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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an 24. 2022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오다

너를 처음 만난 날

이전의 엄마 아빠는 내게 대체로 친절하기는 했으나 두 사람 다 말수가 적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그다지 살갑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많았고 저녁이 되면 엄마 아빠는 일터에서 돌아와 내게 말 한마디 시키지 않은 날도 있었다. 낮은 아파트 일 층에서 사는 나는 답답하기는 했지만 엄마가 청소하느라 열어놓은 베란다 문을 통해서 가끔 장미꽃 향기도 맡을 수 있었고 운이 좋은 날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내게 말을 시켜주기도 했다.


하이! 너 정말 귀엽다(Hi, you're so pretty!)


그러면서 옆에 있는 엄마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엄마는


콜튼(Colton) 아메리칸 숏헤어(American Shorthair)


엄마는 내 이름에다 족보까지 들먹였다. 그러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주고들 지나갔다.


그렇게 특별한 불만 없이 그럭저럭 살았는데 내가 2살이 되고 3살이(사람 나이로는 33살쯤) 넘어가자 내가 봐도 내 몸집이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바깥세상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저 베란다를 넘어선 세상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옆집에 사는 나와 같이 생긴 그 녀석은 자기네 집 베란다 밖을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허락을 받았나 보다. 이 녀석은 가끔 우리 집 베란다로 건너와서는 커튼 사이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기도 했다. 언젠가는 내 이 녀석을 한 대 패줄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엄마가 청소하시는 사이 늘 그렇듯 베란다로 마실을 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물도 마시고 싶고 배도 고파서 다시 들어오려고 하는데 베란다 문이 닫혀있었다.


엄마 문 좀 열어주세요, 야옹(Mom, open the door please, meow)!


인기척이 없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베란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엄마가 외출을 하신 거 같았다. 나는 때는 이때다 하고 베란다 벽을 살포시 넘어 밖으로 나갔다. 먼저 옆집 녀석 한 방 먹이고 조금만 놀다가 돌아올 심산이었다.


베란다를 벗어난 세상은 모든 것이 낯설고 무엇보다도 너무 시끄러웠다. 집에서는 주로 사색을 즐겨왔기 때문에 나는 시끄러운 곳에 적응이 되질 않았다. 좀 조용한 곳이 없나 찾아보다가 한쪽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옆집 녀석을 발견했다. 그동안 힘쓸 일이 없어서 힘이 남아돌았던 나는 그놈을 향해 내 날렵한 온몸을 던졌다. 그놈은 내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싸움을 좀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만감에 어깨를 쭉 펴고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어떤 놈들은 저만치에서 나를 보자마자 이미 내빼기에 바빴다. 그렇게 며칠을 나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쉬고 싶은 데서 쉬다 보니 집에서 먹던 음식들 그리고 포근한 잠자기가 그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찾고 계실 엄마 아빠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작정을 했으나 내가 와버린 그 길이 어디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와 비슷한 집들이 너무도 많았다.


헤매고 헤매도 엄마 아빠의 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중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나는 똑같은 장미 향기가 나는 베란다를 찾았다. 그러나 그 베란다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닌 다른 아주머니였다. 내가 우리 엄마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그 아주머니께서는 엄마를 찾아 주겠다면서 BC 유기 동물 보호소(BC SPCA)라고 하는 곳에 연락을 했다. 나는 그 동물 보호소에서 다른 녀석들과 며칠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 동물 보호소는 대체로 깨끗했고 전담 매니저 아저씨가 있었다. 주말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와서 우리와 함께 몇 시간씩 놀아주기도 하고 맛난 간식을 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보호소 매니저 아저씨가 내 엄마와 연락이 닿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는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와 기쁨에 그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엄마는 매니저 아저씨에게 나를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단다. 나의 가출이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알고 괘씸해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그새 나쁜 애들과 어울렸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나는 그 이후로 엄마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동물 보호소에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차츰 외롭고 슬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베란다 문을 닫아버려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을 엄마를 만나면 자세히 설명하려고 했는데 모든 것이 무산되어 버렸다. 보호소 매니저 아저씨는 내가 잘 생기고 건강해서 새로운 엄마를 곧 만나게 될 거라며 위로해주었지만 사실 나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그 사실에 몸과 마음이 이미 지쳐가고 있었다.


보호소에서 다른 녀석들에게서 들은 말로는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아픈 곳이 많이 생긴단다. 날마다 보호소로 오는 녀석들 숫자도 늘어나고 결국 몸이나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녀석들은 안락사 정책(euthanasia policy)에 의해서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나도 그러다 종국에는 그런 신세가 되나 보다 싶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옛날 엄마 아빠와는 다르게 생긴 네 명의 가족이 보호소를 방문했다. 엄마. 아빠. 딸. 그리고 아들 같았다. 옛날 엄마 아빠의 얼굴색은 하얀색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노란색에 가까웠다. 딸 아들은 옛날 엄마 아빠가 쓰던 말과 같은 말이어서 알아듣겠는데 엄마 아빠로 보이는 이 두 사람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얘기를 했다.


????? 애들아. 이 고양이는 정말 크다, 그치? 고양이가 너무 커서 좀 무섭네. 설마 우리 아들 할퀴지는 않겠지...?????


이 네 사람 중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매니저 아저씨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서류에 무엇인가를 적고 난 후 나에게 다가와 "콜튼" 하면서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콜튼, 너는 우리 가족이야 이제 (Colton, you are my family now)!


그렇게 해서 나는 그날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이 가족이 사는 집으로 이삿짐 하나 없이 달랑 빈 몸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는 내내 차 안에서 나는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반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고 반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얘기했다. 특히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했다.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내내 깔깔대고 나를 보고 또 보고 내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이 가족은 중간에 Petcetera라는 펫 스토어에 들러서 이것저것 내게 필요한 살림살이를 샀다. 쇼핑하는 것을 지켜보니 엄마라는 사람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두 가지를 다 잘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이 가족은 나를 신줏단지 모시듯 다루었다. 내가 들어있는 바구니가 조금이라도 옆에 부딪치면


조심해(be careful)!


나 하나를 가지고 네 명 그러니까 8개의 눈이 일제히 나만 쳐다봤다. 솔직히 되게 부담스러웠다. 드디어 바구니 밖으로 나가게 되자 부끄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내 몸을 잽싸게 숨기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 이름을 계속 불러댔다. 그때 다행히도 엄마라는 사람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들아. 고양이가 새로운 집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2-3일 필요하단다. 우리가 콜튼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그 시간을 존중해주자(It takes between two and three days for cats to adjust to a new home. So let's respect the time until Colton can feel safe).


어! 이 엄마 뭐지? 제법이네!


내 이름을 연신 부르던 아이들은 이 엄마라는 사람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잠시 부르지 않아서 좋기는 하나 이 집은 옛날 엄마 아빠 집에 비교해서 좀 시끄러울 것 같았다. '사실 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인데...' 내가 살던 옛날 집에서는 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하루 종일 말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 집 사람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말하고 웃고 떠들고 정말 내 앞날이 어찌 될른지 모르겠다 싶었다. 차라리 보호소에 남는 것이 더 낫았으려나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그날 나는 엄마라고 부르는 너를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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