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지덕지 쓰고 다니는.
쓰고 싶지만, 쓸 줄 모르고
뭘 쓸지 궁리하며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검지 손가락으로 종이 책장을 넘기는 게 훨씬 편안하고 좋다. 근데 또 책 몇 장 읽다 보면 눈으로는 글씨를 읽어도 머릿속에선 이런 거 써볼까 주제 정하고 도입이랑 전개. 마무리를 쓰고 있다. 글이 되는 거 같아서 메모장이에 적을라치면(요샌 브런치 저장기능을 이용하고 있다) 아까 생각한 문단. 단어 이런 건 다 날아가고 없다. 나는 휘발성이 강하구나. 나에 대해 또 하나 알아가게 된다.
‘무분별하게 내키는 대로 천권 읽기’가 책 읽기 목표였는데, 몇 권쯤 읽었으려나. 해마다 권수를 적어둔 포스트잇이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다. 최근까지 쓰던 다이어리 내지 안쪽에 붙어있을 걸로 추정해 본다.(궁금은 한데, 찾기는 귀찮은 상태) 삼 년째 다이어리를 안 쓰고 있다. 사 년짼가….
다이어리를 대신할 기록 장치들,
일정이나 기록들. 행사나 일기. 메모나 낙서. 자잘한 그림. 통화할 때 할 말 같은 것들을 적어두던 다이어리를 스마트 폰이 완전히 대체하고 있다. 쓰는 맛이 사라졌다.
일정은 타임블록에 정리하고, 잡다한 생각은 메모장이나 비공개인스타 계정에 적는다. 일기, 나들이나 여행기록은 카스에 써왔다. (카스를 이용한 지는 오래됐다. 최근 카카오스토리의 이용자가 감소해서 나는 서비스 중단이 우려된다. 싸이월드처럼 사라질까 봐…) 감정과 기분은 핸드폰 사진첩 사진 속에 사진과 함께 담겨있다. 다시 한번 체크할 내용들을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을 즐겨찾기로 저장한다.
내가 사진첩에 저장한 사진들은 클라우드 기능으로 자동으로 네이버박스에 저장된다. 읽고 싶은 책도 다이어리에 메모해두고, 읽은 책은 줄을 그어 지워나갔는데, 요즘엔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바꿨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일단 예스 24 장바구니에 담는다. 담아둔 책 목록은 도서관에 갈 때마다 검색해 본다. 신간 인기도서는 주로 대출 중이라 지역 도서관보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기 쉽다. 학교 도서관에 봉사하러 갔다가 사심과 가방을 채우고 나오는 셈이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남거나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은 따로 주문을 한다. 최대한 주문은 참는 편이다. 책이… 짐이 되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은 주로 책에서 책으로 이어진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들이 영향을 받은 책들을 책 속에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검색해서 예스 24 장바구니에 담는다. 오늘은 황정은의 ‘일기’를 읽었고, 일기에 나온 책 중에 록산 게이의 ‘헝거‘를 장바구니에 담을 예정이었다. 이런, 품절이다. 품절 상품은 장바구니에 담을 수가 없나 보다. 사진으로 찍어 기록을 할지, 머리에 기억을 할지 잠깐 고민이 됐다. 기억해 보자. 휘발성이 강한 내 기억력이지만, 오늘은 내 기억력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싶다.
그렇게 읽은 책들은 인스타계정에 간단하게 리뷰를 하고 있다. 아까 적었듯이 휘발성이 강한 기억력을 가졌으니, 읽은 책을 구분하기 위해 적기 시작했다. 빈약한 기억력 덕분에 읽은 책을 또 읽어도 새롭긴 하지만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은데, 읽은 걸 또 읽고 싶진 않다. (연례행사로 반복해서 읽는 책도 있긴 하다) 책을 사서 읽을 때는 읽은 책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는데, 빌려 읽다 보니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을 구분할 어떤 행동이 필요했다. 독서노트를 적어봤으나 읽은 책의 권수가 많아지면서 파악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카운팅 기능과 해시태그 기능을 이용하려 인스타를 활용하고 있다. 좋은 글귀는 따로 필사노트에 적어 둔다. 필사노트도 인터넷으로 대체할까 고민했었으나 아직은 손으로 쓰는 게 좋다. 근데 최근에 필사할 때 눈에 초점이 안 맞기 시작했다. 읽을 땐 못 느끼는 노안을 쓸 때 느끼고 있다. 좀 슬프다. 다이어리 쓰기는 오랫동안 익힌 습관이라 아쉽긴 하지만 필사노트 외엔 스마트폰(인터넷)으로 대체했다.
누군가는 온라인에 똥을 싸는 거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나도 여기저기 인터넷에 똥을 싸고 있다. 인터넷에 흔적 없이 사는 게 좀 더 멋있게 느껴지긴 하는데, 나는 덕지덕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나는 비록 ‘여기저기,덕지덕지’ 똥을 싸고 다녀도, (요샌 브런치에 글똥을….) 나라는 사람은 살면서 군더더기가 없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