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퇴를 할까 말까.

조퇴 쿠폰을 가슴에 품고.

by 연우맘

금요일 수업을 모두 다 마쳤다. 사무실에 돌아와 엉덩이를 풀썩 내려놓는다. 어제 먹었던 귀리 선식이 아직도 배 속에 있는지 부글거려서 수업 시간 내내 아랫배가 불편했다. 하지만 1학년 학생들에게

“선생님 배가 아파서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게.” 했다간…. 참아야 하느니라!


병가나 조퇴를 쓰고 퇴근하고 싶지만, 집에는 딸아이가 하교하고 먼저가 있을 것이다.

내 집에도 내 맘대로 들어갈 수 없는 현실.

긴긴 방학 24시간 내내 같이 붙어있다가 이제 겨우 각자의 학교로 복귀했다. 차라리 여기 사무실에서 혼자 앞으로 업무를 살펴보기도 하고 밖에서 들리는 방과 후 수업 첼로 소리, 아이들의 수다 소리를 듣는 게 편하기도 하다.


조퇴를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는 건 정말 행운인 거 같다. 그날의 주어진 임무를 다했으면 한두 시간이라도 일찍 귀가해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니 공짜로 시간을 얻은 듯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정말 나는 조퇴를 쓸 수도 있었다. 어디 사람 없는 카페에 가서 멍하니 달콤한 아포카토를 먹는 황홀한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그런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딸에게도 엄마 오기 전 1~2시간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학생 때 주말이면 엄마, 아빠 어디 안 나가나 물어볼 때가 많았다. 집에 혼자 있고 싶었다. 제발 두 분이 어디라도 바람 쐬고 오라고 종용할 때도 많았다. 혼자서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잠시만이라도 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늘어지게 소파에 누워 리모컨 버튼을 목적지 없이 누르며 입은 꾹 다물고 싶은 그런 사춘기가 있었다.


지금 집에는 TV도 없고 나를 감시하는 엄마, 아빠도 없다. 그런데 들어가기 싫은 날이 종종 있다. 직장에서는 하루의 업무를 조기 마감 할 수 있지만 집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앞치마를 메고 다시 두 번째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것이다. 퇴근해도 완벽한 퇴근은 아니다.

그래도 조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손에 쥐어진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아껴뒀다가 정말 먹고 싶을 때 먹는 달콤한 간식이 꿀맛인 것처럼, 집에 아무도 없고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 현관문을 딱 열고 들어가면 고요한 집안의 정적이 폭죽처럼 터진다.


계약직이라 내년을 보장할 수 없는 지금이 순간순간적으로 불안할 때도 있지만 만약 내년에 일을 못 한다면 조퇴를 온종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가급적 조퇴는 인생의 후반부로 모아두고 지금은 뭐라도 끄적이고 움직여야겠다.

학생 때는 조퇴고 집으로 가는 게 소풍 가는 듯 즐거웠는데 지금은 소풍은커녕 초과근무에 야근하러 가는 기분이 드니 나도 이제 정말 책임감이 때로는 버거운 그런... 아직도 어려운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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