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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10. 2024

압박이 주는 편안함

갑자기 미안해진다. 내 종아리에게, 그리고 딸에게.


유독 많이 움직인 날은 종아리에 압박밴드를 찬다. 집중하고 온 신경을 종아리 부분에 곤두세워서 느껴보면 약간은 풀린다, 시원하다기분이 든다

다리나 팔의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정맥혈관에 압력을 가하여 혈액이 심장으로 향하는 과정을 도와준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와 압력 수준이 있으므로 의료 전문가와 상담 후 적절한 스타킹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시간 서 있는 사람에게는 부종을 줄여서 정맥류와 관련 있는 문제에 도움이 되고 근육통 신경통 등의 통증 완화에도 좋다고 설명서에 쓰여 있었다.   

  

오래 서 있거나 걷는 날이 많아질 날이면, 갑자기 다리 종아리 근육이 단단하게 돌덩이 같이 뭉치면서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있다. 하필 특히 밤에 잘 때 이런 증상이 잘 생긴다. 진짜 눈물 뾱 나게 아파 죽을 것 같다. 그런 고통이 오래가진 않고 한 20초 정도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진다. 이때는 아무리 다리를 주물러도 일정 시간이 지나지 않는 한 찢어지는 듯 쥐어짜는 아픔에 잠은 다 달아나고 식은땀이 난다.

처음엔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후기를 조금 읽어보니 좋은 평이 많아서 종아리 압박밴드를 샀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압박밴드를 착용한 날은 자면서 그런 경우가 많이 줄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압박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신기했다. 단단한 무엇이 조여주고 지탱해 주니 종아리에 힘이 실리고 곧게 펴고 있는 듯했다. 그때부터 정말 답답하다 싶을 때는 벗어놓지만 중독이 되어 이제는 양말보다 압박밴드를 먼저 신는다.     


압박밴드가 필요한 그런 날이 있는가 보다. 시험도 회사 일도 세상 모든 만사가 그런 듯하다. 어떨 때는 압박감이 일의 결단력과 추진력에 엔진을 달아줄 때도 있다. 마치 압박밴드를 종아리에 하면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시험 기간이 다가올수록 업무의 마감 기한이 코앞일수록 데드 라인이 목전인데 커피 마실 새가 어디 있어, 앞뒤 여러 생각 말고 우선 하는 것이다. 압박감이라는 묵직함을 마음에 착용한 채 손가락과 발은 내달린다.     


나는 삶의 곳곳에 루틴이라는 이름의 압박감을 많이 심어둔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무조건 오전 5시는 기상, 퇴근 후 요가 학원에 다시 출근 도장, 요일에는 여행글을 써야 하고, 화장실 락스 청소는 목요일에, 이불 털기는 매일 아침, 주말 아침에는 1시간 동안 속도 7.1 공복 러닝머신, 하루 1시간은 딸아이의 과외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어떨 때는 벗어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많다.

그래도 하면 좋아,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걸로 됐어. 몸은 피곤하지만 그냥 이렇게 살란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딸아이를 조여줄까 풀어줄까 고민했으나 오전에는 압박을 오후에는 느슨함을 갖기로 했다. 특급과외를 시작했으니 이번 일주일은 바짝 중상 강도의 압박 스터디를 해보자고 화이팅! 혼자 외쳤다. 아이 아빠는 공부로 너무 애 압박 주지 말라고 한다. 그걸 또 딸이 보는 앞에서 말하니까  압박 붕대를 입에 물려주고 싶었다.

연우에게 물어봤다. 학원 안 다니고 엄마랑 공부하는 게  싫으니, 좋니.

“공부할 땐 엄마가 너무 뭐라고 해서 솔직히 싫고 힘들고 놀고 싶지만, 학교에 가서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고 시험을 봤을 때 성적이 좋으면 기분이 좋고 공부한 보람이 있어서 좋아.” 딸은 역시 엄마 편! 거봐!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으니 OK! GO, GO!

목 주변 근육도 조물조물 풀어주고 어깨도 양손으로 뒤로 쫙 펴서 스트레칭 한번 시켜주고 공부를 시작해 본다.


그런데…. 책상 위 온갖 잡동사니들은 나에게만 보이나 보다.

쌓여만 가는 수학 문제집도 엄마인 나에게만 무겁게 짓누르는 압박감이다.


갑자기 미안해진다. 내 종아리에게, 그리고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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