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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특급 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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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04. 2024

특급 과외, 특급 학생

수요 없는 공급

내일부터 다시 과외를 시작한다. 계약서를 방금 쓰고 각서에 서명도 각자 했다.

1대 1 과외다. 하지만 고액과외가 아니다. 무료로 가르쳐주지만 전혀 억울하거나 손해를 본다는 느낌은 없다.

공짜로 봉사해 주는 수업이라고 감히 대충 할 수 없는 최고 고객님이다.


시작부터 표정관리 잘해야 한다. 진심으로 잘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마음을 굳세게 먹었는데 오리엔테이션 시간부터 소리를 한번 지르고야 말았다. 고객님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서 공부 계획표를 조금 조율해 줬다.  시작부터 한발 물러나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데 장기계약이라서 조금 유연하게 출발하다가 중간에 강도를 높이기로 머릿속으로 전략을 짰다.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수업을 한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 잠깐이지 영어 문법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전 과목 골고루 더 많이 하는 게 계약서에 쓰여 있다. 영어를 주로 가르치지만, 수학과 한자 그 외 다른 과목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권장해 준다. 과외선생님인 나는 검사만 해주고 시의 적절한 조언을 하되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공부만 가르쳐주는 과외가 아니다. 인성교육까지 해줘야 하므로 선생님인 내가 오히려 수련을 먼저 하고 수업에 임해야 한다. 중간중간 마음의 도를 닦으며 심호흡도 한번 크게 내쉬어야 한다. 암세포가 자랄 수도 있어서 몸건강, 정신건강도 잘 살펴야 하는 다들 피하는 업종이다.     



도중에 쉬운 문제를 못 푼다거나 딴짓을 하면 소리를 빽! 지르지 않고 재벌가의 딸이라 생각하고 참고 또 참고 다시 설명해 줄 것이다. 이 부분이 최대 난관이다. 나는 잘할 각오가 되어있는데 학생이 도중에 포기할까 봐 또는 애초에 공부머리가 없는 싹- 품종을 개량해야 하는 어려운 길로 갈까 봐 걱정될 때가 많았다. 아직은 나무가 되기 전이니 물 잘 주고 비료 적당히 뿌려줄 것이다.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최대한 다시 쉽게 설명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려면 특히 수학은 미리 수업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만에 하나라도 학생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답과 해설을 봐도 모르겠는 문제는 과감히 버린다!


음악이 듣고 싶다면 공부하기에 적당한 클래식 음악도 배경음악으로 깔아준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최신곡은 절대금지다.배가 고프다면 간식도 좀 주고 목마르다면 물도 직접 떠다 바쳐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아이스티 타줄까 고객님 요구사항에 맞춰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은 미워할 수 없는 학생이다.


못하는데도 무조건 잘한다고 과도한 칭찬은 안 한다. 100점 맞았다고 듣는 바보도 거짓말이라는 거 뻔히 아는 "천재야!"이런 말 말고  같이 기뻐해 줄 것이다.

“나도 이렇게 좋은데 넌 얼마나 기분 좋을까!”

부족한 점은 딱 부러지게 혼내고 다시 반복 학습을 시킨다. 학생을 기죽이거나 자존감을 떨어트렸다고 민원 전화나 항의를 받을 걱정은 없다. 과외가 끊길 염려도 없다.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내 딸, 내 학생 – 연우는 고객이다.

자식은 내가 아닌 것이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나간 지 오래다. 부모와 자식사이에 공부로 인해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고 등 돌리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손님 대하듯 존중하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선 넘지 않게 조심할 것이다. 그렇다고 니 갈길 알아서 가라라는 식으로 포기 비슷한 방관은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의무만을 다하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을 것을 자신에게 또 한 번 약속한다. 사랑과 믿음을 보여줘서 고객감동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마음속으로 선서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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