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어진 삶의 조각 맞추기

내 삶의 정렬과 코어

by 디 마이너 윤미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 못 끝낸 일이 산더미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니. 오늘도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빨리 잠들어야 내일 일찍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머릿속이 복잡해지니 나도 모르게 몸 여기저기 힘이 들어갔다. 졸려도 몸이 긴장되어 있으니 잠이 빨리 올 법이 없다.


‘오늘 평온한 하루를 보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NO!

무엇 때문에 평온하지 않았냐고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글쎄… 뭐… 이유야 많지! 힘든데 말이지… 음… 돈이 부족해서? 회사 업무가 너무 많아서? 동료가 스트레스를 줘서?’

사람마다 직업, 성향, 생활 모습이 모두 다른데 들리는 이유는 비슷하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그 이유가 ‘진짜 내 것’이 맞는 걸까?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거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진짜 이유’를 아는 것이 삶을 조금 더 평온하며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는 첫걸음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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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이 맞지 않으면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주위를 보면 다들 애쓰며 열심히 산다. 노력하면서 성장하고 성취하면서 즐거움을 얻을 때도 있고, 수고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유독 더 힘든 시기가 있다. 딱히 달라진 건 없는데 뭔가 더 꼬이고 힘이 나지 않는다. 의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겨우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삶이 그런 것이라고 넘어가면 힘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괴롭고 지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우리가 마주하려고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퍼즐은 조각 한 두 개가 맞지 않으면 그림은 절대 완성될 수 없다. 비어있거나 삐뚤어진 퍼즐의 모습을 바라보면 불편하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크기가 100피스이건 1000피스이건 상관없이 나만의 퍼즐 조각이 잘 맞아야 한다. 삶의 어떤 부분이 틀어져 있다면 일상에 불균형이 생기고 내 생각이나 마음이 정렬되지 않게 된다. 그러한 삶을 계속 살아나간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 될까?

어느 날 갑자기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는다거나, 내가 투자한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거나, 멀쩡하던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처럼 엄청난 사건이 터져버린 것 외에도 평범해 보이는 삶 안에서도 틀어지고 무너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기준이 방향을 만든다.

사람마다 각자의 중심이 있다. 그 중심을 기준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아들 찬이가 서너 살 때, 집에 있는 미니 자동차나 동물 모형을 일렬로 세워 놓곤 했다. 찬이는 모형의 뒤꽁무니가 자신을 바라보게 줄 세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찬이야. 자동차가 너를 바라보게 하지 않고 반대로 했네? 그럼 너는 뒷모습만 보게 되는데, 자동차 앞 방향을 너를 향하게 해야 하는 것 아냐?’’

찬이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늘 같은 방향으로 줄을 세웠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이 바라보는 곳과 같은 방향으로 장난감 모형을 세운 것인데, 나는 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을까? 하물며 어린아이에게도 자신만의 기준이 있으며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기준이 어떠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며 중심이 제대로 서야 흐트러진 것을 내 방식대로 정돈하고 정렬할 수 있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다양한 일을 해결해 나간다. 오늘 하루 잘 마감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감사한 일이지만, 정신없이 사는 일상에서 내 삶의 중심과 퍼즐 조각을 잘 맞추며 나간다면 더 평온하고 즐거우며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

흐트러지고 뒤죽 박죽인 상태로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어긋남의 파이가 계속 커지고 그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 견뎌야 할 몫이 되어버린다.



삶의 뿌리 들여다보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왜 이리 의지가 약해졌니’

언제부턴가 매일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게 힘들었다. 나는 이것을 내 의지 문제로 치부해 버렸다. 그 결과 자괴감이 커지고 몸까지 망가지고 말았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살고 많은 걸 해냈지만 삶이 틀어지고 있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점점 더 강하게 버텨야만 일상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나’라는 식물이 힘없이 처질 때, 아무리 햇빛을 비추고 물과 비료를 주어도 소용이 없다면 그때는 땅 속 뿌리의 상태를 점검해봐야 한다.


삶의 뿌리는 가치관과 비전, 그리고 삶의 목적이다. 내면에 품은 가치와 내 행동이 어긋날 때, 삶의 정렬은 깨져버린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적고, 그 외의 일에 대부분을 쏟게 되면 중심은 금세 흐트러진다. 처음에 작은 균열은 알아채지 못하지만 비정렬과 불균형이 계속되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것이 몸의 건강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마음의 병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나’라는 사람은 의지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의지’란 불씨가 좀 더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자원이 될 수는 있어도 이 자체가 중심이 될 수는 없다. 몸과 마음, 생각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될 때에야 비로소 진짜 회복이 가능하다.

나는 ‘자유’를 원한다면서 현실에서는 억압된 삶을 살고 있다면? 나에게는 ‘가족’이 정말 소중한데, 막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면?

내 진심과 행동의 진실을 마주해야만 한다. 빠르게 달려 나가면서 진실을 알기 어렵다. 쓰러진 돌 대충 다시 올려놓으면서 나아가봤자 다시 도돌이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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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추고, 조각을 맞출 시간

<라틴어 수업>에서 말한다.

봄철의 아지랑이가 무심히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고 멈춰 서서 유심히 관찰해야 보이듯이, 내 마음속의 아지랑이도 스스로를 유심히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것이죠. (...)

내 안의 논리와 만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성찰해야 하며 그것을 바른 방향으로 정립시켜나가야 합니다.

이제 잠시 멈춰, 내 삶의 조각을 다시 맞춰볼 때이다. 테트리스처럼 하나씩 알맞게 조각을 맞추고, 3살짜리 찬이가 그랬듯 나만의 기준을 세워 같은 방향으로 줄 지어 세워보는 거다.


이제 멈춰 서서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어떤 방향으로 살고 있는가?

내 가치관, 행동, 시간, 에너지가 같은 방향인가?

내 삶의 기준, 코어는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서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더 단단하고 긴 호흡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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