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본질
다섯 살 딸이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했다.
방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된 상황인지 첫째 찬이가 설명해 주었다.
"엄마, 우리 옛날에 놀러 간 사진 보고 윤이가 자기 안 데려갔다고 울어"
6년 전인가...
친정 식구들이랑 함께 여름휴가 갔던 앨범이었다. 오빠랑 사촌오빠가 수영장에서 튜브 타고 노는 사진을 보고 윤이가 울음을 터뜨린 거였다.
"그때는 네가 엄마 뱃속에... 아니다! 이 세상에 없을 때였어."
내가 너무 내 중심으로 얘기했나 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니, 다섯 살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일 거다. 자기가 없을 때라는 말에 꽂혀서 더 크게 울었다.
"나도 저 곰돌이 튜브 타고 놀고 싶었는데! 엉엉"
윤이가 하는 말과 우는 행동이 어이없지만 한편으로 참 귀여웠다. 꼭 안아주며 다음에는 꼭 데려가겠다고, 이쁜 튜브도 태워주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우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이럴 때 보면 아직도 애기다. 둘째라서 더 어리게만 느껴졌다. 모든 말과 행동이 사랑스러워서 좀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며칠 전, 자기 전에 윤이 몸을 씻겨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엄마가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왜 안 좋아?"
"응. 그냥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내 감정을 일부러 표현한다.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땐 엄마 즐겁다고, 힘들 땐 힘들다고 얘기한다. 내가 그렇게 해야 아이들도 자신의 감정을 계속 내게 잘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 잘 들어주는 아이들 표정 보며 위로받는 느낌도 있다.
욕실에서 씻으면서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윤이가 말했다.
"엄마, 다 씻고 방에 들어가면 엄마 엎드려봐."
"왜?"
"그냥 엎드려봐. 알겠지?"
목욕 후, 방에 들어가서 머리 말려주고 옷도 갈아입혀줬다. 그리고 윤이가 하라는 대로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랬더니 윤이가 내 발부터 머리까지 주무르기 시작했다. 발바닥과 종아리, 허벅지는 통통한 작은 발로 꾹꾹 눌러줬다. 팔과 어깨 머리는 손으로 주물렀다.
엄마가 기분 안 좋다는 말을 듣고 혼자 고민하다가 나를 위로해 줄 방법으로 전신 마사지 서비스를 해줬다.
"어머, 윤이야. 엄마 기분 안 좋다고 해서 주물러 준거야? 윤이 덕분에 엄마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 고마워."
윤이가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아직 만으로 다섯 살 꼬맹이.
엄마를 위로해 줄 줄 안다. '너의 그 작은 몸통 속에 그렇게 큰 마음이 들어있었구나.'
어떨 땐 너무 아기 같다가도 어떨 때는 속 깊은 딸이다. 그렇게 성장해 나가겠지.
내 눈엔 그저 사랑스러운 딸이다.
상대방이 기분 안 좋다는 말을 듣고 자기 식대로 고민하고 나를 위로해 줬다.
어른보다, 아니 나보다 백 번 낫다.
누가 기분 안 좋다고 하면 "왜?"라며 전후 상황부터 따지게 된다. 그래야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보다는 그저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가 더 나을 때가 있는 법이다. 내 얘기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위로의 본질을 순수한 딸에게서 다시 배워본다.
** 사진 참조: pixa 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