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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an 27. 2022

엄마야 제발 잠 좀 자자...

나는 졸립소! 

아침이면 정신이 없다. 엄마는 누나와 형 도시락 싼다고 일등으로 일어나신다. 딸그락 소리에 예민한 나는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리고 누나와 형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누나와 형에게 라이드를 해주기 위해서 아빠도 일찍 일어나신다. 그런데 아빠는 본인이 학교 가서 공부할 것도 아닌데 아침마다 애들보다도 더 오래 화장실에서 준비를 하시고 단장을 하신다. 그리고는 차를 주차장에서 빼고 누나와 형이 나오기를 기다리신다. 누나와 형은 늘 늦어지고 결국 아빠가 차를 "빵빵"거려야 정신없이 나가곤 한다. 분명 학교 가는 내내 아빠의 잔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엄마는 누나와 형이 나가고 나면 "휴우~" 하고 본인도 출근 준비를 하신다. 엄마는 집을 나설 때 본인의 코를 내 코에 비빈다. 그리고 적어도 세 번 이상 뽀뽀를 한다. 울 엄마는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친다. 거기서 그치면 좋을 텐데 꼭 '잇몸(영어로 검, gum) 마사지'를 해준답시고 엄마의 두 엄지 손가락으로 내 양쪽 잇몸을 몇 번이고 문지른다. 


 검(gum) 마사지, 검(gum) 마사지, 검(gum) 마사지 


나는 누가 내 수염을 만지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그 부분은 좀 예민한 부분이라서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엄마는 내 잇몸 마사지를 해준답시고 내 수염을 건드린다. 다른 사람이 건드렸으면 벌써 한 방 잽싸게 날렸을 텐데 엄마가 해주시는 거니 마사지 그냥 받기로 했다. 


어떤 때는 아빠가 누나와 형을 데려다주고 와서 엄마를 전철역까지 데려다 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엄마가 미리 나갈 때도 있다. 엄마까지 출근하고 나면 집안이 조용해진다. 나는 누나와 형이 혹시 뭐 빠뜨리고 간 것이 없나 누나와 형 방을 한 번 삥 둘러본다. 


형과 누나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 우선 조용할 때 낮잠을 한숨 자 둔다. 그리고 체력관리를 위해서 아빠와 마당에 나가서 산책도 한다. 이때 아빠는 뒷마당에서 골프 연습을 하시고 나는 뒷마당 구석구석을 살핀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옆집 앞집 녀석들이 우리 집에 와서 뒷 일을 본 것 같다. 화단 군데군데 녀석들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어림도 없다. 우리 집에 오는 녀석들은 내가 혼줄을 내줄 참이다. 


누나와 형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아빠와 나는 산책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아빠는 내가 들어가기 전에 빗질을 해주신다. 여기 있는 빗은 옛날 집에 있던 빗보다 더 촘촘해서 그런지 살짝 아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만 빗기라고 몸을 틀면 아빠는 "요놈이!"라고 하면서 나를 한 손으로 더 세게 잡는다.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 이해하고 돕고 살아야지 요놈이 뭔가? 내가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지. 나는 아빠가 좀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의 무례한 빗질 덕분인지 아니면 음식 때문인지 어떠한 이유로 이 집으로 이사 온 후부터 내 피부가 더 좋아짐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다. 팩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도 윤기가 나고 탄력이 생겼다. 아무튼 아빠와의 의사소통이 아직은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빠도 아주 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빠는 엄마처럼 살갑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대로 나랑 케미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오후가 되면 누나와 형이 돌아오고 저녁 시간이 되면 엄마가 퇴근을 한다. 엄마는 퇴근을 하고 난 후 부산하게 저녁 준비를 하신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면 누나와 형은 각자의 방으로 가서 학교 숙제를 하고 아빠는 아빠 방에 가서 컴퓨터를 통해 내가 못 알아듣는 이러쿵저러쿵 프로그램을 보신다. 누나는 늘 바빠 보인다. 그런데 형은 엄마 아빠 (특히 아빠) 몰래 게임을 자주 한다. 나는 알고 있지만 아빠에게 고자질을 하지는 않는다. 엄마는 지하로 내려가신다. 잠시 후면 엄마를 찾아온 학생이 우리 집을 방문한다. 엄마는 그 학생과 어쩌고저쩌고 하시며 한참의 시간을 보내신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를 자주 만나고 어떤 학생들은 뜨문뜨문 찾아온다. 나는 엄마가 학생과 같이 있는 내내 엄마 안전을 체크하러 지하로 자주 내려가 봐야 한다. 또 누나와 형이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중간중간 체크하기도 한다. 


학생이 돌아가고 나면 나는 좀 쉬고 싶어 진다. 지하실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서인지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런데 엄마는 다시 컴퓨터를 연다. 피곤하지도 않으신지 뭘 또 열심히 하신다. 나는 제발 그만하고 올라가서 자자고 보채 본다. 


엄니, 저 계속 하품이 나오네요.

옛날 엄마는 일터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먹은 후 텔레비전을 보다가 금방 잠에 들었는데 이 집 엄마는 도통 잠이 없다. 무슨 불사조도 아니고 말이지. 위층의 사람들은 하나 둘 잠자리에 들고 이 집에 엄마와 나만 깨어 있다. 엄마는 나더러 먼저 자라고 하지만 엄마를 혼자 두고 어찌 나 먼저 잠자리를 청할 수가 있겠는가. 기다기고 기다려 본다. 그러다 하품이 계속 나온다. 


엄니, 제발 잠 좀 잡시다! 


엄마는 다음 날 발표가 있으면 나더러 한 번 들어보라고 내 앞에서 연습을 하신다. 솔직히 내가 엄마 분야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내가 우찌 아리오. 


콜튼, 엄마 발표가 어때? 립서비스 말고 솔직한 너의 생각을 말해봐? 


...


우리 엄마는 매사에 수시로 나의 의견을 많이 묻는다. 나는 내 음식에 관한 내용이나 스낵 먹고 싶냐 혹은 마당에 나가고 싶냐는 질문만 받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다른 질문들은 사양하고 싶다. 


엄마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위층으로 올라올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고. 콜튼 때문에 그만하고 일찍 자야겠다. 


아고. 엄니. 일찍은 무슨 일찍... 벌써 새벽 한 시가 넘었구먼요. 


불사조 엄니와 나는 위층으로 올라와 서로에게 굿나잇을 주고받는다. 엄마의 굿나잇 인사는 아침에 출근할 때 나누는 인사만큼이나 절차가 복잡하다. 


콜튼, 굿나잇 하세요. 엄마 챙기느라 오늘도 고생했어요. 어깨 마사지, 다리 마사지... 


그러면서 내 어깨와 다리를 주무른다. 


마사지고 뭐고 만사가 귀찮소. 난 그냥 이만 자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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