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공통 분모
첫째가 초1, 나는 8년 차 워킹맘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보내기까지 엄마들 모임 한 번 나가지 못했다. 오며 가며 인사하는 정도였다. 하루는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출근하는데, 집 근처 빵집 유리창으로 아는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 중이었다.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모였나 보다. 부러웠다.
"딱 한번 만이라도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
애들 키우는 얘기, 사는 얘기 나도 껴서 하고 싶었다.
워킹맘과 전업맘은 일상 시간표부터 다르다. 등원, 하원 때 아니면 얼굴 마주칠 시간조차 없다. 생활패턴이 다르니 가까워지기 힘들다. 전업맘끼리는 친구도 되고 서로 도움 될 일이 많다. 워킹맘끼리는 뭉칠 수도 없다. 오히려 서로 얼굴을 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간도 없다. 같은 어린이집 보내던 한 엄마가 내게 그랬다.
"우리 워킹맘끼리 뭉치면 되죠."
순간 귀가 솔깃했지만, 뭘 어떻게 뭉친다는 건지 의문이었다. 결국 그 엄마와 사고방식이 달라서 가까워지진 않았다.
찬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잘 따르던 한 살 많은 형아가 있었다. 이름은 준이(가명). 준이가 어린이집 졸업 때까지 그 아이 엄마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1년 후 찬이 유치원을 알아볼 때쯤, 준이 엄마를 처음 보게 되었다.
"찬이가 준이 형아 다니는 유치원 가고 싶대요"
자연스레 유치원 정보를 얻게 되었고, 같은 곳에 보내게 되었다. 연락처도 알게 되었다. 준이 엄마는 인상이 좋아 보였고, 성격도 활발했다. 가까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잘 알지 못해도 끌리는 사람이 있다. 준이 엄마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친해질 기회가 전혀 없었다. 무턱대고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도 연락처 때문에 연결된 인스타를 서로 팔로우하며 가끔 소통은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엄마표 수학 자료에 관심 있어해서 활용 자료를 직접 가져다주기도 했다. 찬이, 윤이 먹을 쿠키 사면서 준이 거도 하나씩 같이 샀다. 그렇게라도 얼굴 한 두 번 더 보며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말 그대로 내가 자꾸 들이댔다. 나는 사람도 가리고 낯도 가린다. 그런데 준이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뭔가가 달랐다. 한 마디 말을 해도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내가 배울 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집 앞으로 찾아간 내게 준이 엄마가 말했다.
"우리 몇 달 후에 이사 가요. 요 근처에 분양받았거든요."
굉장히 인기 있는 곳에 분양받았다는 말을 듣고 너무 잘 되었다며 축하해 주었다. 한 편으로는 우리 인연도 이렇게 끝이겠구나 싶었다. 동네까지 멀어지는데 우리가 따로 만날 이유는 없었으니까.
'워킹맘이 어떻게 전업맘이랑 친해지겠어. 역시 안되네.'
아쉬웠다. 학창 시절 친구는 어쩌다 한 번 겨우 시간 맞춰 만난다. 내가 사는 반경 안에서 일상도 공유하고 육아, 교육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를 사귄다는 건 워킹맘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준이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준이 여동생이 이번에 유치원 들어가는데, 윤이랑 같은 유치원에 보낸다는 건다. 연이 끊어질 줄 알았더니 이렇게 다시 연결이 되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며 말도 놓고 언니, 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전에는 아이 데리고서 애들 중심으로 만났지만 이제는 우리 둘이서 종종 만난다. 나는 언니를 만날 때마다 반성 모드이다. 아이들 뛰어 놀라고 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나에 반해, 언니는 늘 아이들 중심에 있었다. 신나게 놀아줄 줄 안다. 아이 육아에 있어서도 좋은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언니를 보며 늘 배우는 게 많다.
"내가 얼마나 참는 줄 알아? 두 손을 꽉 움켜쥐어. 그럼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뻘겋게 나 있다니까"
아이 키우다 보면 화낼 일 많다. 참는다 해도 3번이 내게는 한계치였다. 언니는 10번은 참는다고 했다. 오늘 또 한 가지 배웠다. "더 참아야 하는 거구나"
언니도 나를 보며 칭찬해주곤 했다. 회사일 하기 바쁠 텐데, 시간 쪼개서 엄마표 교육 하는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교육 철학이 비슷하다며 좋아했다.
"넌 이미 남들이 볼 때 많은 걸 해내고 있어"
내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갈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며 엄지 척 해주었다. 요즘 가끔씩 출근을 늦추고 언니를 만난다. 아이 학교 보내고 9시부터 만나서 브런치 먹고 커피 마시면 금세 오후 1시가 넘어버렸다. 우리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어떻게 워킹맘과 전업맘이 친해질 수 있을까
가장 강력한 공감대가 있다. "맘"이다. 우리는 "엄마"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 교육과 육아에 대해 할 말 많다. 서로에게 배우는 것도 많고 공감할 내용도 많다. 고민거리가 있으면 서로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 언니와 나는 아이 교육관이 비슷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바르고 단단하게 성장할까 함께 고민했다. 내가 좀 힘들고 바빠도 '엄마표' 즐겁게 배우는 재미를 알게 해 주자는 생각도 같았다. 굳이 워킹맘과 전업맘의 선을 가를 이유가 없었다. 서로가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 이전에 우리는 같은 엄마였으니까 말이다.
주위에서 놀라는 사람도 있다. 우리 둘이 가까이 지내는 게 신기한가 보다. 서로 나이도 다르고, 사는 동네도 다르고 생활 패턴이 다르다. 무엇보다 워킹맘과 전업맘이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 각자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좋은 영향도 나누어주고 응원도 해준다. 그저 감사하다. 전업맘과 친해져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을 알게 되고 가까워져서 감사하다. 가까워지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소중한 인연이 오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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