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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Sep 16. 2023

그 아버지에 그 딸

아버지라는 큰 산을 넘었다.

요즘 매주 토요일 아침, 집 앞 공원을 달린다. 오늘도 오전 5시 40분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공원에 갔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아 약간 어둑어둑했다. 주위가 조용하니 풀밭에서 나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어젯밤 비가 와서 땅은 젖어 있었고 공기는 촉촉하게 느껴졌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오늘의 목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5km였다. Run day 어플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1.75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다 물을 마시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 걷다가 다시 달렸다. 달리다 보면 고비가 온다.

 '너무 힘들어. 멈출까. 아냐. 조금만 더'

달리기에도 정확한 자세가 있다고 했다.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이고 뒤꿈치를 힙과 직각으로 들어 올리면서 앞으로 착지하면 힘의 저항을 덜 받아 오래 달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힘들어 고비가 올 때마다, 뒤꿈치 들어 올리는데 집중했다. 한 발, 두 발 가다 보면 한참을 더 뛸 수 있었다. 달리기가 좋아진 이유 중의 하나는 오로지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어서였다. 힘들다고 나 자신에게 얘기하고 좀 더 할 수 있다고 내가 대답했다. 나와의 대화, 나와의 싸움이었다. 달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재의 나를 이길 수 있는 건 나뿐이겠구나. 장애물은 주위 환경, 조건,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지금 한 발, 두 발 들어 올리는 것처럼 모든 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5km를 완주했다! 오늘도 목표 달성했다. 약 35분이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달리기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거다. 짜릿함은 항상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에 아버지가 보였다. 공원에 운동하러 나가시는 중이었나 보다. 저 멀리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를 알아본 줄 알았다. 그러나 초록불이 켜지고 횡단보도 중앙 서로 마주칠 때까지 아버지는 나를 모르고 지나치려 하셨다. 

"아빠, 나 지금 달리고 들어가는 중이에요." 한마디 했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셨다.

"어?..." 한 마디 외치고 가셨다. 횡단보도 위에 서 있을 순 없으니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아마 엄청 놀라셨을 거다. 나도 이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주말은 무조건 늦잠을 잤다. 아버지는 늦잠 자는 내게 늘 장난을 치셨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내 귓가에 갖다 대거나, 물을 내 얼굴 위에 똑똑 떨어 뜨리거나, 볼에 뽀뽀를 퍼부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청 짜증을 냈다. 늦잠 잘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을 방해하는 아버지가 정말 미웠다. 아버지는 늘 일찍 일어나셨다. 평일에는 출근 전에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셨고, 주말에는 아침 일찍 공원을 몇 바퀴 돌고 오셨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내가 결혼으로 출가하기 전까지 늘 보던 모습이었으니, 오늘은 그로부터 약 9년이 지난 셈이다. 오늘은 내가 먼저 공원 몇 바퀴 달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아버지를 만났다. 우러러보던 아버지보다 내가 훨씬 더 일찍 일어나 운동을 마쳤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자랑스러워졌다. 눈앞의 절대 넘을 수 없는 큰 산을 넘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바뀐 내가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네.'

주말 아침 각자 알아서 운동하는 아버지와 딸이다. 내가 툭하면 아들 행동 보면서 "그 엄마에 그 아들이네" 했는데 그 이전에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 



**그림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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