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을 산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내게 옷 사준다고 백화점에 데려가면 나는 필요한 거 딱 하나만 샀다. 쇼핑 가기 전부터 어떤 옷을 살지 속으로 미리 생각했다. 카디건이 필요하면 카디건만 샀다. 구경하다 보면 이쁜 티셔츠도 있고 바지도 있다. 엄마가 이것저것 더 사 입자고 하면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원래 사기로 했던 카디건 하나만 사고 돌아왔다. 마음속으로는 당연히 이 옷 저 옷 다 사고 싶었다. 그렇게 부유한 형편도 아니고 부모님 자신은 옷도 잘 안 사 입는 거 뻔히 알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뭐든 최대한 돈을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역 지하상가에는 이쁜 신발들이 참 많다. 게다가 금액도 저렴하다. 대학생 때 지하상가에서 샌들 한 켤레 샀다가 엄마에게 엄청 혼났다. 저렴한 신발 사서 하루종일 신고 다니면 발뿐만 아니라 온몸이 받는 피로가 얼마나 큰지 아냐고 나무라셨다. 신발은 아무리 이뻐도 저렴한 거 사 신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사회에 나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구매의 경험을 축적해 나갔다. 저렴한 것도 써보고, 값비싼 것도 써봤다.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저렴한 거는 금방 망가지거나 못쓰게 되었다. 옷도 값비싼 걸 사 입어야 좀 더 태가 났고 몇 년을 더 오래 입었다. 엄마의 영향과 내 경험을 토대로 나는 돈만 많다면 값비싼 걸 선택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잘 버는 법이 있듯 잘 쓰는 법도 있다더니, 아직 돈 쓰는 초보였던 나는 뭔가를 구매 후 후회한 적도 많았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걸 비싸게 주고 산다거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제품을 사거나, 혹은 저렴하게 샀는데 오히려 그만큼의 가치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잘 쓰는 걸까 고민했다.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잘 쓰는지 관심 있게 봤다. 지인 중에 수입이 별로 없는데, 여행도 자주 가고 가족 모두가 늘 즐거워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쭉 지켜봤다. 그 가족은 여행을 정말 사랑했다. 함께 여행 가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숙소가 럭셔리할 필요도 없었고, 어떨 때는 찜질방에서 자기도 했단다. 근데 그 자체가 즐거운 추억이라 했다. 다른 곳에 나가는 지출은 대폭 줄이면서 1~2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은 꼭 가곤 했다. 자신들이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삶의 기준을 행복에 맞춘 거다. 지인을 보고 배우면서 나만의 돈 쓰는 기준을 만들어 나갔다. 어떨 때는 당근 마켓으로 중고를 사면서도 싸게 잘 샀다고 좋아하고, 어떨 때는 한 번에 몇 십만 원을 훅 긁어버리기도 했다. 돈의 액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만큼 돈을 쓰면 내가 얼마큼 즐거울 것인가를 1순위로 두려고 했다. 그랬더니 지출하고 후회하는 일은 줄었다. 내가 즐거우면 돈 잘 썼다고 생각했다. 금액보다는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데에 지출하려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요즘 내 마음을 흔드는 게 있다. 카카오톡 무제한 이모티콘. 한 달에 약 4,000원이다. 단톡방에서 사람들이 무제한 이모티콘으로 방 분위기도 즐겁게 만들고 보는 나도 재밌다. 나도 이용하고 싶지만 매 달 나가는 비용이 아까웠다. 한 달에 4,000원 쓸 만큼의 용기를 못 내고 있다. 아직 4,000원만큼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일까. 이러다, 조만간 구매할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이것저것 산다고 몇 십만 원을 썼다. 4,000원에는 벌벌 떨면서 몇 십만 원 지출은 쉬웠다. 몇 십만 원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행복은 몇 백만 원 이상이었다. 차이는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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