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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14. 2024

한겨울 12월 31일에 태어난 피부 공주님

내 딸은 아토피다


아기 때는 피부 좋단 말 많이 들었는데, 지금 내 딸은 아토피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봄, 가을이면 건조해서 긁고, 겨울이면 조금  잠잠해졌다가 요즘처럼 덥고 습한 여름이면 또다시 전쟁이다. 긁는다. 벅벅벅.

약을바르고 그나마 많이 호전된 팔  

손이 쉴 새가 없다. 보습제도 안 써본 게 없고 병원도 자주 간다. 피부약은 멍멍이를 줘도 안 먹는다는데 약이 며칠은 연우의 손이 쉴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다 약이 끊기면 또다시 시작이다.

연우가 태어나고 며칠 후 젖을 물리러 수유실에 내려갔다. 창문 너머로만 바라보다가 몸을 추스르고 온전한 정신으로 처음 얼굴을 가까이서 봤다. 하얗다 못해 투명해서 너무 좋았다. 내 얼굴은 누런데 딸은 백설 공주보다 하얘서 기뻤다.성공했구나! 맘속으로 외쳤다. 누가 데리고 갈까 봐 꼭 껴안고 젖을 물려줬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는 어쩜 피부가 그렇게 하얗니?”

옆에 서 있는 엄마의 얼굴을 위아래로 한 번씩 보고 더 놀라워하며 우릴 모르는 사람들이 더 물어봤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깨가 으쓱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질문이 지겹다 못해 싫을 때가 많다.

아토피란 놈이 찾아왔다.


피부가 얇고 연약해서 그런지 점점 증상이 심해졌다. 아기 때도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 그 부분이 벌겋게 일어나서 헝겊 기저귀- 땅콩 기저귀를 채웠다. 똥을 싸고, 오줌 싸고 손빨래를 수시로 해야 했지만, 일회용 기저귀를 채우면 말도 못 하고 우는 아이가 더 울었다.

한 번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와서 가보니 팬티 선을 쭉 따라 연우가 긁어서 피고름이 여기저기에 잡혀있었다. 보는 내가 더 아팠다. 혼자 말도 못 하고 긁어댔을 딸을 생각하니 선생님과 연우를 앞에 세워두고 주저앉아 펑펑 울음이 나왔다. 먹는 것 때문인가 해서 우유도 끊어보고 달걀도 안 먹이고 자연식으로만 밥을 준 적도 있다. 냉동식품, 과자 그리고 그 좋아하는 라면도 못 먹게 했다. 아이는 다행히 잘 따라주었다. 그런데 음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계절과 온도와 습도에 따라 피부는 변화무쌍했다. 먹는 건 참고 안 먹을 수 있는데 날씨는 우리가 어쩌질 못했다.     


밤에 잘 때도 더우면 안 되니까 선풍기와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잔다. 새벽녘에 가보면 추워서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잔다. 물어보니 추운 게 낫다고 한다. 하얀 이불에 피도 살짝살짝 묻어있다. 세탁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엄마의 마음은 피보다도 더 검게 타들어 간다.


오늘 이 땡볕에 체험학습을 에버랜드로 갔다. 선크림과 약으로 완전무장하고 모자 쓰고 선풍기와 팔토시 그리고 약은 당연히 챙겨갔다. 더우면 더 긁어서 지금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잘 참고 있겠지?


긁는다고 뭐라고 하는 내가 싫다. 좀 참아보라고 하는 내가 밉다. 너를 뱃속에 품었을 때 아이스크림 많이 먹은 내가 잘못했다.      



연우에게

딸. 지금쯤 회전목마 타고 재밌게 놀고 있니? 무서운 거 잘 못 타는데 그 무시무시한 아토피는 잘 견뎌주고 있어서 엄마가 늘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것은 더 많아. 점심 먹고 약은 잘 챙겨 먹었고? 더운데 놀이기구 줄 길게 서서 기다리지 말고 그냥 그늘에서 쉬었으면 좋겠는데 또 그럴 수만은 없겠지? 재밌게 놀고 와서 이따 잘 씻고 오늘 엄마가 더 꼼꼼하게 로션 잘 발라줄게. 새살 솔솔 돋아날 수 있게 약도 꼼꼼하게 잘 바르자. 까먹지도 말고 귀찮다고 건너뛰지 말자.

백설 공주보다 한겨울 눈보다 더 깨끗한 피부 연우가 한겨울 12월 31일 태어났잖아.

그만큼 너는 더 소중하고 특별해. 우리 딸 아기 때 피부를 다시 찾을 수 있 음식에 신경 많이 쓰고 옷도 더 좋은 면으로 사줄게. 그러려고 돈 벌지 뭐.

연우는 더 너의 몸을 사랑하고 아끼고 돌봐주면 되는 거야. 우리 이겨내 보자. 알겠지?

이따가 만나. 웃는 얼굴로!     

빨간 딸기와 선명히 대조되는 우유빛깔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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