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부상, 사망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라고 2024 공주백제마라톤 참가 신청 홈페이지 쓰여있다. 벌써 죽긴 싫은데? 그래도 신청했다. 2024 공주백제마라톤은 9월 22일 일요일, 오늘은 6월 22일 토요일. 거의 석 달, 90일 남았다. 갑자기 떨린다.
마라톤은 처음이라…….
토요일이니까 어김없이 러닝머신 위에 내 몸을 올렸다. 평소처럼 7.1의 속도로 60분을 타준다. 앞에 달린 tv에는 나의 러닝메이트- 벌거벗은 한국사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였다. 아오 열받는다. 장희빈보다 숙종이 더 밉다. 화가 나서 더 세게 걸었다.
나는 10km를 신청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7.1의 속도로 1시간을 타면 대략 7km를 걷게 된다. 뛰지는 않고 경보로 러닝머신 위에서 힘차게 움직인다. 동아일보 마라톤 10킬로의 제한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1시간 동안 7킬로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면 10킬로를 1시간 30분 안에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은 뛸 것이고 나는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건 잘 안 해봤다. 마지막에 기운이 남아돌 때 10의 속도로 2~3분 동안 해봤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남은 3개월 동안 뛰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또 변수가 뭐가 있을까. 그리고 남은 3개월 동안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자. 달리기 특급 셀프과외 스타트!
1. 속도: 경보가 아닌 달려서 완주해야 할 것 같은데 몇의 속도가 괜찮을지 한번 비교 실험해 봤다. 10은 3분 정도 뛰고 폐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고등학교 때 오래 달리기 이후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다. 너무 힘들었다. 9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7의 속도는 경보하는 정도라 7단계에서 뛰는 건 장난 같았다. 버튼을 8로 해놓고 뛰니 딱 적당했다. 내 다리와 심장이 8의 속도를 기억할 수 있도록 내일부터는 8이다!
2. 러닝메이트: 러닝머신을 탈 때 벌거벗은 한국사나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면서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었는데 마라톤을 할 때는 tv를 매달고 뛸 수 없으니 mp3에 음악을 잔뜩 저장해 놔야겠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는 라데츠키 행진곡이,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들은 안중근, 맘마미아 노래들이 괜찮겠다. 팝송은 2002, marry you, lemon tree…. 적고 보니 정말 올드하다. 좀 빠르고 나를 열받게 하고 흥분, 자극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아봐야겠다.
3. 식단 : 처음으로 아침을 먹을 결심! 을 해본다. 보통은 안 먹고 새벽 6시에 공복 달리기를 하는데 그날은 좀 특별하니 먹긴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날 아침 가장 당기는 음식을 뱃속에 넣고 갈 것이다. 마라톤이 끝난 후엔- 만약 완주를 한다면 뭘 먹을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요즘 먹고 싶은 것은 마틸다에 나온 초콜릿 무스 케이크이다. 밥숟갈로 와구와구 퍼먹어야지!
4. 마음가짐: 내 옆에서 뛰는 사람들한테 자극받지 않고 달려야 한다. 한 번은 어떤 건장한 사람이 내가 추측하기론 10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질 수 없는 마음에 속도 up 버튼을 따라 눌렀지만 이내 곧 다시 down! down! 속도는 못 따라가겠으니 저 남자보다 오래 타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마저도 도대체 내려올 생각을 안 하길래 분하다 하면서 내려왔다. 달리는 모습을 뒤에서 봤는데 119 숫자가 옷 뒤에 박혀있었다. 소방관?! 항복, 좋아, 인정. 멋져요. 더 뛰세요. 맘껏 뛰세요. 멋져 보였다. 마라톤 할 때 8의 속도를 찾아서, 특히 소방관스러운 남자 옆에서 뛸 것을 다짐한다.
5.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남은 3개월 동안의 준비 운동! 우선 요가는 평일에 지금처럼 매일 나가고 나의 한계를 약간 넘어선 최선을 다해 근육을 단련하고 또 키울 것이다. 지금의 몸이 뛰기에 딱 좋다.
우수한 몸상태-잘 유지하길!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탄탄한 상태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균형 잡힌 운동과 식단을 짜야겠다. 특히 내일부터는 8의 속도로 바꿔 1시간 30분 동안 러닝머신 위에서 달려줄 것이다. 처음부터 1시간 30분은 좀 무리일 테니 내일 한번 해보고 컨디션을 조절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실전이다. 날이 좀 선선할 때 새벽이나 저녁에 금강 둘레 코스에서 달려야겠다.
갑자기 마라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 이렇게 초안을 작성해 보니 떨리고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죽진 않을까 걱정이 아주 조금 된다. 사실은 무척 기대되고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신청하길 참 잘했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전하는 건 멋진 일이니까. 9월 22일에 잘 뛰고 9월 23일에 성공의 후기를 꼭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