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

by 연우맘

오랜만에 혼자 퇴근한다. 매일 딸 연우와 같이 가던 길인데 혼자 가니 더운 날씨에도 옆구리가 시리다. 연우는 엄마 직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4학년 때부터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기특하고 똑똑한 아이다. 그리고 집으로 하교하지 않고 꼭 엄마 학교로 와서 같이 집에 걸어간다. 보통걸음으로 걸으면 20~25분이 걸리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일 같이 퇴근한다. 그냥 집으로 먼저 가 있으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몇 번 했는데 엄마 혼자 퇴근하면 심심하지 않냐며 괜찮으니 같이 다니자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나 혼자 터벅터벅 걸어간다. 유독 더 멀고 힘들게 느껴진다. 딸이 아침에 혼나고 학교에 갔기 때문이다. 이유는 엄마의 특급 과외수업을 받는데 요즘 공부 자세가 매우 해이해졌고 어제저녁, 영어와 한자 단어시험을 반도 못 맞아서다. 엄마인 나는 소리를 질렀고 딸은 울면서 학교에 갔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학교로 갔다. 서로에게 학교는 도피처이다. 딸은 잠시라도 숨을 돌리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학교, 나는 잠시 엄마 역할 벗어던지고 직장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잠시 떨어져 지내며 서로를 놓아준다. 그러게 한나절을 보내고 퇴근 시간에 다시 만나서 손을 잡고 같이 퇴근을 한다.

한 번은 연우가 열이 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쉰 적이 있었는데 내가 학교에서 일이 생겨 퇴근 시간이 예정보다 30분 늦어졌다. 딸이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할 길이 없고 서둘러서 집에 뛰어가듯 가고 있는데 연우가 저 멀리에서 서 있는 게 보였다. 아픈데도 엄마가 항상 오던 시간보다 늦어지니까 납치되거나 교통사고 난 줄 알았다고 화를 내면서 와락 안겼다. 화내고 괜히 큰소리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조금이라도 더 늦어졌다면 딸 애간장 다 녹일뻔했다.

오늘 아침처럼 몇 번 엄마한테 그 정도 혼나면 엇나갈 만도 한데 항상 퇴근길을 같이해주려고 제자리를 찾아오는 연우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많이 화나고 속상했나 보다. 다른 때는 아침에 이런 비슷한 일이 생겨도 꼭 엄마 학교에 와서 나에게 음료수 선물과 함께 아침에 죄송했다고 안아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교문 뒤에 숨어 있다가 “서프라이즈!” 하며 뒤에서 와락 안기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도 교문을 나서면서 어디서 딸이 튀어나올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갈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서운하고 또 서운했다.

그럼 오늘은 나보다 더 서운했을 연우에게 내가 서프라이즈 선물을 사줘야겠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가는 길에 문구점이 들러서 결국 고르고 고른 게 수첩이었다. 모르는 영어단어 적어서 등하교 시간에 보며 시간 알뜰하게 쓰라는 엄마의 사랑 담긴 선물인 것이다. 그런 선물을 받고 금세 연우는 웃으면서 “고맙습니다. 엄마. 아침엔 제가 죄송했어요. 오늘은 feel so good에요. 단어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컴퓨터같이 판에 박힌 대사를 암기해 내뱉는다. 그래야 엄마가 화를 풀고 자기도 편할 것을 아는 잔머리도 자라난 나이가 된 것이다.

내일은 또다시 꼭 같이 퇴근하자고 둘이 약속했다. 나는 또 딸이 내 학교로 오기 몇 분 전부터 기다리며 퇴근할 준비를 주섬주섬하며 기다리고 있겠지. 너는 어린 공주, 나는 여우 같은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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