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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Nov 11. 2023

친정 엄마 시점에서.

엄마의 삶은 없다.


'아 벌써 8시네. 얼른 일어나야지'

수면제 먹고 자서 그런지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손녀딸 유치원 보내려면 얼른 딸 집으로 내려가야 한다. 얼른 세수하고 대충 옷 껴 입고 딸 집에 갔다. 

"유니야, 밥 다 먹었어? 얼른 씻자. 이리 와. 유니야!"

 자기 오빠랑 장난치고 노느라 내 말은 들리지도 않나 보다. 시계를 봤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유니야! 늦었어. 빨리 와 씻고 옷 입고 머리도 빗으려면 시간 없어."

큰 소리를 내니 그제야 온다. 씻기고 옷을 입히려는데, 또 저만치 가서 장난치고 있다. 겨우 불러서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 주었다. 

"할머니 나 이거 싫어. 빨간색 핀 이걸로 해줘. 아니 이렇게 말고 두 개로 묶어줘." 

6살 아가씨가 주문이 많다. 

도톰한 외투를 입히고 데리고 나왔다. 내 한 손은 유치원 가방을, 한 손은 손녀딸 손을 꼭 잡았다. 아침 바람이 꽤 차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만치 버스 기다리고 있는 손녀 친구들이 보였다. 아이 엄마들은 삼삼오오 얘기 중이었다. 인사 나누고 나는 약간 옆에 떨어져 섰다. 할머니는 나 밖에 없지만 몇 년간 하던 거라 그리 어색하진 않다. 유치원 버스를 태웠다. 

얼른 발걸음을 재촉해서 근처 친정 엄마 집으로 갔다. 오늘은 또 어떻게 하고 계실지 벌써부터 걱정 가득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지금까지 아침도 안 드시고 누워만 계셨다. '나는 힘도 없고 아무것도 못하는데 언제 죽는 거야' 하듯 모든 것을 내려놓은 엄마이다. 밥도 먹고 좀 씻으라고 해도,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공원도 돌고 노인정에도 가던 엄마가 갑자기 이렇게 되실 줄은 몰랐다. 드시는 게 없으니 기운이 하나도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일어나기가 힘들다고 바퀴 달린 동그란 의자에 앉아 집안을 다니셨다. 갑자기 엄마가 일어나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셨다. 

"엄마, 뭐해요?"

"나 이제 집에 가려고."

"여기가 엄마 집인데 어딜 간다고 해. 봐봐. 여기가 엄마 집이잖아."

치매가 시작되었다. 어제는 현관문 안전고리를 걸어 잠가놓고 못 열어서 한참을 실랑이를 했었다. 결국 안전고리를 떼내 버렸다. 내가 하루 종일 엄마를 봐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마음이 답답했다. 남편 뒷바라지는 물론, 손주들 챙겨야 한다. 이미 내 자유시간이 거의 없는데 엄마까지 보살필 여력이 없다. 치매 등급이 얼른 나와야 요양원을 보내드리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등급 나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내가 잘 봐드려야 할 텐데, 깊은 한숨만 나온다.


내 유일한 운동인 수영을 다녀와야 하는데, 엄마랑 실랑이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버렸다.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은행이랑 병원 다녀오니, 벌써 오후 3시다. 찬이 학교 하교 시간이 다 되었다. 찬이를 데리고 와서 집에서 요기 좀 시키고 피아노 학원을 데려다줬다. 3시 반.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윤이를 데리고 왔다. 간식 챙겨주고 좀 앉아 있는데 찬이 학원 끝날 시간이다. 윤이 손 잡고 다시 밖으로 나와 찬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 겉옷 정리하고 실내복으로 갈아입혔다. 가방 열어 물통과 식판 꺼내서 깨끗이 씻어놨다.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얼마 안 남았다. 이 정도면 저녁때 부족할 것 같아 쌀을 씻고 밥을 했다. 

윤이랑 찬이 둘이 붙어서 투닥투닥 또 싸우고 있다.

"제발 고만 좀 싸워라."  

시계를 봤다. 6시가 다 되어갔다. 남편 오기 전에 집에 가서 저녁 해야 하는데, 마음이 또 급해졌다.

'얘는 언제 오려나.'

저녁 차리고 또 엄마 집에 다녀와야 한다.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기침은 계속 나온다. 쉬고 싶다.

오늘 하루는 언제 끝날까.



내가 엄마 입장이 되어 엄마의 하루 일과를 적어 보았다. 얼마 전부터 할머니가 안 좋아지셔서 엄마가 속상해하시며 울먹이시는 일이 많았다. 나도 할머니가 걱정이 되다가, 엄마가 안쓰러워지는 마음이 더 커졌다. 살림에 내조하고, 손주 케어하고 자기 친정 엄마까지... 본인 삶은 하나도 없다.

글로 적어보니 엄마가 얼마나 힘들지 더 실감이 된다. 이러다 나중에 엄마 아프면, 다 내 탓일 것 같았다. 생각할수록 죄송하고 속상하다.

찬이에게 이제 혼자서 하교하고 학원도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딱 그 정도만이라도 엄마의 수고를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조금 더 엄마를 세심하게 챙겨야겠다. 엄마의 손길을 40년 이상 받고 있는 못난 딸이다. 앞으로 점점 더 연로해지실 엄마는 이제 내가 더 잘 보살펴 드리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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