시설이 잘 안 되어 있어 실내가 더 춥다고 했다. 덜덜 떨고 있을 친구 모습이 아른거려 자꾸 마음이 쓰였다.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핫팩"이었다. 핫팩이라도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안 그래도 보내주고 싶은 물건들을 하나 둘 모아놓고 있었는데, 춥다는 얘기에 당장 보내기로 했다.


친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미안해했다. 나는 그동안 몇몇 나라에 EMS를 보낸 적은 있었지만 남아공으로 보내는 비용은 확실히 꽤 비쌌다. 하지만 금액은 숫자로만 보일 뿐, 안전하게 잘 도착만 하면 바랄 게 없었다. 10년 이상의 택배 포장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나다. 보낼 물건을 차곡차곡 이쁘게 박스에 채워 넣었다. 선물이니까, 박스를 열었을 때 흔들림 없이 정돈된 모습 그대로 친구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내 마음도 함께 담아 발송했다. 


택배가 오늘 비행기 탈 예정이라고 말하니, 친구가 내게 같이 타고 오지 그랬냐고 했다. 그러고 싶었다.

친구에게 얘기는 안 했지만, 사실 올해 연말에 남아공을 가야겠다고 혼자 마음먹고 있었다. 친구가 필요한 건 한 가득 가지고 가야지 생각했다. 남아공은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 목록에 없다. 별로 관심이 없는 나라다. 게다가 가끔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서 장기 비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근데 친구가 그립고 보고 싶었다. 아침 일찍 모닝글쓰기를 하면서 남아공 가야겠다고 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항공권을 검색해 보았다. 내가 충분히 쉴 수 있는 추석이나 12월 즈음으로 혼자 계획을 세웠다. 며칠을 고민하다 남편에게 남아공 좀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애들은 어떻게 하려고. 며칠을 다녀와야 되는데?"

"음... 한 일주일 정도? 애들은 엄마한테 부탁해도 되고."

"일주일이나 애들이 엄마를 못 본다고? 게다가 거기 위험하잖아. 내가 보기엔 그건 좀 무리하는 것 같아."


뭐든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는 남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눈빛과 표정, 말투가 달랐다.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남편 얘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가족은 뒷전이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이자 아내 같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렸다. 나는 바로 마음을 비웠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구나. 다음 기회에...'



소포는 일주일이면 도착한다는데 조회를 해보니 3일이 지나도 움직임이 없길래 전화를 했다. 금지 품목이 있어서 반송이 될 거라고 했다. 

"이럴 수가!!!"

건강식품 몇 가지 보냈는데, 그게 걸린 거다. 어서 핫팩을 보내주고 싶은데, 반송되고 지체가 되니 너무 속상했다. 알고 보니 포장하는 노하우가 따로 있었다. 세금 문제도 있어서 제품 케이스는 다 빼고 보내란다. 이쁘게 보내기는 틀렸다. 모든 물건의 케이스는 다 벗기고, 뺄 건 빼고 넣을 건 더 넣어서 다시 얼른 보냈다.

남아공에는 일주일 만에 도착을 했는데, 통관하는데 일주일이 또 지체가 되었다. 친구는 평소보다 2배의 세금을 더 냈다고 했다. 선물을 보낸 건지, 민폐를 보낸 건지 미안했다.


그렇게 2주 만에, 아니 처음 발송한 것까지 치면 3주 만에 친구는 소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겨울 다 지나고 핫팩이 도착하는 거 아닌가 속이 터졌다. 다행히 받자마자 핫팩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친구 두 손에 잘 전달되어 다행이다.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 꾹꾹 눌러 담아 저 멀리 남아공으로 보낸 소포다.  조금만 더 가까운 나라였다면 당장 얼굴 보러 갈 텐데 참 멀다. 내 몸은 못 갔지만 내 마음은 소포에 실어 보냈다. 몸은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누구보다 가깝다. 그래도 내 마음 담긴 선물을 직접 친구 두 손에 전해 줄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