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주변 없는 못난 아빠
요 며칠 둘째 딸 유니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꼭 밥 먹기 전이나 밥 먹으면서 아프다고 하니까, 꾀병이겠거니 했다. 밥은 덜 먹어도 간식은 잘 먹었으니까. 사실 진짜 배가 아픈 건 나였다. 배가 주기적으로 아픈데 통증이 꽤 심했다. 너무 아파서 빨리 날이 밝기를 바랐다. 그런데 밤새 유니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열이 나면 그날은 보초 서는 날이다. 아픈 배 움켜쥐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다음날 소아과에 가니, 목이 부어서 열이 난 거라고 했다. 혹시 몰라 배도 진찰해 달라고 했다. 청진기를 대 보시더니 속은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역시 너 꾀병이었구나'
나는 장염이라고 했다. 유니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늦은 출근을 했다. 밀린 일을 하느라 바쁜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유니가 배가 너무 아파서 못 걸을 정도라고 했다. 소아과에 다시 가보니 큰 병원에서 영상 촬영을 해보라 했단다. 나는 부랴부랴 일을 대충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유니를 태우고 미리 알아봤던 종합병원에 갔다. 한참을 기다려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찍어보니, 유니 장이 엄청 부어있었다. 의사가 요 근래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저 꾀병인 줄 알았는데, 벌써 일주일 넘게 아프다고 했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정말 미안했다. 왜 나는 더 가까이서 아이 상태를 보살피려 하지 않았는지, 그토록 무심할 수 있었는지 너무 못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장염이었지만, 아이가 아프니 나도 모르게 통증을 무시하게 되었다.
입원을 하고 잠든 유니를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미 친정엄마와 남편과는 한 차례 통화를 했고, 친정 아빠의 전화였다. 손녀 걱정 엄청 하시겠네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너는 애 엄마가 애를 어떻게 봤길래, 애가 입원까지 할 정도로 만드니?"
아빠의 한 마디에 숨이 덜컥 막혔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을까. 내 딸 아프면 내가 제일 속상할 텐데 상처 난 마음을 더 헤집고 있었다. '지금 당신 딸도 아프다고요' 마음속으로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다. 감정은 숨긴 채, 대충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내 두 눈엔 눈물이 흘렀다. 나도 몸이 아파서 더 서러웠다. 내 딸은 나도 걱정하고 할아버지도 걱정하고 그럼 나는!! 순간 어린애가 돼 버린 것 같았다. 유니가 열이 났을 때, 큰 병원으로 가야 했을 때, 입원해야 했을 때 모두 걱정하는 마음 뒤로 한채 묵묵하게, 빠르게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러나 아빠의 한마디로 꼭꼭 묻어놨던 내 속상함은 여러 복잡한 감정으로 더 부풀어났다.
내가 미혼시절, 아빠의 뜻대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고 힘든 개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빠와 큰 트러블이 생겼었다. 당시 서로를 대하는 눈빛은 살벌했고, 말도 가시가 잔뜩 박혀있었다. 둘 사이가 다시 좋아지기에는 몇 년이라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의 상처가 다 아물었는 줄 알았는데, 아직인가 보다. 오늘 전화 한 통으로 이렇게 무너지는 걸 보면 말이다.
다음날, 아빠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안 받았다.
조금 후 친정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아빠가 유니 상태가 어떤지, 검사 결과는 나왔는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계속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어제 얘기를 하면서 오늘 전화는 안 받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하는 말이, 내가 밤새 잠을 잘 못 잤을 테니 엄마 보고 병간호를 교대해 주라고 아빠가 말했단다.
그랬구나. 내 걱정도 하긴 했구나.
속마음 제대로 표현 못하는 참 못난 아빠 덕에 나는 울었다 웃었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