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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an 26. 2022

얼마만인가 이 포근함!

가족들 소개와 우리 집 둘러보기 

이전 집에서와는 달리 이 집에서는 내가 좀 많이 바쁠 것 같다. 집도 예전 집보다 더 크고 식구도 더 많고 마당도 있어서 집 밖도 때때로 점검해야 하고...  


엄마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가족들 소개를 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소개해주었다. 


콜튼, 이쪽은 아빠야. 그리고 여긴 누나, 여긴 형(Colton, here he is your dad, she is your elder sister and he is your elder brother). 


누나는 뭐고 형은 또 뭐꼬? 니들이 나를 오빠 그리고 형이라 물러야겠구먼! 내가 몇 살인지 니들이 알기나 아는지... 아고 내 팔자야 야옹! 


어쨌든 내가 아직 애들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데 이 애들을 어찌 키울꼬 걱정이 태산이다. 


이 집에서 제일 말수가 적은 사람은 아빠다. 하루 종일 몇 마디 안 하다가 말을 할 때는 왠지 화가 난 사람 같다. 아빠가 하는 어쩌고 저쩌고를 아직은 못 알아듣겠다. 앞으로 아빠가 하는 말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다. 말은 없지만 아빠는 날마다 내 밥을 챙기고 물을 바꾸고 응아를 치운다. 어쨌든 아직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이 안 되니 시간을 가지고 좀 더 지켜봐야겠다. 


이 집에서 말이 제일 많은 사람은 엄마다. 엄마는 모든 식구들과 수시로 말을 하고 나에게도 끊임없이 말을 시킨다. 옛날 엄마는 집안에서 말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이 엄마는 말이 참 많다. 엄마가 계속 말을 시키니 내가 좀 피곤해질 때도 있다. 엄마는 시간만 나면 지하 서재라는 곳으로 내려가서 늦게 까지 일을 한다. 


누나라는 이 계집애는 뭘 하는지 항상 시끄럽다. 집에서도 후다닥 뛰어다니고 연주를 한답시고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다. '나는 시끄러운 것은 딱 질색인데 말이지...' 그래서 누나 방은 가급적 안 가려고 한다. 


반면 형은 조용한 편이다. 내가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 꼬마가 마음에 든다. 이 꼬마는 내가 언제나 자기 방을 들락거릴 수 있도록 문을 닫는 시늉만 하고 살짝 열어둔다. 나이는 어린데 배려심이 많은 아이다. 형의 손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작고 보드랍다. 나를 보는 형의 눈빛은 참 따뜻하다. 아직 세상 때가 안 묻은 순진한 얼굴이 무척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내가 이 꼬마형을 많이 살펴주고 아껴주어야겠다. 


이제 전체적인 집안 구조는 거의 파악이 되었다. 예전에 살았던 집보다는 크지만 그래도 아담해서 크게 부담은 없다. 무엇보다 이 집이 좋은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예전 엄마는 너무 깔끔하셔서 내가 뭐 하나만 잘못 건드리거나 발톱으로 조금만 흠집을 내도 "오 마이 갓(Oh my god)" 하며 놀라기 일쑤였는데 여기 엄마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허기야 내가 보기에 이 집 가구들은 공짜로 준다고 해도 아무도 안 가져갈 만큼 오래된 것들 투성이다. 무슨 집이 고물상 전시장 같다. 내가 사방으로 올라 다녀도 이 집 식구들은 뭐라고 하는 법이 없다. 그동안 청소를 자주 안 했는지 구석구석 먼지도 장난이 아니다. 


엄마 아빠는 나를 위해 거실 창 옆에 높은 캣타워를 설치해주었다. 그곳에 올라가 있으면 이 집 앞 골목과 앞집이 훤히 내다 보인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기도 한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아줌마는 항상 나에게 "하이(Hi)" 인사를 건넨 후에 우편물을 남기고 간다. 이 집은 뒷마당도 앞마당도 널찍해서 내가 풀을 뜯어먹고 달리기를 하기에도 딱 좋다. 


엄마는 때때로 나를 침대로 데리고 가서 간지럽힌다. 그리고 내 목과 배도 긁어준다. 때론 엄마의 뽀뽀가 너무 과해서 숨이 막힐 뻔한 적도 있다. 침대로 올라가는 것은 아빠가 옆에 없을 때만 가능하다고 엄마는 일러주었다. 왜냐하면 엄마가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서 내가 침대에 올라가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알레르기가 걱정되면 청소나 좀 제대로 하든가... 


어쨌든 한 두 가지 원칙쯤이야 나도 지칠 용의가 있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눈치가 백 단이니 너무 염려 마이소!


엄마 침대는 푸근했다. 여기 엄마는 내가 무엇을 해도 만사 오케이다. 먼지 알레르기가 있다면서도 내 배에다 자기 얼굴을 묻고 비빈다. 난 간지러워 죽겠다. 정작 간지러운 쪽은 난데 엄마가 더 간지러운 것처럼 웃고 자지러진다. 엄마는 입안에 공기를 가득 넣었다가 내 배에다 "푸우..." 하고 뱉는다. 그럴 때마다 나도 웃겨서 뒤집어진다 "푸하하... 야옹" 


아! 얼마 만에 느껴본 포근함인가! 의도치 않게 바깥에서 며칠을 지내고 보호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두려움이 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세상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요새는 내가 예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한다. 


이젠 이 집이 내 집이다. 내일부터는 나도 가족들을 살뜰히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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