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비명횡사한다.
"그러다가 비명횡사한다. 자기 시한부 인생 사는 거야?"
"그게 뭔 소리야?"
"나한테 뭐 병 숨기는 거 있니? 도대체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 거야. 자기 그러다 진짜 큰일 난다고!"
남편이 작심한 듯 말했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쉬지 않고 뭔가를 하는 내가 걱정이 되었나 보다. 지금까지 한 말 중에서 최고 수위였다. '힘들다, 바쁘다.' 입에 달고 산 나도 잘못하긴 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잠시 나를 돌아봤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달려가고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정해져 있음에도 일은 계속 늘렸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둘째 윤이의 유치원 상담일자가 적혀 있었는데 바로 내일 이었다.
"어머 세상에! 까맣게 잊고 있었네. 이거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며칠 전 아침 9시쯤,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나 보령 도착"
'보령? 아 맞다. 출장 간다고 했지.' 출장 간 것도 깜빡하고 서울로 출근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 글을 남편이 본다면 머리 숙여 미안합니다)
일상에서 실수 연발하고 있다.
우리 뇌는 2%도 사용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왜 나는 뭔가를 늘리면 다른 걸 자꾸 깜빡하는 건지...
내 뇌는 포화상태인가 보다.
주말에 남편과 커피 한 잔 마시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자기야, 가지치기가 필요한 것 같아."
남편은 반박할 수 없게 참 맞는 말만 잘한다. 근데 말이 쉽지, 이미 벌려 놓은 일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더 늘려서 하고 싶은 게 많은 걸 참는 중이다.
가만 보면 일을 늘리는 것도 중독, 공부도 중독이다. 하면 할수록 더 빠져 드는 것 같다.
조절이 필요하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야 하는데, 제어 못해서 삐그덕 거리게 생겼다.
다짐하면서도, 나는 가방 한구석에 오래 묵혀둔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12월 꽉 찬 스케줄을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안 까먹겠지?'
줄일 생각 안 하고 보완책 마련했다.
참 나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