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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썽 Aug 21. 2023

쫄보의 산책길

느슨하게 걷고 싶다.

‘매일걷기’ 중독자가 되었다.

오전에 걷는 게 하루의 루틴이나 여러 가지로 최선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오전에 못 걸으면 이른 저녁을 먹고, 저녁에 걷는다.


여섯 시와 여섯 시 반 사이,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휴대전화와 부채 한 장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역시 걸으러 나오길 잘했다며 나를 대견해하며 걷다가,

포르르 날아오르는 참새의 움직임에 움찔 놀라고, (그게 뭐라고) 그릉그릉 낯선 짐승소리에 고개 돌렸다가 돌담 위에서 그르렁 거리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르렁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린 줄 알았는데, 어찌나 무섭게 쳐다보는지 고양이가 아니라 으르렁대는 늑대를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이연타로 놀라 쪼그라든 마음은 길 위에 꼽등이를 보고도 놀라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큰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분들을 마주쳤는데, 티 안 낸다고 한쪽으로 붙어 걸었어도, 잔뜩 겁먹은 눈빛을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합니다. 그 개가 무서운 게 아니라 개 짖는 소리에 내가 놀랄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렇다고 말이라도 해줬어야 했을까. 오늘은 날벌레까지 유독 달려든다 싶은 산책길이었다.

살짝 겁먹긴 했으나 이건 내 겁이 문제인 상황들,

시드는가 싶더니 다시 활짝 핀 능소화를 신기해하면서, 빨갛게 익어가는 동백 열매와 지는 해를 보면서 힘차고 빠르게 걸어본다.

길동무가 있었으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을 그런 길이다.

전기차 한 대가 조용히 뒤에 서는데, 주차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뒤를 쫓아오는 기분이 들어 또 무섭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200미터 정도를 도보 속도에 맞춰 뒤에서 주행하고 있어 겁이 났다)



내가 무서운 게 곤충인지,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인건 확실하고, 강력하고 흉악한 뉴스가 많아 안전지대가 없어진 기분이 든다. 큰길이라고 안전하지도 않고, 사람이 많은 길이라고 무턱대고 안심할 수 없는….


요즘 나는, 나는 걷는 일이 제일 좋다.
경계를 풀고 느슨하게 걷고 싶다.
산책길에 내가 만나는 게 뭐든,
아무 경계심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산책의 마무리는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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