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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Jan 03. 2024

감사일기 쓸게 없다고요?

세상에 당연한 누림은 없다

나는 매일 감사일기를 적는다.

고정적인 감사 첫 번째는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감사합니다."이다.


아주 오랜만에, 1년인지 2년인지 만에 자다가 어택이 왔다. 매트 온도가 좀 높더라니, 자다가 더워서 깼는데 그 순간 답답함이 확 밀려왔다. 심장은 두근거렸고 온몸에 열이 올라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공포감이었다. 오랜만이지만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그것.

물 한잔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잠을 청했지만 생각의 끝이 답답함에 미치자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약을 먹을까?'

약 먹으면 긴장감도 사라지고 편안하게 잘 수 있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내가 벌려 놓은 일이 많다. 아침에 처리해야 할 일이 쌓였고, 못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약을 못 먹는 현실을 떠올리니 답답함이 또 밀려왔다.

'괜찮아. 죽지 않아. 아무 일도 없어.'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그리고는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휴... 다행이다."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더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글씨를 꾹꾹 눌러썼다.



동료이자 친구가 남아공에 살고 있다.

어제 동네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전기가 나갔다고 했다. 평소에도 툭하면 전기 끊기는 게 일상 다반사라 그러려니 했다. 당사자는 얼마나 불편할지 생각하면서도 전기 나간다는 얘기를 1년 넘게 들으니 내게도 익숙한 것처럼 느껴진 거다. 경험해보지 않은 익숙함. 참 아이러니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어제 오전부터 나간 전기가 하루종일 안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전기가 안 들어왔다고 발을 동동 거렸다. 이틀 내내 전기가 안 들어오다니!

다행히 남아공은 현재 겨울 아닌 여름이라 난방기구는 안 켜도 되었지만, 냉장고 얼음은 다 녹아 물이 줄줄 샜다고 했다. 세탁기도 못 돌렸을 거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도 모자라,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소리튠 영어 코치이다. 매일 회원의 소리를 듣고 피드백을 줘야 한다. 첫날은 집에 있는 배터리로 겨우 피드백을 줬는데 둘째 날이 문제였다. 핸드폰, 노트북, 아이패드 모두 앵꼬 상태라고 했다.

커피숍과 식당을 전전하며 충전하고 와이파이로 코칭을 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지인 집에서 눈치 보며 코칭했다고...

"불편하지만 스릴 넘치네요."

이 와중에 긍정 찾는 친구다.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으니, 그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몇 년간 즐겁게 살 수 있지 않나 싶다.

호닥거리면서 하루를 보냈을 친구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이렇게 지금 나는 방 불 훤히 켜놓고 편안히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또한 당연함이 아닌 감사한 일이다.

감사일기에 추가할 한 줄이 또 생겼다.

"환한 곳에서 편히 앉아 글 씁니다. 감사합니다."



공지영 작가의 신간,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일상의 고요한 평화에 감사했다.

작년에 다녀온 이스라엘. 지금은 전쟁으로 시체가 널려있고 평화란 없다.

매일 새벽 일어나 기도 방 문을 열 때마다 이곳의 평화에 소스라쳤다. 위험하기로 치면 우리 한반도도 그에 못지않은데 이 모든 고요와 평화가 실은 기적만 같아 나는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늘 감사에 목이 메었다.
(p 9)

휴전 중인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전쟁에 대한 걱정이나 고통이 없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실시간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이다.

당연한 평화는 없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평화롭게 오늘 하루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일기 적을 게 없어서 쓰기 힘들다는 사람 종종 봤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살펴보면 온통 주위에는 감사할 일 투성이다. 세상에 당연한 누림은 없기 때문이다. 재물도 잃어봐야 그 가치를 알고, 건강도 질병을 얻으면 뒤늦게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뒤늦게 깨닫기보다는, 지금 이미 내가 지니고 있는 누림에 감사함을 느껴보면 어떨까? 그게 바로 감사 일기의 핵심이다. 하루를 감사함으로 시작하면서 행복을 알아차리는 거다.


내 생각을 글로 꺼내 쓸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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