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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Oct 18. 2023

태어나 40년 만에 "엄마 사랑해"

용기 있는 한마디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는 어쩜 그러니"

한이 맺힌 듯 울먹이는 소리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당황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 정말 너무 한 것 같아"



그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오늘 아파트 단지 안에 장이 섰는데, 윤이가 거기서 파는 닭강정이 먹고 싶다 했다고 전해줬다. 퇴근 후 닭강정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애들 봐주시던 엄마는 늘 그랬듯 내가 퇴근하자 바로 엄마 집으로 가셨다.



엄마는 몇 달 전, 몇 년 전 일까지 끄집어내서 내게 쌓인 감정을 다 쏟아냈다.

"엄마! 갑자기 1년 전 얘기를 지금 왜 하는 거야. 다 지난 얘기를 왜 해"

오늘 내가 닭강정 살 때 엄마 꺼는 미처 못 샀다. 원래는 저녁거리 살 때 종종 엄마 것도 함께 챙겼는데 오늘은 생각도 못했다. 요즘 내가 엄마에게 소홀하기도 했다. 아이들 매일 봐주시는데, 나는 출퇴근하기 바빴고 엄마와 길게 대화를 못했다. 여러 가지로 서운한 감정이 쌓이다가 닭강정이 기폭제가 되어버린 거다.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고 엄마 저런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별 것도 아닌 거 같고 왜 그래"

속으로 엄마가 늙었구나 생각했다. 며칠 전 몸 챙기라고 건강식품도 사 드렸었고,  닭강정 때문에 감정이 복받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엄마가 늙었네... 아이같이 삐지고... 아 어떡하지'


지난 주말 엄마는 친구 모임에 다녀오셨다. 친구들이 엄마에게 나중에 애 봐준 공은 없을 거라고 했단다.

"그 친구들은 왜 엄마 속에 불을 지르는 거야. 그게 좋은 친구 맞아?"

"내가 애들 보느라 친구 잘 못 만나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

좋게 마무리 못하고 전화를 끝냈다.

마음이 좋지 못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늙어서 그렇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올랐다.

나이 들수록 친구는 더욱더 중요하다. 친척이나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는 노인들보다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노인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친한 친구만큼 우리의 뇌를 긍정적인 상태로 즐겁게 흥분시키는 것도 없다. 친한 친구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평균 30배 이상 더 많이 웃는다고 한다.
- 회복탄력성, 김주환작가

  

어쩌면 아이들 보느라 엄마가 더 많이 웃고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못 가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째 아이 봐주시니 내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건데, 소중함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엄마에게 소홀했고 관심을 많이 못 줬다.


엄마 성격에 안 좋은 분위기가 꽤 오래갈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 등교 준비 도와주러 엄마가 집에 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한 번에 엄마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엄마가 현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엄마를 꼭 껴안았다.

"엄마, 미안해.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내가 요즘 좀 정신없이 살아. 그래서 애들도 남편도 잘 못 챙기고 있거든"

엄마는 괜히 자기가 속 좁은 얘기 한 것 같다며 안고 있는 내 두 팔을 내려놓으려 했다. 나는 더 꼭 껴안고 다시 한번 말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엄마 사랑해"

태어나 처음이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는 매일 자주 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태어나 40년 만에 처음 말했다. 어색했지만 용기를 냈다.

엄마가 내 팔을 손으로 지긋이 만져주었다. 평소 애교도 없고 살갑지 못한 딸이, 갑자기 뱉은 말에 놀랐을 거다. 그리고 좋아하셨을 거다. 아이들에게 대하는 걸 보니, 엄마 마음은 이미 풀어지신 것 같았다.


처음은 어려웠다. 이제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쉬워질거다. 앞으로 종종 내 마음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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